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에 있는 옷을 정리했어요.

by 순록


아버지, 한동안은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어요.

빚을 갚기 위해서도 그랬고 또한 나 자신에게 조금의 관심을 주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몸이 아플 지경까지 되었었어요.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술이며 야식을 먹었어요.

그렇게 먹으니 어깨가 뻐근하고 팔다리가 아프고 몸이 굳더라고요. 아버지가 그러셨죠. 이러다 큰일 나겠다고. 맞아요. 그렇게 자신을 방치한 체 살았었어요. 그렇다고 내 마음에 신경을 쓴 것도 아니었어요. 아이러니 하게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귀를 기울였어요. 그게 어떤 날은 위로가 되더라고요. 타인의 마음을 돌보는 일은 마치 내 마음을 치료하는 일과 같았어요.


어느 날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젯밤 피곤해서 잠들었던 몸 상태 그대로인 거예요.

팔과 어깨가 저리고 침대 밑으로 발을 내딛는데 종아리부터 허리까지 짜릿하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내 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결혼 이후로 오랜만에 올라가 본 몸무게는 앞자리가 2번이나 바뀌어 있었어요. 혐오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를 보는데 너무 불쌍한 거예요. 내가 사랑해 줄 수 있는 것은 나뿐인데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어요. 그 이후로 식단도 바꾸고 열심히 운동했어요.

살이 빠지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력을 하니깐 조금씩 나아지더라고요.



앞자리가 두 번 바뀐 게 다시 돌아오고 있어요. 이제는 정리해야겠다 싶어서 눈을 뜨고 옷장을 열었는데 내 옷이 없었어요. 그동안 자신을 신경 쓰지 않은 대가로 그리고 가난해서 남의 옷을 얻어 입었어요. 그러니 내가 평소에 입는 옷 스타일도 아니었겠지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때는 어쩔 수 없었거든요. 그저 살아야 했어요. 누구의 옷이든 어떤 신발이든 가방이든 상관없었어요.

보이는 대로 걸치고 살았어요. 그게 나를 살수 있게 해주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제는 내 삶을 살아보려고요.


옷장을 정리했어요. 생각보다 꽤 많더라고요. 이미 한차례 정리를 했었는데 또 한 무더기가 나왔어요. 과거보다 조금 나아진 나는 이제는 진짜 내 옷을 입고 싶어요. 누군가의 때묻은 옷이 아니라, 내 옷 말이에요. 나의 땀과 삶이 묻은 옷을 이제는 입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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