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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NATO May 04. 2023

영화의 삶:오아시스의 밤

영화 <오아시스>

영화 <오아시스>는 2002년 늦여름 매우 더운 날 개봉했다. 영화 <오아시스>를 영화관에서 볼 때 혼자였던 건 기억이 난다. 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님을 잘 모를 때고, 전작인 <박하사탕> 때문에 봤다고 하기엔 그 당시 취향이 아니었다. 같이 볼 친구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 영화관을 나온 후 느낀 감정은 아직까지도 내 마음 어딘가에 영구 보관되어 있다. 


20대 중반의 나는 버스를 타고, 전주 시내에 있는 영화관.. 아마 극장이었을 텐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나중에 불타서 멀티플렉스로 바뀐 전주천에 가까운 곳이었다. 영화 엔딩이 나오고,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크레딧이 끝나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마음에 무언가가 큰 게 채워졌기 때문이다.


영화는 코 훌쩍 거리는 남자 주인공(배우 설경구)이 등장한다. 교도소에서 나와 집으로 가지만 이사를 가고 없다. 동네 고깃집에서 돈도 없이 먹다가 경찰에 신고 당하고, 경찰서로 동생(배우 류승완)이 찾으러 온다. 그리고 이사 간 형네 집으로 갈 수 있게 된다. 반가워하지 않는 가족을 보면서도, 반갑게 인사하는 주인공을 보면 내 마음은 주인공과 같아진다.


주인공은 형(배우 안내상)이 소개해 준 중국집에서 배달을 시작한다. 그 오토바이를 타고, 과일 바구니를 들고 어느 빌라에 찾아가 지체장애인 여자(배우 문소리)를 만난다. 대화가 어려운 그들의 관계는 자동차 뺑소니 가해자인 주인공과 피해자(배우 손병호) 가족임을 알려준다. 주인공은 과일 바구니를 놓고 오고, 다음날 다시 그곳을 찾는다. 


남자는 여자와 몇 마디를 나누고는 성폭행을 하게 되고, 여자는 놀라 기절을 한다. 남자는 여자 얼굴에 물을 끼얹어 겨우 깨우고는 그곳을 도망 나온다. 그렇게 둘의 만남은 또다시 가해자와 피해자가 된다. 영화는 초반에 매력적이지 않은 주인공들과 겨우 2번째 만남에서 또다시 중범죄를 보이면서 이 무슨 해괴한 스토리인가 싶다.


이 부분에서 관람객은 나뉜다. 보기 힘들어서 멈추거나 아니면 더 보거나. 나는 이 글을 쓰기 때문에 후자임이 확실하고, 전자 또한 이해가 된다. 나조차도 그 부분에서 '아 이거 똥 밟았다.' 느낌이었다. 영화관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조금만 더 보기로 했던 당시 기억이 있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제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겠지만, 이 영화를 내 인생 영화로 뽑은 이유는 몇 가지가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지체장애인 여자가 비장애인처럼 나오는, 평범한 연인처럼, 상상하여 보여주는 장면 때문이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이 경찰서에서 휠체어를 밀어 캐비닛에 부딪혀 마치 '우리 그런 사이 아니에요!'라고 외치는 듯한 장면이다. 


그들은 '결국' 사랑을 선택했고, 그 둘 외에는 모두가 사랑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둘의 사랑을 더 응원하게 되었고. 영화는 끝났지만 작품 중 이름인 홍장군과 한공주 그들만의 진짜 사랑이 그려지기에 애틋한 마음과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만'의 진짜 사랑이라고 말한 이유는 아마 먼 미래에도 이런 사람들이 만나면 그 누구도 그들이 사랑할 거라고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고, 지금도 그 생각은 '아쉽게도' 같다.


영화 <오아시스>의 두 주인공. 홍종두(일명 홍장군)와 한공주(일명 공주마마).

영화 <오아시스>는 둘만의 사랑을 보여주지만, 어쩌면 짝사랑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누군가 사랑했고, 그도 나를 사랑하길 바라지만, 사랑이 아니었음을 알고는 외사랑으로 바뀌는 순간 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외사랑으로 남길지, 남으로 남길지를 말이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만 알고 있는 그 사실은 외롭다. 


영화 <오아시스>가 끝나고, 영화관에서 나와 전주 객사 앞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간 시간 그리고 집까지 오는 버스 안에서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다. 울어야 숨을 쉴 수 있는데, 사람이 있는 버스 안에서 울지 못했다. 겨우 참고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어두운 거리에서 울음이 터졌다. 집 앞 작은 정자에 걸 터 앉아 한참을 더 울었다. 심지어 짝사랑도 외사랑도 없던 나에게 영화 <오아시스>는 마음이 동했다. 그때 짧은 몇 분이 나에게는 수십 년 수천 년처럼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영화 <오아시스>를 봤던 그날 밤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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