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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단어의 힘.

by 순록

엄마라는 단어에는 신기한 능력이 있다. 엄마가 되면 뭐든지 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원래 잠이 많은 편이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다녀왔을 때 일이다. 피곤한 나는 낮잠을 자려했다. 혼자서 잠드는 것이 무서웠다. 덜컥 겁이 났다. 나는 현관문을 잠그고 안전잠금장치까지 꽁꽁 잠갔다.


"일어나!!!"


엄마와 아빠의 화난 목소리에 눈을 떴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전에 잠이 든 나는 늦은 저녁까지 잠을 잤다. 현관 걸쇠까지 잠가둔 탓에 부모님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잠든 나를 깨우기 위해 부모님은 창문을 열어 소리도 지르며 물건도 던졌지만 딸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생각하신 부모님은 경찰에 119까지 불렀다. 눈을 뜬 내가 아무렇지 않았을 때, 우리 부모님의 황당하고 어이없는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렇듯 잠이 많은 나는 아이를 가지면서 더욱 불안해졌다.


'신생아 때는 밤새 수유를 한다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엄마가 되면 아기 울음소리에 새벽에도 눈이 떠진다는데 진짜 일까?'


잠을 자다가 애기들 우는 소리도 못 들어서 밥도 못주면 어쩌지 하고 걱정을 했지만 현실은 생각과는 달랐다. 그렇게 잠이 많던 내가 아이들 우는 소리에 번쩍 눈이 떠졌다. 정말 신기했다. 이럴 수가. 잠만보인 내가, 엄청 큰 소리에도 깨지 않던 내가 작은 기척에 깨다니. 역시 엄마가 되면 달라지는 것인가. 엄마라는 단어에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그 말이. 나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이었다. 또 있었다. 귀가 밝아짐과 동시에 코도 예민해졌다.


"똥 쌌다."


갑자기 시큼한 냄새가 난다. 어김없이 똥이다. 남편은 어떻게 그렇게 냄새를 잘 맡을 수 있냐 했다. 나도 신기했다. 원래부터 냄새에 예민한 편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변 냄새에는 더욱 그렇다. 아이들이 자고 일어난 방에 들어가자마자 코가 시큼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똥이다. 둘 중에 어떤 녀석인지는 기저귀를 열어봐야 한다. 둘째는 이유식을 먹을 때 꼭 똥을 싼다. 신생아 때는 예측 불가능하게 변을 보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에는 나름의 패턴을 알게 되었다. 둘째는 이유식을 먹으면서 갑자기 얼굴에 잔뜩 힘을 준다. 누가 봐도 볼일을 보는 것이다. 그와 달리 첫째는 놀다가 변을 보는 경우가 많다. 유달리 기분이 좋거나 손가락을 빨면서 발을 바닥에 내리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면 그때다. 기저귀를 열어보면 성인의 변냄새와 비슷한 것이 코를 찌른다. 자고 일어나서 한번, 밥을 먹고 한번, 놀다가 한 번씩 아이들 똥을 치우다가 하루를 다 보내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은 손목이 시큰시큰하다. 둘이서 기본 3번씩 변을 보는데 도합 6번이다. 적게는 6번 많은 날은 10번 기저귀를 간다. 물로 닦아내다 보면 주부습진은 늘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엄마는 힘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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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걸 어떻게 다 하냐고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본다면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정말 대단하다고. 엄마가 되면 누구나 다 하는 거라지만 처녀일 때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감자탕집에 갔었다. 맞은편 테이블에 쌍둥이 부모들이 있었다. 감자탕을 시켜놓고 먹으려는데 쌍둥이가 미친 듯이 우는 것이다. 밥을 먹던 엄마는 허겁지겁 숟가락을 내려놓고 한 아이를 안아 들었다. 남편도 나머지 한 명을 안고 밥을 먹으려 했다. 하지만 쌍둥이들은 안겨있는 게 답답한지 버둥대며 엄마 아빠가 식사를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추운 겨울이었는데도 두 분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식사도 하지 못한 채 우는 아이를 달랬다. 맞은편에서 모든 것을 목격한 나는 우리 엄마 한데 이렇게 말했다.


"저 거봐. 아기 낳으면 얼마나 힘들어~ 외식도 제대로 못하잖아. "


그렇게 말한 지 어언 5년이 지난 지금, 나도 쌍둥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분들이 왜 그렇게밖에 식사를 할 수 없었는지 처절하게 이해가 된다. 우리 부부도 쌍둥이를 데리고 처음으로 외식을 간 적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국물 요리를 시켰는데, 재료들을 넣고 국물이 끓기도 전에 두 녀석이 울기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두 녀석을 안아 들고 달래고 나니 국물은 다 졸고 면은 퉁퉁 불어있었다. 땀범벅으로 식사를 마치고 쫓기듯 가게를 나왔었다.


"엄마도 밥 좀 먹자. 얘들아 한 번만 봐주라. 밥 다 먹을 때까지만 봐줘라. 먹고 힘내야 너희들을 잘 양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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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 수는 없다. 서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아이들에게 애원하며 외치기도 해 보았다. 그래도 지금은 아이들이 이전보다는 크기도 했고, 둥이를 달래는 노하우도 생겼다. 하지만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다. 확실히 한 명이면 가능한 일이 둘이라서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쌍둥이 유모차는 1인 유모차에 비해서 2배나 폭이 넓다. 그래서 가게 문이 좁으면 유모차가 전혀 들어갈 수가 없다. 안고 가면 되지 않냐라고 말하신다면 한 아이라면 돌아가면서 교대로 안으며 식사를 할 수 있지만, 둘이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려 했으나, 유모차가 문에 걸려 포장을 해올 수밖에 없었던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 명이면 될 텐데, 아기띠를 하고 다니는 것도 되고, 기저귀 가방을 싸는 것도 간단하게 할 수 있을 텐데. 둘이라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 너무나 많다. 그래도 쌍둥이를 낳은 엄마니깐. 둘이라서 안돼 둘이라서 못해라고 생각하며 포기했던 것들을 해보려고 한다. 쌍둥이 데리고 문화센터 가보기. 쌍둥이 데리고 놀러 나가보기. 두 녀석과 함께 카페 가서 커피 마시며 글 쓰며 여유를 즐겨보기. 엄마는 하나씩 정복 중이다.


둘이니까 할 수 있고, 둘이라서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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