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제일 어려운 일은 선택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다. 그에 따른 책임을 감당하는 것도 오롯이 부모의 몫이기 때문이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름의 규칙이 있겠지, 남들 하는 것처럼 하면 되겠지 라는 쉬운 생각으로 육아를 시작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산후조리원에서 육아의 스킬을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집으로 돌아온 첫날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조리원 분들은 3시간마다 밥을 먹였다고 했다. 아이들이 순하다고 어렵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 말만 믿었는데 집에 오니 3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우는 것이다. 이 울음이 밥을 달라는 것인지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몸을 바둥거리며 울기에 분유를 줬는데 먹지를 않는다. 안아서 달래도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아이를 키우면서 제일 많이 의지했던 것은 육아선배들의 말이었다. 정답이 없다고 해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한 명쯤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주변에 물어보거나 인터넷을 뒤졌다. 주변에 물어보고 다양한 정보를 검색해 가며 좌충우돌 육아를 해나갔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과 나는 손발을 맞춰갔다. 배고플 때 우는 울음과 졸릴 때 우는 울음도 조금씩 구분이 되었고, 아이들의 특징도 하나씩 파악하게 되었다. 그렇게 육아에 조금씩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분리수면이라는 말이었다.
쌍둥이를 낳고는 100일 전까지는 친정집에서 아이들을 키웠는데,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시기가 맞질 않아서였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본의 아니게 분리수면(?)을 하게 되었다. 이사 가서도 쌍둥이를 안아 재울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분리수면에 대해서 공부하고 시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우선은 아이들과 내가 다른 곳에서 잘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았다. 또한 부모님은 내가 아이를 울리는 것을 전혀 허락하지 않았다. 쌍둥이가 조금이라도 울면 바로 달려가서 안아주셨다. 울려도 된다며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말해도 엄마는 잔소리만 할 뿐이었다.
"네 생각대로 배운 대로 육아가 되는 줄 아니? 모르는 소리 마라. 그리고 네가 얼마나 아이를 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니? 한때다 한때."
80일이 될 즈음 우리 부부와 둥이는 새 보금자리에 모였다. 나는 그때부터 이론으로만 배웠던 분리수면을 실천해 보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우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도 적응하고 스스로 잠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시행착오 끝에 분리수면에 성공할 수 있었다.
"거봐 하니까 되잖아. 그동안은 안아서 재워서 손탄 거였어."
나는 남편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100일 즈음에는 분리수면에 성공했다.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도 신기하다며 요즘 엄마들은 대단하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면 된다고. 유명한 교육법은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몰랐다. 아기들은 폭풍성장을 하면서 다양한 변화를 겪는다는 사실을.
한동안 잘 자던 쌍둥이들이 자꾸 울면서 깨어났다. 도무지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잠에서 깨면 다시 재우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성공했다고 믿었던 나의 분리수면은 원점이 되었다. 한 명이 울면 자고 있는 다른 아이가 깨기 때문에 부부 침실로 데려와서 안아서 재웠다. 아이가 자면 다시 방에 눕혔는데 피곤하면 그마저도 잊어버리고 함께 아침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이앓이, 수면퇴행, 원더윅스 등. 크느라고 아이들은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첫째는 특히 눈치가 빨랐다. 자신이 울면 엄마 아빠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올 때까지 큰소리로 울어댔다. 결국 부모는 아이에게 지고 말았다. 우는 녀석을 안아 들고 안방으로 들어오면 첫째는 바로 울음을 멈췄다. 침대에 함께 누우면 발을 동동 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너무 좋다고 신난다고 행복하다고. 아직은 정확하지 않지만 어마, 빠아라고 옹알이를 했다. 속은 줄 알면서도 그 모습이 예뻐서 한참을 안고 있었다. 내 품에서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든 아이를 보니 천사가 따로 없었다. 그제야 엄마가 한 말도 떠올랐다. 내 생각대로 결국은 안된다는 걸 말이다. 아무리 유명한 박사의 책을 보고 육아를 따라 해 보아도 아이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경험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육아하는 스타일을 보고 비난할 것이 없다는 것도 말이다.
완벽한 육아는 없다. 상황에 맞게 할 뿐이다. 완벽한 줄 알았던 나의 분리수면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모두가 잠든 밤 글을 쓰는 지금. 첫째 녀석이 한참을 울고 있다. 안아달라고. 자식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했던가. 나는 영원히 아이들한테 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