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새로운 시작!
1. 퇴사
요즘 퇴사하는 것, 그리고 퇴사를 멋들어지게 하는 게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저도 뭔가 의미 있게 퇴사를 해보려고 했는데
그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
무지 길었던 것 같은데 고작 3년밖에 안되었어요.
끈기 있게 2~3년은 다녀보자고 다짐하고 입사했는데
여차저차 하다 보니 가장 오래 다닌 직장이 되었으니 제 목표는 달성(?)했습니다.
취준생 시절에 대기업에 지원만 하면 '광탈'하는 걸 겪은 뒤로,
대기업은 특출 나고 비범한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지
나 같은 사람에게는 기회가 안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어찌하다 보니 스타트업 업계에서 좋은 분들을 알게 되었고,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타이밍과 운도 잘 맞아떨어져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소비재 기업에서 '디지털 신사업’이라는 직무를 맡아
콘텐츠와 테크 섹터를 넘나들며 원 없이 일해보았습니다.
큰 기업은 어떤 프로세스로 일하는지, 각 직무들은 어떤 방식으로 연결고리를 가져가는지.
특히나 수십 개가 넘는 브랜드의 흥망성쇠를 볼 수 있고,
이 브랜드들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입혀보거나 색다른 마케팅을 기획하고 실행해보면서
‘내가 이렇게 만족하며 일할 기회가 또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지내왔으니
저에게는 참 감사하고 좋은 일터였습니다.
2. 이사 - 잘 있어, 한국
퇴사 후 2월 말에 가족들과 함께 상하이로 이사 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상하이 홍챠오 공항에서 서쪽으로 50km 떨어진 쑤저우의 쿤샨이라는 곳이에요.
집 앞에 있는 역에서 상하이까지 20분도 안 걸리니
저 혼자라도 일단 상하이라고 해두겠습니다 :)
일단 중국으로 온 이유는,
1. 빠르게 변하는 중국을 한국에서가 아닌 현지에서 직접 느껴야만 한다고 생각해왔고
2. 중국 땅에서 남들이 어렵고 못한다는 것들을 내가 해내어 일종의 자아만족(?)과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사실 할 줄 아는 게 중국 쪽 일밖에 없기 때문일 수도...ㅎㅎ)
꿈과 이상은 원대하지만 현실은 역시나 현실이었어요.
해외로 이사하기 위해서는 집도 정리해야 하고 차도 팔아야 하며, 해상으로 보낼 짐과 핸드캐리 할 짐도 분류해야 하고, 각종 렌털 서비스의 해지와 위약금 처리, 은행과 주민센터를 왔다 갔다 하며 자질구레한 일들까지.
미리 알았다면 절대 안 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보름 정도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번에 이사를 하며 저에게는 나름 충격으로 다가 온 일은요.
그간 한국에 7년간 살며 3번이나 이사를 하며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름간 버린 쓰레기가 1톤은 족히 넘는다는 거였어요.
100리터 쓰레기 봉지를 5장이나 썼고,
재활용품 수거일마다 관리소 리어카로 왕복 4~5번씩 왔다 갔다 하며 쓰레기를 버렸어요.
평소에는 환경보호에 관심도 안 가진 게 사실이지만,
'내가 지구를 못살게 구는구나'라는 생각이 아직까지도 가시지 않습니다. 일종의 죄책감이랄까요.
3. 이사 - 중국, 오랜만이야!
중국에서는 대학교를 다니며 5년 정도 베이징에서 살았어요.
이제 남쪽 지방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지만
10년 전 불편했던 것과 지금 불편한 것들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당연히 인터넷은 느리고 vpn도 속 터지고요.
밖에만 나가면 걸어 다니며 담배 피우는 사람들 때문에 참 힘들어요.
기차역에서 담배냄새 장난 아니고요, 디디 추싱으로 콰이처(우버 같은) 불러도 열에 아홉은 차 안 담배냄새가 ㅠㅠ
이삿짐 정리의 최종 관문은 식기세척기 설치였어요.
한국 수도관과 뭔가 사이즈가 달라서 설치가 힘들었는데..
관리사무소에 부탁하니 배관공 한 분이 오셨어요.
싱크대를 뚫어야 하고 개인적으로 해주는 일이라 150위안을 따로 줘야 한다고 하셨고,
식기세척기 수리업체에 연락하니 출장비가 30위안이고
설치가 제대로 되면 90 위안이라고 하더라고요.
분명 사이즈를 맞추기 위해 부속이 필요할 거라
100위안 이상은 족히 깨질 것 같아
한국에서 가져온 밸브를 타오바오 앱에서 찍어보니
제가 가지고 있던 것과 비슷한 부속품을 파는 판매자가 있었고,
근 1시간이 넘는 대화와 사진 전송 끝에
단돈 20위안으로 제가 필요한 변환 밸브를 샀답니다.
사소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중국은 역시나 '문제 해결 능력'만이 이 땅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무지막지하게 예측 불가한 일들이 수없이 생기겠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여기로 온 이상 여기에서 살 방법을 찾아야지요 :)
4.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감사한 분들이 참 많은데..
인사를 모두 못하고 와서 참 아쉽고 죄송스럽습니다.
무슨 시상소감 발표하는 자리는 아니니까 한분씩 언급하는 건 오버인 것 같고요!
상하이에 오시면 저에게 꼭 연락 주세요.
맛있는 먹거리나 마실거리로 대접하겠습니다.
주변 상황들이 좀 정리되면 상하이에 계시는 분들께도 연락드리고 찾아뵈려고 합니다.
그리고 (열악한 vpn 환경이지만!!) SNS를 통해 여기에서의 생활과 일,
보고 느끼는 것들도 최대한 공유하려고 합니다.
몇몇 분들께서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여쭤봐 주셨는데요.
제가 다른 분들처럼 영전을 한 것도 아니고 대단하게 스카우트가 된 것도 아니고(ㅎㅎ)
아직은 일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
제 나름대로 계획도 세워지고 명확하게 할 것들이 정해지면
천천히 소식 공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해오며 좋은 성과가 났을 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어요.
- 여가시간의 많은 부분이 일과 조금이라도 관련되었었고(=잉여시간의 활용)
- 진중한 태도로 정성을 쏟아붓고 진심을 다했을 때(=나의 마인드와 마음가짐)
비로소 좋은 결과물로 남았던 것 같아요.
실패를 하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얻는 것이 많았고요.
중국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며,
그동안 배우고 느껴왔던 것들을 마음속에 잘 새기고
하루하루 의미 있게 채워나가 보자고 다짐해봅니다.
상하이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