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dy Hwang 황선연 Jun 03. 2016

10. 화이트캐슬 - 1

 10. 화이트캐슬


 검고 울퉁불퉁한 암석으로 덮인 산 정상은 냄비처럼 움푹 파인 분지지형이었다. 그 한가운데에 깊은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풀과 돌이 가득한 땅으로 양탄자가 내려왔다. 그들을 내려준 후 그것은 스스로 말리더니 지원의 가죽 배낭 안으로 쑥 들어갔다. 


 새벽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지만 아직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이었다. 호기심이 든 수진이 호수 가까이에 가보려 했다. 그러자 히든벅이 그녀의 길을 가로막으며 고개를 내젓는 것이었다. 그는 무서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경고했다.


“지금은 안 된단다. 어서 저리로 가렴.” 


 지원과 이안은 마치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재빨리 여행킷의 텐트를 확대시키고 그녀에게 어서 들어가라고 재촉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주변은 조용해졌다. 

 

 어두운 호수 아래에서 공기 방울이 수없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물밑에서 검은 실뭉치 같은 것이 점점 떠오르더니 수면 위로 조용히 튀어나왔다.      



 다들 정오까지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밤새 장막을 넘느라 지친 몸을 침대에 눕히고 잠을 청하려 했다. 그런데 그녀의 귀로 여인의 가냘픈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호수로 오세요~ 호수로 와서 나와 함께 물장구치며 놀아요~ 어서 와요~”


 노래는 끊어질 듯 이어지며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럴 수가, 누워있던 그녀의 몸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지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거의 눈을 감은 채 앞으로 걸어 나갔다.

 

 텐트의 복도는 아직 어두움에 잠겨있었다. 몽롱한 무의식 상태인 그녀는 손으로 더듬어서 텐트의 출구를 찾고 있었다. 그때였다. 뭔가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녀는 눈을 번쩍 떴다. 어둠 속에서 새파란 불빛 두 개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각성 상태에서 깨어났다.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넘어지려던 찰나, 그녀는 자신의 등을 받쳐주는 강한 손길을 느꼈다.


“수진, 나야 나. 괜찮아?”


 이안이었다. 새파란 불빛은 그의 두 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 내가 여기 왜 있는 거지? 분명 어떤 노랫소리를 들었는데.”


 스스로 황당해하는 그녀의 어깨를 그가 꽉 잡더니 무척이나 놀란 목소리로 다그쳤다. 


“뭐라고? 너 절대 여기서 나가면 안 돼! 지금 나가면 큰일 나.”

 

“왜 그래? 우리 말고 밖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 잠시 확인하고 올게.”


“안된다니까. 히든벅의 예상이 맞았어. 심청이 널 노리고 있다니. 지금 텐트 밖으로 나가면 넌 죽을 수도 있어.”


 죽는다는 말에 등짝으로 소름이 짝 끼쳐오는 그녀였다. 심청은 도대체 누구지?


“죽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인당수’라고 불리는 저 호수에는 ‘심청’이란 물귀신이 살고 있단 말이야.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자신이 노리는 사람에게만 들리지. 노래로 사람을 홀려서 호수 속으로 유인하는 거야. 익사시키는 거지. 그래서 아무도 이 호수를 찾지 않는 거야. 죽임을 당할까 봐 겁이 나서.”


“왜 나만 노리는 거야? 너도 있잖아? 지원 아저씨도 있고, 히든벅도 있고.”


“이 바보야! 난 뱀파이어여서 숨을 안 쉰단 말이야. 그녀는 숨을 쉬는 사람을 원해. 히든벅 같은 짐승이 아니고. 지원은 뭐, 별로 외모가 마음에 안 드나 보지. 그리고 그는 벌써 두 번이나 무사히 지나가서 어차피 유혹해도 안 넘어온다는 것을 아는 거야. 그러니 너밖에 더 있겠어?”


 그는 잠을 더 자라며 억지로 침대에 떠밀었지만, 그녀는 도저히 누울 수가 없었다. 덜덜 떠는 그녀가 안쓰러웠는지 훨씬 부드러워진 어조로 그는 위로가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네었다.


“나가지 않았으니까 이젠 됐어. 정오에는 방비를 단단히 해서 들어가니까 괜찮을 거야. 그러니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들어가다니, 어디를? 설마, 저 호수 속으로?”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공포가 극도에 달하였다. 동공이 흔들리더니 그녀가 손을 휘저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난 전혀 수영을 못한단 말이야!” 


