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youngjoo Feb 01. 2023

[그림책읽기]처음에 하나가 있었다

같은 색끼리만 모여서는 예쁜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10년 조금 넘게 딸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가장 공을 들인 건, 돌이켜보니 공부보다는 사회성이었던 것 같다.


동시대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대부분이 그런 것 같다.


나만해도 아이를 조금 늦게 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했는데, 네 살 무렵 "그렇게 어린이집 안보내고 끼고 다니면 애가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말을 같은 아파트 어른들로부터 심심찮게 들었다.


조리원에서부터 시작해서 문센, 어린이집, 유치원을 거쳐 마침내 학교에 입학하기까지 아이의 사회화를 위해 엄마들은 많은 노력을 한다.


'아이친구 사귀기'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엄마친구 사귀기'를 위해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의 수도 실제로 꽤 되니까.


고학년이 된 지금은 아이친구 사귀기에 엄마친구 사귀기는 더 이상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 그게 얼마나 편한 일인지 모른다. 몇년전만 하더라도 아이가 새 친구를 사귀었다는 말을 들으면 제일 궁금했던 게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친구를 사귈 때 둘 사이의 케미스트리가 중요한게 일반적인 경우라면, 요즘의 엄마친구 사귀기같은 특수한 상황 속에서는 넷 사이에 모두 통하는 것이 있어야 그 관계가 성공적으로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많은 변수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안타까워. 너랑 친구는 잘 맞는데 그 엄마가 엄마랑은 좀 안맞을 것 같아."같은 말을 했던 적도 있으니까.


정말로 비슷한 모녀그룹을 만나기란 어려웠고, 비슷하지 않은 이와 지속적으로 어울린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엄마들은 여전히 '아이친구사귀기'에 큰 공을 들이고 있다.


실제로 학벌의 가치가 예전보다는 희미해진 요즘 '사회성이 공부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화두도 엄마들 사이에서는 자주 오르내리곤 하니까.


내가 딸아이와 가장 많이 나누는 대화도 '친구관계', '사회화'에 대한 것들이다.


딸이 구구절절 털어놓는 이야기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단연 '친구'고, 내가 딸에게 묻는 것도 그러하다. 어른의 사정으로 전학을 꽤 자주했던 딸이기에 내가 유독 노심초사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하나였던 점은 여러가지 색의 다른 점들에 둘러싸이면서 혼란의 시기를 겪는다.


처음에는 그들과 함께하는듯 싶더니, 이내 같은색의 점들끼리만 모이기 시작한다.


그 구분짓기가 실제 친구 사귀기의 모습과 꽤 비슷하게 느껴졌다.


딸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걔는 mbti가 ****여서 나랑 잘 맞는데 안 맞는 역시 애는 ****더라."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나 역시도 mbti로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기에, 과거에 비해 '구분짓기'가 심화되었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니까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4가지 혈액형으로 3부류의 친구들과만 나를 다르다고 규정하면 되었는데, 요즘은 16가지로 나뉘어 갈리니까.




작은 점은 씨앗을 닮았다는 사실에서 이 그림책은 출발한다.


총천연색의 점들이 모여있는 그림들이 같은 색끼리만 모여있을때는 그림보다 확실히, 훨씬 아름답기 때문에 이 책의 메시지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다른 것들이 함께 어울린다는 것이, 비슷한 것들끼리만 모여있는 것보다 월등하고도 확실히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그 말은 유효하게 보였으니까. 


모두가 모여있는 모습이 이처럼 아름답기를 바라게 됐으니까.


아이를 키울 때 '소셜믹스'가 있는 환경이 좋다라는 이론이나, 제인구달 박사가 거미줄에 비유해서 말한 '생명다양성 보전의 필요성' 이야기를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당장 와닿지 않는 이야기들은 때려치우더라도 여성만 혹은 남성만 지구에 홀로 존재한다면 인간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점만 생각해보아도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같은 색끼리만 모여서는 예쁜 그림을 그릴 수 없다.


화합을 강조하는 그림책의 색색깔의 점들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하나하나의 점들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색이 섞여든 그림에서도 각자 고유한 빛을 잃고 있지 않은 점들 하나하나에 눈길이 갔기 때문이다.  


최근 천선란 작가의 장편소설 <나인>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걸 어떻게 모르는 척 해. 사람 한 명이 지구에서 멸종했는데."

                                                                                            < 나인, 141p>



이 책의 주인공인 나인은, 지구에 단 두명만 살아있는 멸종위기종에 속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작가는 지구에 두명이 남아있든 수천 수억명이 남아있든간에 모든 인간은 세상에 단 하나라는 점에서 모두 다 고유한 멸종위기종이라고 말한다.


고유한 색깔을 발휘하면서 섞여드는 연습을 하는 일.

처음에 하나가 있었다가 보여주려고 했던 건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