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삶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림자의 존재를 알아채고 마주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커버린 그림자를 발견하는 순간.
조명을 다시 켠다해도 언제 다시 꺼질지 모르는 불안함이 감도는 순간.
우리는 그 순간들의 고통을 감내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드물게 많은 것을 받고, 지니고 살아간다 하더라도 결국 인간이라면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의 허망함.
가까운 이의 피할 수 없는 상실과 죽음. 죽어가는 나를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 숙명.
작가가 이야기한 마뜨로슈까처럼 우리의 삶이란 본래 없는 것을 내내 확인하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어떤 사회 의식이나 역사 의식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이야기한다.
애초에 할머니가 폐지를 주워 살아야 하는게 맞는지 무재가 던지는 질문이 작가가 던지는 삶의 폭력에 대한 메시지로 보인다.
사회는 어차피 이런 저런 모순으로 흘러가고 그에 따라 각자도생 하는 개인들. 이런 상황이 바로 비극이고 폭력이라는 것.
인물들은 꺼져가는 조명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대응한다.
은교 -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하지 않는다. 묵묵히 다른 길을 찾는다.
무재 - 인생의 성질이란 어차피 허무한 것임을 안다.
유곤 - 개똥 과학(!)으로 대응. 복권 규칙을 찾는다. 회피성이 다분하지만 개연성은 있다.
인물들은 소시민의 삶의 이야기를 이질감 없이 내밷는다. 외로운 사람들. 서로를 조심스레 대한다.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캐릭터에게 작위적으로 입히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캐릭터를 통해 표출되는 지식인, 작가 본인의 지문을 찾기 어렵다.
단순히 계급에 대한 의문으로 풀려 했다면 진부한 이야기가 되었을 텐데, 오히려 그 속을 관통해서 살아내는 사람들을 보여주어서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책의 느낌과 표현들이 참 좋았다. 다만 결론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예상과 다르지 않게 뻔한 답을 보여줘서.
은교와 무재가 차를 버리고 사람들이 있는 나루터로 떠날 때, 멀리 가로등 밑에 서성이던 그림자가 따라오는 걸 보고 따라오는 그림자 따위는 두렵지 않다고 하는 말.
그래도 함께. 사람을 향해. 이런 메세지. 도덕적이고 억지 희망 같아서 진부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뻔한 답 밖에 없다는 것 자체가 삶의 비극이고 폭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