“수진, 내 눈 좀 봐줄래? 나 좀 봐봐! 너는 이제부터 깊은 잠이 든다.”


 그의 눈동자를 응시한 그녀는 침대 위에 쓰러졌다. 잠이 든 것이다. 뱀파이어는 자신의 눈동자로 인간에게 최면을 걸어 조종할 수 있는데 오늘 처음 그 능력을 사용해본 것이다. 


‘자고 나면 흥분이 좀 가라앉겠지.’


 그는 그럴 거라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갔다.




 수진이 푹 자고 일어났을 땐 이미 해가 꽤 떠오른 오전이었다. 다들 일어났는지 밖에서는 왔다갔다 웅성대는 분위기였다. 그녀는 방에서 나왔다. 복도에 막 뜯어온 풀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것에서 품어대는 향이 얼마나 고약한지 그녀는 코를 막은 채 지나쳐야 했다.

 

 그녀는 주방으로 향하였다. 식탁에 차려진 생크림과 체리시럽을 얹은 팬케이크는 그녀가 보통 때 같으면 아주 맛있게 먹었겠지만 오늘은 전혀 딴판이었다. 자동적으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갈 뿐 맛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주스를 마셨지만 계속 갈증이 느껴졌다. 


 참고 참다가 그녀는 식사를 하고 있는 일행을 향해 말로서 속마음을 드러냈다.


“저기요. 저는 아무래도 안 될 거 같아요. 수영도 전혀 못 하는 데다 물귀신까지 있다니 도저히 들어갈 자신이 없어요.”


“하나도 걱정할 거 없단다. 우리가 이미 다 방도를 마련해 놓았어. 그리고 해가 바짝 뜨는 정오에 들어가기 때문에 호수 안이 밝아 그것이 너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할 거야. 내가 브라잇동맹사에 손을 얹고, 아니 발을 얹고 맹세 하마.”


 히든벅이 생크림으로 범벅된 앞발굽을 마치 맹세하는 것처럼 여러 번 흔들어대며 강조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그녀였다. 


“전 잠수도 못해요.”


“하하, 사슴인 나는 어쩌겠니? 사슴이 잠수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니?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그는 발굽에 붙은 생크림을 샅샅이 핥으며 대답한 후, 이안, 지원과 조용히 쏙닥쏙닥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화이트캐슬', '향쑥', '거북영감'이란 단어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식사를 끝낸 그녀는 힘없이 침대로 가 누웠다. 마치 처형을 기다리는 사형수가 된 느낌이었다. 지원과 이안은 복도에 쌓인 풀을 이용해 긴 띠들을 만들었고 히든벅이 그것들을 바깥으로 옮겼다.

 

 잠시 후, 이안이 침대로 다가와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불쑥 잠에서 깬 사람처럼 그녀가 움찔했다. 그의 파란 눈동자가 겁에 질린 그녀의 갈색 눈동자를 응시하며 넌지시 말했다.  


“이제 갈 시간이야.” 


 그러나 그녀의 귀에는 “이제 죽으러 갈 시간이야.”로 들려왔다.

 또다시 공포와 두려움에 가득 찬 그녀, 말을 하려 했지만 입술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저기… 난… 도저히…” 


 그녀는 얼마 동안의 실랑이 끝에 그에 의해 강제로 밖으로 질질 끌려 나왔다. 


 환하게 빛나는 햇살 아래 에메랄드빛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자 그녀의 불안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히든벅은 어느새 풀띠로 몸통을 감아 꼭 시금치로 가운데를 싼 핫도그처럼 보였다. 지원은 풀띠를 자신의 양쪽 어깨에 메고 가슴과 등 위를 X자 모양으로 지나가게 감은 상태였다. 그가 그녀를 가까이로 불렀다. 그녀의 상체 역시 자신의 띠 모양으로 두른 후 덧붙여 그녀의 팔과 다리까지 꽁꽁 감싸기 시작했다. 그녀의 어깨에 멘 빨간 핸드백이 풀띠 밑으로 깔려 단단히 고정되었다.

 

 다들 풀에서 나는 고약한 향으로 고생했지만, 특히 몸에 가장 많이 두른 그녀가 최악이었다. 그녀는 손으로 코를 막아보았지만 팔에 둘린 띠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자 불평을 터트렸다.

