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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의 기록자 Apr 24. 2023

1번과 2번의 이야기(짧은소설)

 

“안녕 나는 이선영이야. 너는?” 


 중학교 입학 첫날이었다. 키가 작은 나는 초등학교 때 줄곧 1번이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1번에서 벗어나 2번이 되었다. 새로운 반에서 번호를 정하는 일은 간단하다. 반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서 키 순서대로 눈치껏 줄을 선다. 눈대중으로 자신이 작다 싶으면 앞쪽으로 가면 되고 크다 싶으면 뒤로 가면 된다. 그렇게 줄을 서면 선생님이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정렬을 시켜준다. 선생님 나름의 심사가 끝나면 번호가 결정된다. 중학교에서도 가장 작다고 생각했던 나는 맨 앞에 줄을 섰다. 그런데 내 앞에는 한 녀석이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2번인가?’ 자리 배치도 우리 반은 번호 순서대로 앉았다. 나는 2번이니깐 1번 옆에 앉게 되었다. 나는 반에서 제일 작다는 타이틀을 피하게 되었다는 안도감과 1번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하얀 얼굴에 동그랗고 큰 눈, 립스틱을 바른 것도 아닌데 늘 새빨갛던 입술. 1번이 나를 쳐다보며 큰 눈을 깜빡일 때는 속눈썹이 너무 길어 곧 떨어져 버릴 것 같았다. 내 이름과 가운데 글자 하나만 다르고 나머지는 같아서 내적인 친밀감마저 들었다. 1번 이진영. 중학교에 입학해서 내가 처음으로 말을 건 친구. 그렇게 우리는 ‘베프’가 되었다.


 “전생이 있다면 너랑 나는 자매였을 거야.”


 “그러게! 이름도 이진영, 이선영. 누가 일부로 알고 이름을 지어준 것 같잖아. 선영아, 우리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같이 가자!”


 “그럼! 나는 너 따라갈 거야. 나중에 커서 옆집에 살면 좋겠다.”     


 진영이와 나는 등하굣길에 매일 함께였다. 학교 앞에는 자주 가는 떡볶이집이 있었는데, 그곳은 하교 후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다. 종일 붙어있어도 날마다 할 얘기가 많았다. 나와 좋아하는 가수도 같고, 음식 취향도 같은 데다가 성격도 잘 맞았다. 나는 초등학교 때 전학을 해야 했기에 친했던 친구가 거의 없었는데, 중학교에 와서 친한 친구가 생겨서 기뻤다. 나에게도 비밀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 늦게까지 연락을 할 수도 있고, 학교 이야기는 물론이고 가정의 은밀한 비밀까지도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생겼다. 우리는 서로를 소울메이트라고 불렀다. 


 2교시 영어 수업 시간이었다. 필기하려는데, 내 필통이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뜨렸나 싶어서 살펴보았지만, 학교 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필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계속 필통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야단을 맞고 겨우 새 필통을 사 오면 어김없이 학교에서 없어졌다. 안 되겠다 싶어서 온종일 주머니에 넣어놓고 신경을 써 봐도 며칠 지나지 않아 필통이 귀신처럼 사라졌다. 그 일로 나는 단단히 약이 올랐다.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내 필통만을 노리는 게 억울하고 화가 났다. ‘나에게 원한이 있는 게 분명해.’라고 생각도 했다가 ‘도벽이 있는 친구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안쓰러워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필통을 도난당한 게 10개가 넘었고 그렇게 6개월이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필통 도난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반 아이들의 이슈로 커졌다. 도둑년이 누구인지 잡아야 한다며 반장을 비롯한 많은 아이가 나섰다. 하지만 가장 걱정해준 친구는 진영이었다. 같이 감시도 해주고, 필통을 잃어버리면 제 일처럼 반 전체를 샅샅이 찾아주기도 했다. 나는 그런 진영이에게 고마웠다. 


 “선영아, 이거 네 거야?”  


 어느 날 반 친구가 내 필통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가져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쓰레기 같은 형체. 물감으로 잔뜩 더럽혀져 있었고, 운동장에서 사람들에게 여러 번 밟힌 모양이었다. 반 아이들이 나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필통을 마주한 나는 당황스러웠고 그런 나를 알았는지 진영이가 대신 필통을 확인해주었다. 그 안에는 그동안 내가 잃어버렸던 각종 볼펜과 샤프 등이 부러진 채로 들어있었다. 그리고 구석에서 쪽지를 발견했다.



 [이제 넌 끝났어께임오버]  



 찢어진 종이에 붉은 글씨로 진하게 적혀진 글자들. 자신을 유추할 수 없도록 치밀하게 왼손으로 적은 글씨. 처음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구역질이 났다.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고 누군가가 나를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쪽지를 본 아이들은 소리를 질렀다. 어떤 녀석은 어이없다며 웃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나는 그 쪽지를 뚫어질 듯 바라봤다. 나를 매일 밤 괴롭게 한 너. 학교 갈 때마다 두 손을 꼭 쥐고 주위를 살피게 한 너. 남아있는 나의 자존감마저 하락시킨 너. 나는 너를 꼭 찾고 싶었다.


 하지만 떠들썩한 사건도 중학생들에겐 한낱 이야깃거리일 뿐이다. 도둑이 누구냐며 며칠을 떠들어대던 아이들은 다시 자기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만 빼고 모두 잊어버린 어느 날, 자습 시간이었다. 수학 풀이를 적으려는데 연습장을 가져오지 않았던 나는 진영에게 노트를 빌렸다. 진영이가 건네준 것은 그 당시에 유행했던 캐릭터인 광수생각이 그려진 노트였다. 무심히 그 노트를 받아 펼쳐보았을 때, 나는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빨간 글씨로 진하게 적혀있는 것들. 


 [GAME OVER, 게임오버께임오바넌 끝났어


 여러 번 무참히 날 죽인 흔적들……. 내가 제일 사랑했던 친구. 내가 그토록 찾고 싶던 너는 바로 내 옆에 있었다. 버젓이 나와 웃으며, 나와 손을 잡고, 나를 위로했던. 진영. 


 “너였어? 왜 그랬어?” 


 떨리는 목소리를 삼키며 물었다. 너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시커멓게 큰 눈을 아무렇지 않게 깜빡였다. 큰 눈에 흔들리는 속눈썹이 내 마음을 사정없이 할퀴었다. 무표정이었지만, 진영의 입꼬리 한쪽이 살짝 올라가 있는 것 같았다. 


 “이유는 없어. 그냥 네가 미워서 그랬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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