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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Jan 18. 2018

방학유감

방학이 되어 달라진 것은 하루 세 번 밥을 주고 중간중간 간식을 챙기느라 부엌에 있는 시간이 더 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제 방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늘었을 뿐 방학이라 하여 달라진 것이 없다. 방학이면 여행과 각종 캠프, 친구들과의 파티로 바빴던 지난 수 년을 떠올려 볼 때 엄청나게 불행해진 기분이다.


학업모드로 재설정된 아이들의 뒷모습은 늘 책상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굳게 닫힌 아이의 방문 너머로 아이는 교과공부를 하느라 등을 웅크린 채 작은 공간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어느 엄마는 방학에도 스마트 폰만 들여다 보고 공부하지 않는 아이들때문에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지만 왠지 나는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의 방문을 바라보기가 싫다. 방문열고 나와 깔깔거리고 웃었으면 좋겠고 현관열고 나가 눈밭에 구르며 놀다 들어오면 따끈한 국수 한 사발 말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오늘은 세 시 쯤 외출하자!
공연 보고 저녁 먹고 들어올 거야


대형공연은 많이 본 아이들이지만 어릴 적 아동극 외에는 소극장을 찾아 본 일이 드물다. 해외살이가 생각처럼 멋지지만은 않은 것이 이방인으로서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매우 한정적인 탓에 구석구석 소소한 행복을 찾은 것이 쉽지 않아서이다. 국립극장정보는 알아낼 수 있어도 핀란드의 소극장 알짜공연을 찾아다니며 즐기기는 불가능하다. 하물며 그들이 영어로 공연할리도 없다.


그렇게 미세먼지 가득한 수요일 오후, 대학로 나들이에 나섰다. 숨을 쉬는데 먼지 냄새가 나다니! 괴롭다기 보다 우선 슬프다. 핀란드의 비릿할 정도로 신선했던 풀냄새와 공기냄새가 그리워질 즈음, 소극장 아닌 제법 큰 극장의 매표소를 마주했다. 이십여년 전 골목골목 찾아다녔던 극장의 모습은 아니지만 브로드웨이나 피카딜리의 공연장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국내의 창작뮤지컬은 얼마만큼 성장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은 시작 첫 구절만 들어도 기승전결 훤히 내다 보이는 진부한 사연들이었지만 어쩌면 그래서 공감하는 지도 모르는 사연들, 나의 사연 혹은 누군가의 사연이었을 이야기들 속에서 젊은 배우들의 열정이 느껴졌다.


딸들은 어찌 느낄까 슬쩍 살펴 보니 키득키득, 큭큭 웃음포인트에서 숨이 넘어간다. 즐거운 모양이다. 대학로 골목골목에 늘어선 군것질거리도 마냥 신기한지 신이 나서 구경을 한다. 한국의 길거리음식은 요즘말로 갑오브갑이 맞는 것 같다. 물론 이 먼지가득한 곳에서 음식을 먹고 싶지 않다는 아직은 덜 한국소녀화된 딸들탓에 구경만 한 것이 못내 아쉽다.


성균관대학교 정문 근처 맛집을 찾아 저녁을 먹었다. 세 사람 저녁 식사비가 이만원돈인데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으니 이만큼 성공적인 식사가 또 있으랴, 지난 일요일 아버지 생신을 맞아 친정식구들과 함께 먹은 9만9천원짜리 호텔의 부페가 참으로 어리석게 느껴졌다.


엄마! 가성비로 볼 때,
제가 한국와서 먹은 음식 중 최고에요!!!!
진짜 맛있어!!!!!!!


딸아, 어쩌면 그것이 대학가의 낭만이란다. 엄마와 두 딸의 대학로 데이트는 아마도 다음 주에 또 이루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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