 

“왜 이렇게 냄새가 지독해요, 지원 아저씨?”


“이건 향쑥이란다. 귀신이 가장 싫어하는 향을 가진 풀이지. 보통은 한두 줄로 충분하지만 심청의 노래를 들은 너에게는 여러 겹을 더 감았단다. 많이 감을수록 안전할 거야.”


“어휴, 움직이기가 쉽지 않아요. 미라가 된 것처럼 답답해요.”


“불편하겠지만 조금만 참으렴.”


 그는 이제 챙길 것은 다 챙겼나 곰곰이 따져보며 갓끈을 조이는데 별안간 아차 하며 놀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등에 멘 배낭을 앞으로 끌어와 안에서 작은 갈색 유리병을 꺼냈다. 뚜껑을 위로 잡아빼 열더니 그 안에다 진득한 회색 액체를 가득 부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향쑥보다 몇 배 더 지독하고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

 

 그녀의 눈살이 금세 찌푸려졌다. 그는 그것을 내밀며 재촉했다.


“하마터면 깜빡 잊고 바로 호수에 들어갈 뻔했구나. 이렇게 정신이 없어서야. 나랑 히든벅은 이미 먹었고 너만 먹으면 된단다.”


“이게 뭔데요?”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일명 ‘잠수시럽’이야. 아까 히든벅과 왕자님이 만드셨지.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쭉 들이키렴.”


 그녀는 병뚜껑을 살짝 흔들어보았다. 끈적이는 액체 위로 미끈한 건더기 같은 것이 붙어있었다. 그것을 가리키며 그녀가 다시 물었다.


“이것도 먹어야 하나요?”


“이런, 급히 만드느라 제대로 갈리지 않았군. 당연히 먹어야지. 어서 먹으렴. 그래야 빨리 떠나지.”


 다행히 먹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는 그녀였기에 한입에 털어놓고 꿀꺽 삼켰다. 그런데 상상치 못한 역겨움에 비위가 상했는지 급속히 속이 안 좋아졌다. 그녀의 얼굴이 막 체한 것처럼 새하얗게 변해가자 그는 다 잘 돼가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끄으억~” 


 그녀의 입에서 트림이 튀어나왔다. 

 

“준비 완료. 자, 출발합시다!”


 그가 소리쳤다. 그녀가 듣기에도 너무 요란한 트림이었기에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그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이안을 슬그머니 쳐다보았다. 풀띠를 전혀 두르지 않은 그는 그녀를 향해 실실 쪼개며 악동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얼굴과 목이 더욱 새빨개졌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은 느글느글하던 배가 편안해지고, 심한 역겨움이 트림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얕은 파도가 넘실대는 인당수에 여행킷에서 나온 나무 뗏목이 띄어졌다. 물은 너무나 투명하여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져서 ‘이런 아름다운 곳에 그런 것이 있을 리 없어. 다 거짓말이야.’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배가 멈추었다. 지원이 몸에 묶은 향쑥띠를 다시 확인한 후 먼저 간다는 인사와 함께 호수 속으로 풍덩 빠졌다. 히든벅은 다이빙을 했는데 꽤 나가는 몸무게로 인해 수면 위로 높은 파도가 일기까지 했다. 이제 이안과 수진 둘만이 남았다. 그는 운동화 신은 발을 아예 물속에 담근 채 배의 가장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톡톡 치며 그녀를 불렀다.


“수진, 이리 와서 좀 앉아봐. 아까 잠수시럽 재료들을 알려줄게.”


 지금 상황에서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순순히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러다 얼핏 떠오른 그의 악동 미소를 접하고 불안해진 나머지 일어서려던 찰나였다. 그가 그녀의 손을 확 낚아채었다. 그리고 물속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마치 그가 물귀신이라도 된 듯 그녀를 익사시키려 작정한 것 같았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호수 바닥으로 끌려가던 그녀는 그의 손을 마구 흔들어대며 아우성을 쳤다.    


“그냥 편하게 숨을 쉬어. 이미 시럽을 먹어서 괜찮다고.”


 그가 하는 말이 땅에 있는 것처럼 그녀의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거의 죽음에 이를 때까지 숨을 참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물이 한차례 그녀의 코와 입으로 들어왔다. 꿀꺽 삼켰다. 


