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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May 17. 2020

배 고파서 잠이 안 올 때

2020.5.15.ㅡ먹방 보면서 침만 꼴깍

점심을 많이 먹은 탓에 저녁은 굶기로 했다. 분명 배가 불러서 아무 생각 없었는데, 아홉 시 열 시 열 한시... 시간이 지날수록 배꼽시계는 감긴 태엽이 풀린 듯 마구 울려댔다. 뭐라도 먹으려고 냉장고를 뒤적거리는데 "요즘 뱃살 장난 아닌데 웬만하면 좀 참지?" 하고 딸이 태클을 걸었다.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챙기는 것만이 진리라는 걸 망각한 대가는 가혹하다. 어쩌다 한 끼를 거르면 다음 끼니때 폭식을 하거나, 헛헛한 속을 채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먹게 된다. 때에 맞춰 일정량의 음식을 먹어주면 간식의 유혹도 과감히 외면할 수 있는데, 그걸 자꾸 잊어버린다.

잠을 자려고 누웠다. 배가 너무 고파서 잠이 오질 않았다. 문득 딸이 다이어트할 때 먹방을 보면서 먹고 싶은 음식을 눈과 귀로 맛본다던 생각이 났다. (먹방을 보고 나서 알았다. 당시 딸아이의 통통한 살이 왜 안 빠졌는지.) 요즘 가장 핫한 먹방 스타가 누구냐고 했더니 몇몇을 알려줬다. 이이폰을 장착하고 유튜브 먹방 시청을 시작했다.

구독자 3백만 명 이상 보유한 먹방 스타 문복희, 그녀의 세련된 미모에 놀라고 그녀의 입 크기에 또 한 번 놀랐다. 한꺼번에 먹는 음식량, 깔끔하고 맛있게 먹는 모습, 그녀의 탁월한 메뉴 선택, 먹방 감상에 적합한 배경 세팅 등 볼수록 매력적이었다.


그녀가 한 입 가득 물고 리듬을 타듯 맛있게 먹으면, 침샘 자극을 너무 많이 받게 된다. 정말 입이라도 벌리고 있으면, 나는 침이 줄줄 흘러내릴 것 같았다. 얼굴도 예쁜데 먹는 모습도 예쁘고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딸아이는 오래전부터 먹방을 즐겨봤다. 본인이 먹는 것도 좋아하니까, 때론 먹방에 도전해보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곤 했다. 어지간한 먹방 스타들의 스타일을 다 섭렵하고 본인만의 콘셉트를 뭘로 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때 아이는 먹방 ASMR만 듣고도 어떤 음식을 먹는지 거의 알아맞힐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막상 내가 지켜보니 심심풀이로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먹방 스타들 마다 확실한 개성이 있고, 쇼맨십이라든가 지속적으로 방송을 할 수 있는 끈기와 성실함이 필요해 보였다. 그러려면 투철한 직업의식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돈을 벌어볼 생각이라면)

저마다 특징을 가지고 있는 먹방 스타들. 가령 많이 먹기, 매운 음식 먹기, 직장인들을 위한 퇴근 후 집에서 술 마시기, 직접 만들어서 먹기, 특이한 조합의 메뉴 먹기, 같은 색깔 음식만 먹기 등이 있다.

문복희는 깔끔하게 한입에 많이 먹기, 햄지는 직장인들 상대로 퇴근 후 혼술 콘셉트, 도로시는 주로 매운 음식 먹기, 리비는 매운
음식이나 해장 먹방을 주로 하고 물냉면을 해장으로 즐긴다, 프란은 맛있게 많이 먹기, 상윤쓰는 정신없이 먹는 미친놈(정신없이 산만한데 코믹하기도 하고 재미있다.) 콘셉트, 입 짧은 햇님은 오랫동안 많이 먹기(방송시간이 유독 긴데 그 긴 시간 동안 상상을 초월한 만큼의 양을 먹어치운다.), 참 PD는 주로 안주 소개를 하며 술 마시기, 홍유는 얼굴 공개하지 않고 맛있게 먹는 입모양만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는 한국인의 모습에
먹방을 손꼽을 정도라고 한다. 한국인 입장에서도 먹방은 신기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 또한 이 글을 쓰고 있다. 자율 감각 쾌락 반응 (ASMR)으로 듣는 씹는 소리, 침샘 폭발로 참기 힘들지만 기분 좋게 들렸다.

먹는 즐거움만큼 큰 것도 없다. 혹 입맛 없어서 고민인 사람이 있다면 먹방을 보면 집 나간 식욕이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과하게 먹는 모습을 보면 불편한 마음도 들고, 심지어 혐오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 것만 아니라면 맛있게 음식 먹는 모습은 충분히 흥미롭고 중독성이 있다.  먹방 스타들 입장에서는 맛있는 음식 실컷 먹고 돈도 벌고, 먹는 일이 직업이 되기도 한다. 내가 걱정해야 할 문제는 아니지만, 먹방 스타들이 건강을 위해서라도 운동만큼은 열심히 하기를 바라본다.

꼬르륵 소리가 난리 치던 순간 잘 참고 무사히 꿈나라로 가긴 갔다. 꿈속에서도 바사삭 쫀득쫀득 씹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다. 아! 또 입안에 사르르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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