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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May 05. 2020

오래전 어린이날 풍경을 생각하며

2005년 5월 5일, 시간여행

어린이날이다. 아침부터 흐린 하늘이 야속했다. 오늘만큼이라도 코로나로 그늘진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보송보송하게 말려줄 일이지. 어쩌자고 비까지 내릴 기세인가. 그나마 비는 내리지 않았고 오후부터 하늘은 파랗게 빛났다.

아이 셋이 다 자라서 성인이 되고 나니, 집에 붙어있는 날이 없다. 둘은 아침 일찍 친구 만나러 가고, 한 명은 지금쯤 페루(현재 새벽 5시 넘음)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이다.

페루는 5월에 접어들면서도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없다. 이러다 정말 딸아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국경 봉쇄가 정확히 언제 풀릴지, 곧 풀린다 해도 돌아오는 비행기가 있기나 한 건지.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어린이날이라고 하니 어린이도 아닌 딸아이가 더 보고 싶어 졌다. 사진을 보면서 이런저런 옛 생각에 빠져있다가 문득, 우리 아이들 어렸을 당시 어린이날에는 무얼 했을까 궁금했다. 서랍 깊숙이 넣어둔 딸아이 일기장들을 펼쳤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때 쓴 일기장은 학년별로 거의 모아두었다. 나는 가끔 그 일기장을 읽으며 나의 젊은 시절을 보기도 한다. 딸아이가 글을 솔직하고 재미있게 써서 읽는 것도 즐겁지만, 그때 나는 아이 마음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부족한 엄마였구나 하고 반성하게 된다.

15년 뒤에 반성하다니 너무 늦은 반성이다. 그때는 왜 지금처럼 절절히 읽히지 않았을까. 딸아이는 매 순간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건만, 엄마인 내가 귀담아듣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강요한 것 같다. 볼수록 부끄러운데 이상하게 자꾸 읽게 된다.

페루 교환학생으로 가서 코로나 감옥에 갇혀버린 딸아이. 그녀의 순수하고 속 깊었던 어린 시절 마음을 엿보면서, 페루에서의 역경을 잘 이겨내라는 응원을 보내본다. 15년 전 딸아이가 얼마나 행복했을지, 하루라도 빨리 가족품으로 돌아와 다시 그 행복을 맛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딸이 초등학교 2학년부터(2005년) 4학년 때까지 어린이 날에 쓴 일기들만 모았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볼까요?

참고로 일기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딸아이한테 있습니다만, 제가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답니다. 아침이 되면 전화로 꼭 허락받을 게요.

싫다고 화내면 일기는 삭제할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ㅎㅎ


2005년 초등학교 2학년 때
2006년 초등학교 3학년 때
2007년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린이날 선물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정작 무슨 선물을 사 주었는지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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