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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의 기록자 May 08. 2023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음식

엄마 오늘 칼국수 먹는 날이야?



밀대를 밀고 있는 엄마에게 나는 물었다. 어린 시절 엄마는 내게 칼국수를 자주 끓여주셨다. 거실에 신문지를 넓게 펴면 엄마의 요리가 시작된다. 큰 볼에 밀가루를 잔뜩 넣고 물을 붓는다. 물과 밀가루가 엄마의 손을 만나면 거대한 하얀 반죽이 된다. 깨끗했던 엄마의 손은 하얀 장갑을 낀 것처럼 변했다. 나무 밀대로 반죽 덩어리를 밀어내면 만두피의 크기에서 피자크기로 또 내가 팔을 펼쳐 그릴 수 있는 최대한의 원 모양까지 커진다. 나는 그 모습이 엄마가 요술을 부리는 것 같아보였다. 어린 내가 신기해서 입을 크게 벌려 소리를 지르면, 엄마는 맛있는 칼국수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알려주었다.     


우리 집을 다 채울 정도로 커져버린 반죽을 돌돌 말아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한다. 동그란 반죽은 내 팔보다도 긴 면으로 바뀌고 그때쯤이면 주방엔 엄마가 올려놓은 육수가 끓는 소리를 낸다. 엄마는 육수엔 비법 소스가 들어간다고 했었다. 내가 눈으로 본 것은 멸치뿐이었지만 언제나 맛있었다. 수증기를 내며 끓고 있는 육수에 면을 빠뜨린다. 엄마는 국물을 휘휘 젓고는 뚜껑을 닫고 씩 웃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맛있을 거야”      


완성된 칼국수엔 알맞게 익은 면과 호박이 들어있었다. 뽀얀 국물을 쭉 들이키면 진하고 걸쭉한 국물이 입 안 가득 채워진다. 간장으로 간을 하고 종종 썰어놓은 김치와 함께 면을 먹으면 비어있던 배속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맛있다 맛있어” 나는 감탄을 연발하며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낸다. 그럼 엄마도 기분이 좋아서 내게 한 그릇을 더 퍼주시곤 했다. 배가 부른걸 알지만 나는 칼국수가 맛있고 엄마가 좋아서 한 그릇을 더 먹었다. 그렇게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해져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인이 되니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참 많았다. 칼국수가 아니어도 주린 배를 채워줄 음식은 어디에든 있었다. 자취를 하게 되면서 부터는 배달음식, 편의점 음식을 자주 먹었다. 신세계였다. 클릭만 하면 집 앞으로 음식이 배달되고, 어쩌다 요리가 하고 싶을 때는 밀키트를 사서 만들어 먹으면 되었다. 굳이 요리를 배울 필요도 없었고, 힘들여 면을 밀고 국물을 끓일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간편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허전해졌다. 칼국수를 먹을 때의 든든함 같은 것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손으로 있는 힘껏 눌러가며 밀어대던 칼국수 면이 그리웠고, 두 그릇씩 비워내도 또 먹고 싶었던 그 맛이 생각났다. 칼국수 집을 찾아가 칼국수를 먹어보았다. 기계가 뽑아낸 면이라서 입으로 후루룩 쉽게 들어갔고 종류도 다양했다. 멸치로 육수를 낸 멸치 칼국수부터 바지락 칼국수, 장칼국수, 육개장 칼국수 까지 육수와 고명이 무엇이 들어가는지에 따라 이름과 맛이 달라졌다. 맛은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엄마의 그것과는 같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어렸던 내가 결혼을 하고 나도 엄마처럼 요리를 잘할 수 있게 되었다. 배달 음식만 시켜먹던 내가 요리를 시작했고, 남편은 내가 장모님을 닮았다며 칭찬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엄마처럼 할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칼국수였다. 엄마에게 분명 레시피를 배웠는데도 따라 할 수 없었다. 언젠가 엄마에게 나는 칼국수의 비법이 무엇인지 물었었다.     


“엄마가 끓인 칼국수가 제일 맛있어. 비법이 뭐야?”     


“엄마가 칼국수를 언제 끓였는지 알아? 그건 바로 엄마가 생각날 때야” 


엄마와 나


당신이 어릴 적 엄마와 함께 먹었던 칼국수. 엄마는 그게 늘 그리웠다고 했다. 살면서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그리울 때마다 면을 밀고 육수를 끓였을 것이다. 엄마는 당신의 엄마를 그리워하며 칼국수를 만들어 냈고, 어린 나는 그게 맛있어서 몇 그릇씩을 비워냈다. 그런 딸을 보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칼국수를 먹고 나면 내게 짓던 엄마의 미소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나도 칼국수를 만들어 본다. 먼저 밀가루와 물을 섞어 치댄다. 반죽을 주무를수록 자꾸만 엄마가 해준 말이 떠올라 손에 힘이 꽉 들어간다. 남아있는 멸치를 가득 넣어 육수를 끓여내면 하얀 수증기가 집 안에 가득 차오른다. 수증기 때문인지 시야가 희미해져 눈을 깜빡이다 눈물을 슥 닦아냈다. 면이 익어 맛있는 냄새가 날수록 엄마가 떠오르고 엄마의 엄마 모습도 겹쳐 보였다. 이젠 내가 끓인 칼국수에도 엄마의 맛이 조금은 배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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