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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Jun 13. 2020

아래위 이웃을 선택할 수 있다면

 층간소음 문제로 이사를 가 버린 사람


아래층에 살던 사람은 60대 후반 정도의 아주머니 었는데, 거의 혼자 생활하시는 분이다. 그분이 우리 아래층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벽 한 시쯤 우리 집 인터폰을 누르고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는 일이 일어났다. 도저히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다는 이유로.

어린아이도 없고 성인들만 사는 집인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새벽 1시에 소란을 피우는 건 아니다 싶어, 나는 되레 인상을 쓰고 화를 내고 말았다. 아주머니 목소리가 더 높아지기에, 날 밝으면 다시 얘기하자며 돌려보냈다. 아주머니는 가슴을 움켜잡으며 "내가 심장이 약한 사람이라서..."라는 말을 흐리며 음울한 표정으로 내려가셨다.

다음 날 아래층으로 찾아갔다. 화를 내서 미안하다는 말과 아이들이 늦게 귀가하는 생활 패턴이라 양해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불만은 계속되었고 경비실을 통해 종종 연락을 취해왔다.

나는 자정이 넘으면 아이들 귀가도 그렇고 샤워하는 것도 신경이 쓰여 자꾸 잔소리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예전보다 잠도 일찍 자게 하고, 실내 슬리퍼를 식구 수대로 사서 신고 다니게 했다. 우리가 노력한 덕분인지 한동안 잠잠했다. 이제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나 보다, 하고 잊어버리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느닷없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층간소음 민원 접수 담당자한테서 걸려온 전화다. 밤늦게 내는 발소리가 시끄럽고, 물 내리는 소리, 대화하는 소리 등으로 잠을 잘 수 없다고 하니 주의해 달라고 했다. 살다 살다 별일을 다 겪는다 싶었다. 담당자에게 그 정도 일은 지겨울 만큼 흔한 일이라는 듯, 대수롭잖게 몇 마디 남기고 끊었다.

그 후 다시 한번 더 민원 담당자한테 전화가 왔고, 내 기억으론 그 전화를 마지막으로 아래층에서 별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경비실도 민원접수처도 해결해 주지 않자 아래층 아주머니는 이사를 선택한 것이다. 이사 가는 모습을 보며 속이 후련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다가도 한 편으론 미안하고 후회스럽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대로 노력할 만큼 했는데 이사까지 결정했다는 것이 씁쓸했기 때문이다.

아래층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왔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가족 수가 많은 집인가였다. 다행히 가족이 여럿이고 몇 달이 지나도 층간소음을 문제 삼지 않았다. 휴! 이제 층간소음 문제는 일단락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예고 없이 우리 위층이 이사를 가고, 그다음 주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왔다.

이사 오는 날은 밤늦게까지 잡다한 소음이 들리기에 할 일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상상도 못 했던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음은 특정 시간대가 없다. 밤늦은 시간은 물론 휴일 아침에 단잠을 깨우는 건 기본이다. 게다가 집에서 어떻게 걸으면 저런 소리가 날까 싶을 만큼 쿵쾅거리며 걷는다. 고요하던 천장에서 매일같이 울려대는 시끄러운 소리들. 특히 나 혼자 있을 때는 더 크게 들렸다. 정말 당장 뛰어올라가고 싶었다.

아직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위층 사람들. 소음 때문에 우리 가족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 조용히 좀 해달라고 말하고 싶어 미치겠다. 내 안에서 불만이 폭발할 때마다 내 발목을 잡는 건 바로 아래층 아주머니다. 한 번도 그분의 심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입장이 바뀌고 나서야 혼자 살던 아주머니가 늦은 밤, 위층에서 들리는 문 여닫는 소리, 발소리, 물소리, 가끔 아이들끼리 투닥투닥 다투는 소리, 강아지 짖는 소리 때문에 잠 못 들던 밤을 헤아려 본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시끄러운 소리를 낼 마음이 전혀 없었고,  잠잘 시간에 살금살금 걷는다 해도 방음이 잘 안 되는 공동주택이라면 아주 작은 소리도 들릴 수 있다. 그렇다고 12시 이후 꼼짝도 못 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건축할 당시 방음이 잘 안 되게 지어놓은 것을, 공연히 사는 사람들끼리 아웅다웅 갈등을 빚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혹시 위층 사람과 아래층 아줌마랑 아는 사람 아닐까? 최대한 시끄럽게 소리를 내달라고 위층 사람한테 부탁하고 간 것 같아. 복수하려고!"

설마, 그러기야 했겠냐만은 이런 것이 인과응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층간소음 분쟁이 엄청 늘었다는 기사와, 층간소음 '사후 확인제'를 실시하겠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소한 문제 같지만 누군가에게는 불면증이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오죽했으면 목숨 걸고 싸우고, 민원을 넣고, 심지어 이사를 가버릴까.

요즘은 위층에서 나는 소리에 최대한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우리 집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사 가신 그 아주머니도 조용한 위층을 만나길 바란다. 설마 층간소음으로 이사까지 갔는데, 우리 집보다 더 시끄러운 사람을 만나진 않겠지? 공동주택에서의 이웃은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행운이 따라야 할 것 같다. 부디 그분에게 행운이 따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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