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원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 목이 마르면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 물을 향해 손을 뻗는 것, 원치 않는 말을 들었을 때 다른 말을 하며 화제를 전환하는 것. 언제나 일어나는 일들이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모든 당연한 것들은 내가 '안녕'하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안녕이라는 거, 매일 하고 매일 듣는 말이지만 새삼스럽게 고맙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위로의 말과 더불어 느껴지는 나의 안녕 함이란. 사람 참 간사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책을 읽는 초반부의 감정이 그러했다. 충분한 설명조차 불가능한 아픔이 찾아와 마틴은 식물인간이 된다. 원인이라도 알 수 있다면 납득할 수 있으련만 그렇지 않기에 가족들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보통의 아픔과는 달리 더 나빠지지도 않고, 더 좋아지기를 바랄 수 조차 없다. 마틴은 그저 침대에 누워 하루에 몇 번씩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누군가 몸을 뒤집어주길 기다려야 했고, 그의 가족들은 주말의 소소한 나들이, 승진, 일상, 모든 것들을 일단은 미루어 둔 채 마틴을 지키기로 한다. 그리고 4년 후, 마틴은 깨어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데 어느 곳 하나 제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그렇기에 가족을 포함한 그 누구도 마틴이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날, 간병인 버나가 그에게 의식이 있음을 눈치챈다. 그렇게 마틴의 인생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9년 만의 일이다.
책은 변화하고 조금씩 나아지는 마틴의 삶과, 도합 13년간의 병원생활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전개되어간다. 시간 순으로 이어지는 긴 이야기가 아닌, 8년 전 어느 날과 오늘 내가 쓰는 일기가 한 페이지를 사이에 두고 펼쳐진다. 이미 나아지고 있는 그의 삶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그 전의 비참하거나 인간으로서 치욕스럽기까지 한 이야기들은 독자로 하여금 극적인 분노 대신 정말 다행이라는 안도와 희망을 갖게 한다. 책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구성에서도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틴의 성정이다. 자신의 몸 안에서 갇혀 지내던 9년 동안의 어느 날, 그는 엄마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평범한 가정생활의 붕괴로 인하여 마틴의 엄마는 우울증 진단을 받게 되고, 마틴을 향해 '네가 죽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만다. 그러나 마틴은 엄마를 이해한다. 현실적으로 누구든 원망하고 싶은 상황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려 깊은 아들은 엄마를 원망하는 대신, 눈물을 닦아주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이 밖에도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많은 치욕스러운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도 마틴은 침착하다. 불필요한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다. 그의 감정은 대체로 평온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침착함이 그가 만난 모든 기적을 불러온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책에서 희망을 돋보이게 만드는 건 마틴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임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병원에서의 시간 동안, 그는 정말이지 수많은 간병인들을 만나는데, 그중에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도 있고, 마틴은 자신이 노동력을 제공할 대상 일 뿐이라며 인격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이도 있다. 인간 자체에 대한 기대감을 완전히 저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나 마틴은 그들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자신에 대해 좋은 평을 하는 간병인, 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자신의 사적인 아픔을 토로하는 간병인, 자신과 눈을 맞추어 소통하려 하는 간병인 등을 만나며 마틴은 긍정적인 사고를 유지한다. 어쩌면 버나를 만나고 검사를 하게 된 것은, 마틴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희망을 저버리지 않은 긍정의 힘일지도 모른다.
그 희망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고, 휠체어가 마틴의 다리가 되어주면서, 그의 인생은 새롭게 펼쳐진다. 가족과 조차 소통할 수 없던 그는 일자리를 얻고,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위한 강연자로 나서며 인생의 새로운 소통을 배우게 된다. 오랜 시간 최소한의 사회생활도 할 수 없었기에 초반 그는 짐짓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인상적인 것은, 책에서 서술하는 그가 느끼는 소통의 어려움 또는 불편함이, 사회생활을 오랜 시간 해온 이들도 느낄 수 있는 흔한 고민이라는 것이다. 경험이 많다고 해서 모든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기에, 마틴이 토로하는 고충들에 공감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마틴은 거듭되는 소통으로 극복한다.
소통이 관계를 구원한다면, 사랑은 인간을 구원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을 인지하고 있으나,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연인관계를 맺는 꿈은 꾸지 못하는 마틴에게도 운명의 그녀가 나타난다. 조애나는 마틴을 불편한 사람, 나와는 다른 사람이 아닌 철저히 그녀와 같은 사람으로 대한다. 그런 과정에서 자유의지 없이 누군가의 판단으로 움직여야 했던 마틴에게 조애나는 선택의 자유를 준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가는 것이 당연했던 마틴은 아침에 할 일을 정하는 것, 마트를 갈 것인지 정하는 것 등을 놓고 갈등하고 짧게나마 좌절한다. 그러나 그 순간 마틴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사랑하는 이와 원하는 삶을 사는 세계. 그렇게 조애나는 마틴을 구원한다.
책을 덮고서, 저자 마틴의 테드 강의 영상을 다시 한번 찾아봤다. 그의 실제 모습은 책 속에서 느껴지는 것보다 훨씬 빛나고 있었다. 그 보다 더 안녕해 보일 수는 없을 정도로. 컴퓨터 기계음으로 전해지는 그의 고맙다는 말이 강의를 끄고서도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다. 그의 감사와 희망과 사랑은 여전히 안녕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