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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in Wonderland Mar 12. 2018

2018년 첫 달리기 보고

아니, 보고라기보다는...

 지난해에는 거의 매달 써 오던 달리기 보고를 지난 1월에는 쓰지 않았다. 다시 말해,  2월 초에 써서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달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발등 건막염에서 어느 정도 회복돼 100km를 훌쩍 넘게 달렸다. 지난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시절의, 조심스럽던 달리기에 비하면 꽤나 열심히 달렸다고 자부한다. 2월에도 그리 많이 쉬지 않았다. 두 달 합계가 200km는 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의 ‘달리기 보고’를 쓰지 않은 것은, 보고를 쓰는 것에 싫증이 났다거나 귀찮아서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잠시 목표를 잃었다. 매달 100km가 넘게 달리는 것과, 그렇게 달림으로써 몸무게를 60 kg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로 유지한다든가, 그렇게 함으로써 거울에 비친 모습에 소소하게 만족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대개 다음과 같은 정신상태를 겪었다.


 정기적으로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은 중독적이다. 운동과 운동의 결과가 합쳐진 총체적인 경험은 의식하지 않아도 의식에 작은 흔적을 만들고, 그 흔적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 스스로 강해진다. 상처가 딱지를 만들고, 딱지가 점점 딱딱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딱딱한 딱지는 더 강한 자극을 찾도록 한다.  어느 순간 자극이 딱지로 강화된 역치를 넘지 않으면 여지없이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몸을 더 혹사하게 된다. 혹사를 하게 되면 어딘가 경미하게 탈이 나고, 탈이 나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조금 힘들어진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지면 운동량이 줄어들고, 자연히 ‘중독을 잠재우는 양’을 채우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반복의 반복.


 1월 말에서 2월 중순이 딱 그런 시기였다. 달리면서도 우울했으니 ‘러너스 블루runner’s blue’라고 불러도 될까. 게다가 2월에는 동계올림픽과 설 연휴가 있었고, 마침 주말근무를 광화문이 아닌 목동 회사에서 하게 되어 주말에 기분 전환 삼아 트레드밀 위에 서기도 어려워졌다. 여러모로 1월보다 달릴 기회가 훨씬 줄어들었다. 12월에서 1월 사이 발병한 두피의 경미한 모낭염-독한 세제에 땀에 젖은 헬스장 공용 수건을 거의 찌다시피 해서 빨고, 제대로 헹구지도 않은 채로 그대로 말려 다시 나눠주는 기업형 헬스클럽의 수건을 일상적으로 쓰다 보면 너무나 쉽게 걸리기 쉬운-도 달리기의 목표 상실에 제대로 한몫했다.

 

 그래서, 2018년의 첫 달리기 보고는 다시 의욕을 찾기 위해 쓴다. 비록 달린 거리는 평소의 두 달치를 채웠지만, 심기일전해서, 다시 즐겁게 달리기 위한 몸과 마음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1, 2월에 대한 ‘보고’의 의미보다는 앞으로 남은 열 달에 대한 다짐을 하기 위해 쓴다. 아니, 다짐이라고 하면 거창하지.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냥 달리기를 대하는 자세를 내적으로 확립하기 위함이라고 해 두자.


 내가 내적으로 확립하고 싶은 달리기를 대하는 자세는, 말하자면 ‘공空’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머리를 잡아 끄는 ‘숫자’를 버려야 한다. 거리는 얼마를 달려야 하고, 평속은 얼마를 넘지 말아야 하고,  그런 마음을 모두 비워 버리는 거다. 달릴 수 있는 만큼,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리면서 달리기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다. 잔잔하게 bgm 정도는 배경으로 깔아 두고, 가능하면 모니터에 눈을 두지 않고(출입처 생활을 하면서 달리면서 TV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겠다는 무심한 마음으로 달려보도록 하자. 달리는 시간만큼은 머리가 생각을 쉬도록 해 보자.


 이게 말은 쉽지만 지키는 것이 어려울 거란 것쯤은 알고 있다. 골프 코치가 초보자에게 스윙을 가르치면서 ‘힘을 빼고 치면 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도 골프처럼 적절한 연습을 거치면 몸에 익게 마련이다. 앞으로 두 달, 말없이 실천해 본 다음에 이른바 ‘중간 점검’이라는 걸 해 보자.

 

숫자를 버리고 공空으로 돌아가기 위한 실천 방안은 다음과 같다.

 

1. 월간 합계를 내지 않는다. 거리/속도/평속 모두. 

2.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달리기 기록에서 거리를 제외한 ‘러닝 데이터’를 제외한다.  

3. 모든 러닝 기록은 앱에만 저장하고, 가능하면 의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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