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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도 그랬을까?

by 순록

최근에 가장 감명 깊게 보았던 드라마는 단연 '폭싹 속았수다'이다. 3대에 걸친 엄마와 딸의 이야기. 드라마 매회차마다 눈물을 흘리며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와 내레이션이 마음을 후벼 팠다. 눈물을 흘리며 먹먹한 기분으로 드라마를 보고 나면 한편으로는 씁쓸하고도 아쉬운 감정이 함께 들곤 했다. 감정소모 때문에 그렇다기보다는 드라마는 역시 드라마인가라는 생각이 날 괴롭혔다. 드라마에 나오는 저런 부모는 나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생각. 철없는 자식의 편견일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금명이 엄마 아빠 같은 성향의 부모가 없는 것은 확실했다.


어린 시절 나는 공부를 썩 잘하진 않았다. 늘 낮은 점수를 받아오는 나에게 부모님은 잔소리를 하셨다. 잔소리를 듣는 게 지겨워서 열심히 공부해서 점수를 꽤 높게 받은 적도 있었다. 그 당시 낮았던 내 성적에서 나올 수 없는 나름 높은 점수. 85점. 신이 난 나는 부모님이 시험지를 보여주며 칭찬을 바랐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처참했다.


"100점이 아니잖아. 좀 더 열심히 해봐. 아직은 부족해."


그 얘기를 듣고 엉엉 울었고 다짐했다. 다시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겠다고. 우리 집은 칭찬의 말보다는 비판이 더 익숙한 집안이다. 예쁜 부분보다 못난 부분을 이야기하는 부모. 어릴 때는 그런 말들이 나를 찔렀다. 내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표현의 방식이 다소 반어적이었다. 좋다, 잘한다라고 말해주면 되는데 알레르기처럼 입 밖으로 나올 줄을 몰랐다. 마음은 아닌데 늘 반대로 말했다.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었다. 나는 반드시 예쁜 말, 좋은 말만 해줘야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상대방에게 해주니 다들 좋아했다. 너는 어쩜 그렇게 위로를 잘하냐며 칭찬도 해주었다. 꽤나 뿌듯했다. 그러나 정작 내 가족에게는 한 번도 하지 못했다. 타인에게 쉽게 하는 칭찬이나 위로 같은 말이 나올 줄을 몰랐다. 왜 정작 우리는 서로에게 듣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출산을 할 때도 '우리 엄마도 나처럼 이렇게 힘들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쌍둥이가 울며 떼를 쓸 때는 나도 같이 울었다. '엄마도 딸을 셋이나 키우면서 많이 울었겠지?'하고 생각하면서. 엄마에게 잘해줘야지 싶다가도 막상 눈앞에 있으면 짜증만 냈다.


"엄마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쌍둥이 봐준다며 어떻게 한 번을 안 와? 너무하네 친정엄마가." 엄마 나 너무 힘들어라고 한마디만 하면 될걸 꼭 그렇게 엄마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마치 그동안 내가 당한 걸 돌려주기라도 하듯이 퍼부어댔다. 엄마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 딸 힘들지?라고 하면 될걸 "니 딸들이니까 당연히 네가 키우는 거지 엄마도 너 낳고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라고 응수했다.


"너 같은 자식 똑같이 낳아서 키워봐"라고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할 때마다 속으로 나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잘할 거라고, 내 자식 한 테만큼은 엄마와는 다르게 사랑을 듬뿍 줄 거라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도 그 엄마의 그 딸이었다. 쌍둥이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특히 사랑해라는 말은 도무지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분명히 다짐했고 머리로도 알고 있는데 습관이 되질 않았다. 의식하지 않으면 내뱉어지지 않았다. 마음은 아닌데 나는 쌍둥이를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는데 정말 맞는데. 억울할 정도로 쉽지 않았다. '엄마도 이랬으려나'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육퇴를 하고 침대에 누워서 쉬려는데 아이가 운다. 얼른 달려가서 안아주었다. 살면서 이렇게 누군가를 오래 안을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지금 밖에 없을 것 같다. 배고프면 밥을 주고 울면 달래고 똥을 싸면 처리해 주고 졸리면 재워주는 일. 사랑하지 않는다면 과연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그렇게 몇십 년을 아기를 키우고 돌보는 일. 사랑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쌍둥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마주치는 어른들이 한 마디씩 한다. 엄마가 아이들을 잘 키웠다고.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 맞아. 나 정말 사랑으로 잘 키우고 있어'라고. 나의 세월과 청춘을 먹으며 쌍둥이는 자라고 있다. 맞다. 그렇게 나도 자랐다. 엄마 아빠의 세월과 청춘을 갉아먹으며 그렇게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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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 나도 엄마가 되어 자녀를 키운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잘 못하면서. 하루 종일 아이들을 보살핀다. 아이들이 크면 나를 어떤 엄마로 생각할까? 내가 지금 엄마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과 같을까? 나는 우리 엄마가 싫다. 하지만 또 좋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도 그럴까? 좋은 엄마가 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그래도 엄마가 나를 키운 것이 사랑이듯, 쌍둥이를 키우는 나도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알았다면 표현해야지. 엄마 사랑한다고. 나도 엄마에게 그렇게 말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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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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