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이 커피를 마시면 일어나는 일

by 순록


누군가 내게 물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좋아하는 것, 많다.

우울했던 지난 나의 삶을 지탱해줄 수 있는 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열거하는 일이었다. 이를테면 푹신한 이불, 날 향해 웃어주는 미소,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담소, 처음 가보는 여행, 비가 오는 날의 풀 내음, 어두컴컴한 밤의 달과 별, 빠질 수 없는 음악과 술, 귀여우면 끝나는 것들, 회사를 가지 않는 그날 자체, 말썽꾸러기 쿠키. 슬픔이 날 데려가도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조금은 행복했다. 그중에 단연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아니 좋아했던 것은, 커피이다.


나는 커피를 굉장히 좋아한다. 흔히들 말하는 얼죽아이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시원한 커피를 즐긴다. 커피의 종류를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한 가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고집한다. 달달한 커피보다는 상대적으로 쓴 커피를 좋아하는 편인데 아메리카노를 싫어하는 사람이 들으면 놀랄 만큼 진한 커피를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얼음이 들어간 아이스커피는 에스프레소가 2샷이 들어가는데 나는 2샷으로는 부족해서 1샷을 더 추가하고 마시는 날도 있다. 아아를 시키면 보통은 유리잔에 나오는데 마시기 전 빨대로 얼음을 섞을 때가 나는 좋다. 시원한 잔에 넘치기 직전까지 따라준 커피를 조심스레 빨대로 섞어본다. 빨대를 중심으로 얼음과 커피가 즐거운 소용돌이를 친다. 얼음이 잔에 부딪히는 소리가 상쾌하다. 얼음이 동동 띄워진 커피를 “꼴깍” 하고 한 모금 마시면 입안에 커피의 내음과 함께 시원함이 남는다. 그리고 또 한 모금 마시면 “하~” 하고 시원한 감탄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 이게 인생이지 싶은 생각이 든다.

커피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남편을 만나면서부터다. 남편이 남자 친구일 때, 우리는 카페를 좋아해서 커피를 자주 마시곤 했었는데 그이는 꼭 아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곤 했다. 그 모습이 좋아서 나도 따라 아아를 시켰다. 그이가 “크~” 하고 마시면 나도 따라 “크!” 하고 마셨다. 처음에는 쓰기만 하던 커피는 시간이 지날수록 맛있어지기 시작했고 나름 커피의 깊은 맛까지도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커피가 좋아지기 시작하니 누구를 만나든 카페에 가기만 하면 나는 줄곧 아아를 시키게 되었다. 디저트가 다양한 카페에 가도 시그니쳐 메뉴가 맛있는 카페를 가도 무조건 아아였다. 카페에 가면 착붙처럼 내 입에 붙는 단어였다. 아침을 시작할 때도 아아로 하루를 열었다. 아침부터 마시는 차갑고 쓴 커피가 몸에는 좋지 않은 것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몸보다는 내 마음에 좋은 것을 택했다. 꼭 그렇게 한잔을 마셔야 그날의 체력을 보충받는 기분이 들었다. 아침부터 시작하여 자기 전에도 아아를 마시면 잠이 더 잘 오는 것 같았다. 물 대신 마시기 시작하니 식사를 할 때도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무렇게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마음을 채우던 내 즐거움에 몸이 반항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느꼈던 커피가 차가워졌고, 물처럼 한 잔을 비우던 내가 한 잔을 다 마시는 일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고소하던 그 맛은 입안에 쓴 맛으로 돌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이상 마실 수 없다고 생각하니 퍽 슬퍼졌다. 습관처럼 늘 함께 하던 것이 없어지니 허전한 느낌마저 들었다. 주변 지인들은 카페인이 들어간 커피 대신 디 카페인을 마셔보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먹던 진한 아아의 그 맛을 똑같이 느낄 수는 없었다. 결국 고민 끝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잠시 쉬어가기로 결정하였다. 지금도 출근을 하거나 카페에 가면 진한 커피를 찾는 습관은 버려지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것을 내려놓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몸이 회복되면 아이스커피를 “크!”하고 마시는 그날이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