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라는 말의 의미

by 순록


저는 집안의 셋째 딸 막둥이로 태어나서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어요. 그래서인지 부모님과 함께한 추억이 많이는 없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을 기억하라고 하면 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먹고 밥을 해 먹던 기억이 많아요. 위에는 언니들이 있었는데 저와 언니들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어서 제가 초등학생일 때 언니들은 중학생, 고등학생이었어요. 주로 집에서 가족들이 올 때까지 혼자 시간을 보낸 일이 많은데, 그런 제가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반려동물이었답니다. 하교 후 집에 가는 길에 교문 앞에 커다란 박스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병아리가 너무 예뻐서 데려 오기도 했고, 물고기부터 달팽이 햄스터 등 키울 수 있는 동물이라면 무엇이든 집으로 데려왔어요. 이유는 다양했죠.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 녀석들을 보는 것이 즐겁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마음을 줄 상대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집에 혼자 있는 제가 안쓰러워서 주변 지인들에게 부탁해 강아지를 데리고 오곤 했어요. 하교 후 집에 오면 집안을 뛰어다니는 작고 조그마한 녀석이 선물처럼 있었고, 저는 너무나 기뻤답니다. 그런데 사실 어머니는 개털 알레르기가 있으셨어요. 막내가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로울까 봐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키우게 하다가 도저히 데리고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이웃집에 다시 돌려보내곤 했어요. 제가 강아지를 키우게 해달라고 할 때는 대소변도 치우고 산책도 시키고 잘하겠다고 했지만, 어린 저는 그 약속을 잘 지키지 못했던 것 같아요. 강아지를 키우는데 퇴근하고 돌아오면 강아지를 관리하는 것이 알레르기가 있는 엄마의 몫이 되어버리니 어머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으셨대요. 선물처럼 강아지를 데려온 엄마는 저한테 말도 없이 강아지를 다른 곳으로 보내기 일쑤였고, 집에 오는 것이 선물이었던 저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좋아하는 강아지에게 정을 주고 키웠지만 어느 날 그 녀석이 사라져 버리게 되었으니까요. 이런 일들이 몇 번 반복되니 저는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어요. 집안에 하루 종일 누워 있지를 않나 책상 밑에 들어가서 흰둥이가 없어졌다며 밤새 울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잔인한 일 같아요. 저는 그래서 지금도 이별이 익숙하지 않아요. 누구든 마찬가지겠지만,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일이 저에게는 아직도 버거운 일이 되었어요.

어린 시절에 만남과 이별을 많이 반복한 저는 자연스레 강아지와 멀어지게 되었어요. 그런데 저는 마음을 주고 기댈 곳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저는 결혼 후에 남편과 운명처럼 강아지를 키우고 있어요. 사실 결혼을 하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동안 너무 힘들었으니까 말이에요. 그리고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어떤 일인 줄을 줄곧 경험해왔으니까요. 그렇지만 강아지를 먼저 키우자고 한건 남편이었어요. 언니네 강아지를 며칠 맡아줄 일이 있었는데 강아지를 돌보면서 그 녀석의 따뜻한 품에 남편이 먼저 반해버렸고, 어느 날 제게 제안을 해왔답니다.


"우리도 강아지를 키워볼까? 내가 밥도 주고 대소변도 치우고 산책도 매일 시켜줄게"

이런 말을 하는 남편을 보니 어렸을 적에 제 모습이 겹쳐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지금의 쿠키 녀석을 데려오게 되었어요. 남편이 강아지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한 다짐은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저는 극단적인 이별은 하지 않으려고 다짐을 해요. 적어도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아직은 반려견의 존재가 저에게는 기댈 곳과 마음을 주는 것 보다도 큰 책임감으로 먼저 다가오지만, 그래도 인생을 함께하는 녀석이라는 사실은 분명해요. 저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강아지들에게 주지 못했던 사랑은 지금의 쿠키 녀석에게 듬뿍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또한 저도 그런 쿠키를 통해서 따뜻함과 평안함을 느낀답니다. 반려라는 말의 뜻은 짝이 되는 동무라는 뜻이래요. 인생을 걸어가는 길에 있어서 사람의 수명보다 5배 정도 빠르게 사는 강아지에게 제가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저도 그의 위안이 되어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