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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Jan 30. 2018

콩콩귀신

콩콩콩콩, 콩콩콩콩


아파트 윗층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이사온지 서너달이 되었음에도 알지 못한다. 다만 때때로들려오는 콩콩콩 소리로 연세가 좀 지긋한 할머니가 계실 것이라 추측할 수 있고 아주 이른 시각에 하루를 시작하는 소리가 안방에 딸린 화장실을 타고 들려오니 안방을 사용하는 사람이 노부부이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다.


핀란드사람들과는 친해지기 어렵다고, 이사온지 한 해가 넘었어도 이웃과 인사를 건네본 적 없다고 하던 어느 블로거의 말과 달리 집을 둘러보던 그 날 파란 하늘아래서 반갑게 손흔들려 인사해 주었던 우리 옆집 Mikka의 부모님 얼굴에 가득했던 미소가 떠오른다.


눈이 너무 많이 와 길과 풀밭을 구분하지 못하고 길가 두렁에 빠져버린 내 차를 구해주려고 자신의 창고에서 커다란 삽과 흙포대를 들쳐메고 나와 애써 주었던 오르막집 부자도 열쇠를 두고 나와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애를 먹던 나를 몇번이고 도와주었던 Mikka, 남편이 없는 동안 혼자 잔디를 깎고 눈을 치우느라 고생하던 나를 제일인양 도왔던 우리 동네 아저씨 할아버지들의 따스함을 생각해 보면 어쩐디 한국의 이웃이 더 가까워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엘레베이터에 타고서도 본체만체하는 사람들, 같은 라인의 이웃임이 분명한데 고개숙여 인사하는 딸들을 의아하게 바라보거나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는 어른들을 보면 나와 함께 엘레베이터에 탄 이웃의 아이들이 내게 인사를 하지 않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간혹 노인분들은 인사를 하는 딸들에게 몇살이냐, 어쩜 인사를 하느냐 이쁘다 하시며 기뻐하신다. 딸들과 나의 인사에 당황하시던 경비아저씨들도 이제는 멀리서 딸아이가 보이기만 해도 반갑게 인사하신다.산책을 하다가 혹은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다가 누구인지 몰라도 시선이 머물면 손흔들고 인사를 주고받던 핀란드의 이웃들은 우리가 살던 그곳에 새로 이사 온 가족과 여전히 인사를 나누며 살고 있겠지




콩콩콩콩, 콩콩콩콩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느라 애를 쓰는 와중에 들려오는 콩콩소리가 아이는 어지간히도 거슬리나 보다.


엄마! 윗집에 콩콩귀신이 사나 봐요!


콩콩소리는 식사준비시간 아침과 늦은 오후에 들려오고 경쾌하게 콩콩거리다가 오래지 않아 멈춘다. 오래 전 우리 엄마가 부엌바닥에 작은 절구를 끌어안고 앉아 마늘이며 깨를 콩콩 찧던 모습과 겹친다. 요즘은 깨도 마늘도 직접 찧어 먹지 않으니 우리 엄마시절의 어느 노 주부가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시며 콩콩콩하시는 것 같다.


얼굴은 모르지만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인사드려야겠다. 그리고 사과드려야지


제 딸이 콩콩귀신이라 해서 죄송합니다.

따스한 봄이 되면 한국의 이웃들과도 조금 가까워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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