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여도 아이에 따라서 발달이 다르다. 둘째는 배밀이는 기본이고 스스로 앉고 물건을 잡으면 설 수도 있다. 그러나 첫째는 이제 배밀이 마스터 중이다.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느린 첫째는 늘 둘째에게 당하기 일쑤였다. 둘째가 배밀이를 먼저 시작했을 때 자꾸만 첫째에게 다가가서 얼굴이고 머리고 잡아당기고 만져댔다. 가만히 있다가 봉변당하는 첫째는 늘 울음으로 나에게 sos신호를 보냈다. 그럴 때마다 달려가서 억울한 첫째를 구출해 주었다.
화장실에 간 사이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들어보니 첫째의 울음소리다. '또 당하고 있나 보군 불쌍한 우리 첫째 녀석' 얼른 볼일을 마무리하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보았다. 그런데 웬걸. 울음소리를 낸 것은 첫째였지만 상황은 좀 달랐다.
둘째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첫째가 뺏었고 이에 당황한 둘째는 장난감을 달라고 첫째의 얼굴을 가격한 상황이었다. '그래 은채야 잘했다 잘했어ㅋㅋㅋ' 나도 모르게 속으로 첫째를 응원했다. 그동안 첫째가 당한 일이 많기 때문이다. 잠을 잘 때도 둘이 조용하다가 첫째가 갑자기 운다. 그렇다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둘째가 첫째의 몸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다. 둘 사이를 막겠다고 긴 쿠션을 놓아 막아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마저도 타고 넘어서 첫째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둥이들이 7개월이 넘어 8개월이 되면서부터 전세는 역전되었다. 늘 당하기만 하던 첫째도 이제 공격을 개시하게 되었다. 동생의 장난감을 빼앗기도 하고, 궁금하다고 둘째 녀석의 몸이나 얼굴을 만져보기도 한다. 나는 그 모습이 퍽이나 신기했다. 어릴 때는 서로 무관심이었는데 자라면서 상대방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침에 아이들이 웃는 소리에 잠을 깬 적이 있었다. 아이방에 가보니 둘 다 깨서 놀고 있었다. 서로 눈을 마주 보고 바닥을 두드려가며 상대방의 얼굴을 만지고 있었다. 두 녀석이 신나게 놀다가 엄마를 발견하고는 날 향해 함박웃음을 지어주었다. 그 모습을 보니 둘이어서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를 할 때도 내가 놀아주지 않아도 된다. 둘이서 같이 놀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한 가지 장난감에 꽂혀서 뺏으려고 우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대체로 사이가 좋은 편이다. 둘이라서 좋은 것도 있지만 걱정이 되는 것도 있다. 혼자가 아니어서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받을 수 없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서로에게 양보하고 희생하는 일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뱃속에 있을 때도 좁은 자궁에서 둘이 엎치락뒤치락 함께 있었는데 앞으로 살아가는 일도 두 녀석의 운명이지 싶다. 다만 엄마의 사랑을 반이라고 느끼지 않게 내가 두배로 노력하는 수 밖에는.
이제는 아이들의 자신의 이름을 인식한다. 은채야, 은솔아 하고 부르면 둘 다 나를 본다. 그리고 엉금엉금 기어서 나에게로 온다. 지금은 배밀이 수준이지만 기고, 서고 걷는 순간들이 올 때 어떤 감정이 들까?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눈물이 날 수도 웃음이 날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것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살면서 아이가 주는 행복이 이렇게 클 줄은 상상하지 못했었다. 결혼한 분들이 아이를 낳고 힘들어하면서도 둘째를 낳고 셋째를 낳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육아선배들의 얼굴을 보며 짠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저렇게 힘든데 굳이 아이를 왜 낳지?'라는 의구심도 들었었다. 하지만 이제 나도 알 것 같다. 왜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행복해하는지를 말이다. 부모가 되어보기 전에는 부모라서 겪는 행복은 절대 알 수 없을 것 같다. 부모이기 때문에 이 모든 힘듦을 감당해 본다.
둥이가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함께 헤쳐나갈 이 세상에서 나는 그저 든든한 편이 되어주고 싶다. 우리가 엄마가 그랬듯 나도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