2주 간의 휴가
그곳은 천국이라고 들었다. 내가 먹을 밥, 내가 하지 않아도 되고, 우는 아기 내가 달래지 않아도 되고, 빨래며 청소 등 집안일 또한 하지 않아도 되는 그곳은 산후조리원. 출산한 여성들에게 꿀 같은 휴가를 주는 조리원을 한때 산모였던 이들은 그렇게 불렀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처럼 최고급 시설이 아니어도 괜찮다. 육아와 집안일에서 해방된 그곳은 과연 천국과 다름없었다.
창밖으로 초록 플라타너스 나무가 드리워져 있다. 에어컨을 끄고 꽉 닫힌 창문을 열어 바깥공기를 들이마신다. 뜨거운 햇빛을 가린 플라타너스 잎 덕분인지 시원하다. 앞으로 2주간 보낼 방이 마음에 든다. 캐리어 짐은 던져두고 먼저 침대에 몸을 뉘인다. 편하다. 아이들도 괜찮고 이제 몸조리만 잘하면 된다. 앞으로 2주는 몸도 마음도 편하게 지내기만 하면 된다. 적당히 따뜻한 바깥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잠깐 눈을 붙여도 좋을 것 같다. 이내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조리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심심할 것 같았다. 대개는 바쁘게 돌아가는 조리원 프로그램 일정이 코로나로 많이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출산 전 이미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해 있느라 혼자만의 시간은 보낼 만큼 보냈다. 조리원에서 산후 요가도 하고 아기 장난감도 만들고 이런저런 프로그램도 하며 육아 상식도 좀 키우고 싶었건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책이나 더 읽고 넷플릭스나 좀 더 보고 그림이나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야겠다 계획했다. 계획이 계획에 그칠 뿐이라는 걸 깨달은 건 첫날부터였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의 일정이 있었다. 골반 교정을 제외하고는 분유업체, 아기 잡지 업체, 아기 스튜디오 등에서 모유수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기 분유는 어떤 제품을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 등의 교육이 자사 제품 홍보와 함께 이루어졌다. 홍보가 있기는 해도 초보 엄마에게는 꽤 도움이 될만한 정보들이 많아 매번 교육에 참가했다.
식사시간은 꽤 빠르게 찾아온다. 8시에 아침을 먹고, 12시에 점심을 먹고, 6시에 저녁을 먹는다. 다른 조리원과 달리 이곳은 아직도 식당에서 산모들이 밥을 같이 먹고 있다. 이때가 아니면 사담을 나눌 일이 별로 없기는 하다. 출산 형태를 묻고, 아기가 몇 명인지 질문하고, 육아 계획을 나눈다. 하루 세 번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친구처럼 느껴졌다. 산모들이 나가고 들어오고 하면서 조리원 동기라는 끈끈함은 별로 없었지만 힘든 코로나 시기에 임신과 출산을 겪은 동지 의식은 있었다. '힘들었겠다' 공감해줄 수 있는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연대의식 같은 것 말이다.
삼시 세 끼도 모자라 조리원에서는 간식도 챙겨준다. 점심과 저녁 사이에 빵이나 떡류 1회, 저녁 이후 야식으로 김밥이나 죽 1회. 그러니 배고플 겨를이 없다. 심심한 병원밥과는 달리 조리원 음식은 맛깔난다. 양념과 조미료가 추가된 반찬이 입맛을 돋운다. 매끼 남기는 일이 없이 그릇을 깨끗이 비운다. 미역국이 지겨울 만도 한데 싫지 않다. 한 사발 주는 국도 꼬박꼬박 잘 먹는다. 모유가 잘 나오는 이유는 잘 먹어서다.
출산 후 며칠 지나지 않아서 가슴이 아파왔다. 젖이 도는 것이었다. 인체는 신비하게도 아기를 위한 몸으로 변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한 번, 조리원에서 한 번, 모유가 잘 나오게 하는 가슴 마사지를 받았다. 이후 서너 시간 간격으로 젖이 돌았다. 가슴이 딱딱해지고 무거워지면 아기가 배고픈 시간이었다. 그럴 때면 유축을 해 신생아실 앞에 젖병을 가져다 두곤 했다. 한 밤중에도, 새벽에도 가슴 통증이 있으면 눈을 떴다. 가끔은 젖소가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했지만 아기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걸 해주는 것에 감사해했다.
어느 날 새벽 눈을 떴을 때 앞이 깜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서웠다. 문밖으로 나가 누군가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았다. 벽을 잡고 나가 식당으로 겨우 걸어갔다. 일단은 물을 좀 마시면 괜찮을 것 같았다. 물을 마시기 전에 쓰러져 버렸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눈을 뜨니 빛이 조금 보였다. 정수기로 기어가 물을 한잔 떠 마셨다. 앞이 보인다. 여전히 어지럽긴 하지만 앞이 보였다. 신생아실 선생님을 찾아 증상을 말했다. 빈혈이라고 했다. 일생에 처음 겪은 빈혈이었다. 모유수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잘 먹어도 더 이상 살이 찌지 않았던 것은 모든 영양이 모유로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원장님은 모유를 다 짜내지 말라고 했다. 유축 시간 텀을 늘리라고 권고했다.
열이 나는지도 몰랐다. 가슴이 그저 뜨거워 불편했는데 젖몸살이라고 했다. 역시나 새벽에 찾아온 젖몸살 때문에 신생아실 선생님이 계속 내 방에 들락날락해야 했다. 수시로 열 체크를 하기 위해서였다. 타이레놀을 먹고 다행히 열은 떨어졌지만 가슴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고 뜨거웠다. 수유 텀을 늘렸더니 젖이 차서 그렇다고 했다. 결국 원장님이 오셔서 가슴 마사지를 해 주신 후에야 괜찮아졌다.
조리원 내에 있는 에스테틱에서 산후 마사지를 받는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마사지에 10회를 추가해 거의 매일같이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를 받기 위해 침대에 누울 때면 '진정 여기가 천국이구나'하고 생각했다. 내 몸이지만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몸을 서서히 내 몸으로 돌려주었다. 조리원 퇴소 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를 만큼 빠르게 흘러갔다. 여유로웠지만 다양한 일을 겪은 보름 간의 휴가도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