 정말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삼킨 물이 마치 산소 덩어리나 된 것처럼 가슴이 편안해진 것이다. 물이 코나 입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숨을 쉬어보았다. 이럴 수가, 땅에서처럼 자유자재로 호흡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가 이끄는 대로 호수 바닥으로 헤엄쳐 내려갔다. 지원과 히든벅은 이미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래와 돌로 덮인 호수 바닥을 걸어 나갔다. 호수는 상당히 깊었지만 매우 밝았고, 다양한 물고기와 생명체들로 평화로워 보였다.


 해가 구름에 가려졌는지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다. 헤엄치던 물고기들이 급히 사라지고 멀리서 아련한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그녀뿐 아니라 다른 일행에게도 들려왔다. 저기서 뭔가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엔 검은 실뭉치처럼 보이다가 이내 그것이 여자의 뒤엉킨 머리카락임을 알고 수진은 경악했다. 


 보라색의 퉁퉁 부어오른 얼굴에 사악해 보이는 청록색 눈들이 번뜩이고, 입은 꽉 다물었는데도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하얀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는데 치마는 오징어처럼 줄었다 퍼졌다를 반복하며 빠르게 반동을 쳤다. 수진 뒤에서 걷던 지원이 품에서 마법지팡이를 꺼내 들어 그것을 향해 크게 호통을 쳤다.


“심청, 썩 물러나라! 여긴 네가 사냥할 만한 사람이 없어.”


 심청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전진해오다가 멈춰 섰다. 코를 킁킁거리더니 신음소리를 냈는데 아마도 향쑥 때문인 것 같았다. 심청의 찌그러진 시선은 오직 수진에게로 고정되었다.


“얘야, 나랑 같이 놀자. 내가 좋은데 알거든. 그곳에서 우리 함께 놀자.” 


 유혹하는 물귀신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그녀 주위를 맴돌았다. 별안간 구름에서 살짝 빗겨 난 햇빛이 호수 안을 비추었다. 심청은 괴성을 지르며 그것을 피하더니 그들이 가고 있는 방향의 그늘 쪽으로 급히 헤엄쳐갔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그녀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수진이 너무 무서워서 주춤하자 이안은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재촉했다.


“멈추면 안 돼. 계속 가야 해.”


 다시 해가 사라지고 그늘진 어둠이 호수 밑으로 깔리자 그녀에게 공포가 몰려왔다. 끔찍한 모습의 심청이 그녀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녀를 건드리지는 못했다. 수진은 되도록 그녀를 쳐다보지 않으려 눈을 거의 감다시피 했다. 

 

 작은 게 한 마리가 수진의 발목을 타고 오르더니 무릎을 감싼 띠를 집게발로 싹둑 잘라버렸다. 한 무더기의 향쑥 묶음이 게와 함께 그녀의 다리에서 벗겨져 수면 위로 올라가자 그 모습을 본 심청이 괴기스럽게 웃어댔다. 화가 난 이안이 마법지팡이를 쑥 내밀어 큰 소리로 위협했다.


“계속 그렇게 서성거리다가는 크게 다칠 줄 알아, 이 물귀신아!”

 

“지팡이는 저리 치우지 그래. 어차피 나에겐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잖아.”


 심청의 갖가지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 똘똘 뭉쳐 계속 전진해갔다. 


 저 앞으로 모래 바닥에 꽂힌 작은 하얀 깃발이 나타났다. 히든벅이 입으로 그것을 잡아당기자 그것에 붙어있는 넙적한 돌이 모래 밑에서 들어 올려졌다. 모래가 옆으로 흩어지며 바닥이 뿌옇게 되더니 그 아래로 초록 이끼가 낀 비밀 계단이 나타났다. 안에서 새어 나오는 강렬한 빛이 심청의 얼굴을 때리자 그녀는 괴성을 지르며 바로 도망쳤다. 


 그들이 계단을 내려가고 얼마 후, 넙적한 돌이 저절로 내려와 통로를 막아버렸다. 그 위로 모래가 사르르 덮어지며 깃발이 꽂혔던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대사죄문>


심청 님, 큰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합니다.

효녀 심청 님을 물귀신으로 만들다니 작가인 제가 봐도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입니다.

하지만 희망을 잃진 마세요. 곧 아주 멋진 외국 출신의 사내를 곁에 붙여드리겠습니다.

조선의 왕보다 더 멋있고 박력 있는 사내랍니다. 

그리고 걸린 마법도 풀어드릴게요.

다시 좋은 모습으로 변신하실 때까지 조금만 참아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