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사실 나는 그다지 밝은 사람은 아니다. 얼굴의 표정도 그렇고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긍정의 힘을 발휘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행복을 바란다. 아니 부러워하는 편이 맞겠다. 인생을 아주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이 생긴다. 도대체 저들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행복하다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에서 오는 것일 텐데, 같은 상황을 겪고도 마음이 느끼는 것이 달라, 어떤 이는 행복하고 어떤 이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일 고전적인 답이지만 물병에 물이 반이 담긴 상황을 보고 물이 반밖에 없네 하는 사람과 물이 반이나 있네 하는 사람의 차이인가 싶다.
예를 들자면 아는 지인 중에 굉장히 부러웠던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가정환경도 꽤나 좋은 편이었고 모두들 부러워하는 명문대에 다니는 언니였다. 얼굴도 예쁘고 남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그 언니.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너무나 부러운 삶을 살고 있었지만, 정작 언니의 삶은 괴로웠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은 곪아서 악취가 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부러워하면서도 아무도 언니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언니를 볼 때마다 부러움과 안쓰러움이 늘 공존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이야기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언니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언니의 친언니 때문이었다. 더 잘난 친언니 덕에 집에서 언니는 매일 비교를 당했고, 제일 못난 존재가 되었다. 결국 행복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인 것임을 그리고 마음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내 인생이 늘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20대에서 30대가 되기까지의 10년 동안은 통틀어 불행했다. 신이 있다면 내게 저주라도 한 듯 불행 한 바가지를 쏟아부었다. 잠시 숨을 돌릴 틈도 없었다. 불행하나를 극복하면 보란 듯이 다음 불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 내 삶이 이렇게 저주스러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고난에도 끝이 있는 것처럼, 마치 천둥번개가 지나간 후의 티 없이 맑은 날씨처럼 지금의 30대의 삶은 너무나도 고요하다. 불행이라는 삶을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사람처럼 말이다. 직장에서 한 선배가 내게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00씨는 어렵지 않게 살아와서 모를 거예요. 되게 행복하고 평탄하게 살아온 사람 같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20대의 나를 안다면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20대의 삶이 행복했던 것은 아니지만, 30대가 늘 행복한 것만도 아니다. 너무 평온해서 지루할 지경이라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다. 내 삶을 지켜본 누군가는 복에 겨웠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행복이라는 것은 고통 속에서든 보통의 하루 속에서든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 존재하는 것 같다. 늘 행복한 삶은 어쩌면 익숙하고 무뎌져 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행복을 한 번에 다 모을 수 있다면, 어떤 이의 하루 종일을 혹은 반나절을 또 어떤 이의 행복한 시간 5분을 모으고, 찰나의 순간 10초를 모아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고 싶다. 누구도 불행한 사람이 없도록 그리고 행복이라는 주제 앞에 평등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