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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 Lee Mar 02. 2021

(2) 2021년 3월 2일

내 인생에 씐 굴레가 있다면 그것은


운동이다


운동으로 자기 관리를 해야만 하는 운명, 누구나 그렇지 않냐고? 분명 운동을 딱히 하지 않아도 체력이 좋고 감기에 잘 안 걸리고, 조금만 운동을 해도 근육이 몸에 찹쌀풀처럼 쩍쩍 붙는 사람, 먹는 것에 비해 살이 안 찌는 사람이 분명 있다.


나는 아니다. 저 나열해둔 몇 가지 중 하나만 해당되었다면 나는 매일매일을 아 오늘은 해야 되는데(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며), 아 너무 피곤해 근데 해야 되는데 헬스장을 가야 되나(소파에서 저녁에 20분 눈 붙이고 일어나며), 아 오늘은 두배로 해야 되는데..(떡볶이를 먹으며)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 거다. 운동은 정말이지 굴레가.. 확실하다. 그 굴레는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욕망에 기인한다. 나의 체형과, 식욕으로 대표되는 나의.. 욕망 같은 것 말이다.


우리 집의 가족 구성원은 넷이다. 중년 부부와 두 딸. 첫째인 나는 엄마의 얼굴(정확히 외탁이다. 지금 내 얼굴이 엄마의 지금 내나이때 얼굴과 똑 닮아있어 사진을 마주하자마자 당황했을 정도)에 아빠의 체형을 가져왔고, 동생은 아빠의 얼굴에(둘이 나란히 있는 것을 옆에서 찍었더니 그렇게 닮아있을 수가 없더라..) 엄마의 체형을 받았다.



그 말인즉슨, 나는 키는 작지 않으나 어깨와 골반이 넓고 노년에 건강연금으로 믿고 있는 엄청난 허벅지를 소유한 사람이고, 동생은 키가 작고 별 다른 노력 없이 마른 체형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실 언뜻 보기엔 동생과 나는 자매라고 단정 짓기 힘들다. 아무튼 동생은 좀 많이 앙증맞다.


생각해보면 나도 분명 말랐던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땐 목욕탕에 가면 너무나 말라서 아주머니들이 너는 왜 이렇게 말랐니 발레 하니?(팔다리가 길었나 보다 그땐..) 물어보기도 하고, 거울을 보면 갈비뼈가 보인 게 그때가 유일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성장기가 막이 오른 후, 급식이 맛있어졌다. 그러면서 살이 오르기 시작했고, 마름에서 벗어나 보통 체형을 가지면서 키가 자랐다. 키가 자라면 살이 키로 간다고 하는데,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이 대비 먹는 양이 많았던 거 같다. 중고등학교 6년 내내 매점이 있는 학교는 정말.. 축복이었지.



대학교에 가선 살이 다시 빠졌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학교 내에서 후문과 가까운 단과대 건물과 정문과 가까운 동아리방을 오가면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운동량이 많아졌다. 아마 나는 그때 생긴 근육으로 20대를 살았을지도 모른다. 술도 많이 마시긴 했는데 20대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먹는 것에 비해 살이 덜 찌는 시기임은 확실했다. 오죽하면 동아리 선배가 여자 세명에서 자장면 하나씩에 탕수육 큰 거 하나 군만두를 신나게 먹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워하며 너네 나중에도 그렇게 먹으면 살찌니까 조심하라고 할 정도였다.


그때 그 말을 스물여섯엔 되새겨야 했거늘.. 그러질 못했다. 취업을 하고서 동기들과 여기저기 다니고, 엄마 아빠랑 외식하고, 술도 열심히 마시고 그러다가 다이어트를 하긴 했는데 은행 그만두고 대학원 다니면서 낮술부터 12시간씩 술을 마셔대는데 살이 어떻게 안 찔까. 3년 만에 뺀 거에 두배만큼 요요가 왔다. 그땐 그게 요요인지 모르고 정신승리를 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이는 서른이 넘어있었고, 운동을 해도 좀처럼 살이 빠지지 않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게다가 나는 남들보다 근육이 심하게 정말이지 심하게 붙지 않는 체질이었다. 단백질을 챙겨 먹어도 쉽지 않을 정도였다. 체력은 좋아져서 지금도 운동을 하고 글을 쓸 수 있을 정도까지는 됐는데.. 체력이 너무 좋아진 게 문제다.


운동으로 에너지를 쏟아내지 않으면 잠이 안 오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운동이 굴레가 돼버린 진짜 이유다. 어떻게 알았는가 하면, 2.5단계로 한동안 운동을 못 가고 일이 많다는 핑계로 홈트도 두 달여를 하지 않았다. 새벽까지 집에서 야근으로 잔업을 마치고 자도 잠이 안 오는 사태를 겪고서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아. 같잖은 몸뚱이 같으니라고. 평생 한 것도 아닌데 이럴 수 있다고? 머리는 모르지만 몸만 아는 습관이 있다고 하더니 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눈꼬리가 점점 쳐져가고 있음에 묘한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아. 침대에 눕자마자 잘 수 있을 거 같아. 조금 행복해진다. 얼른 마무리를 짓고 침대에 누워야겠다. 꿀잠을 잘 거야. 꿈도꾸지 않을 거야. 모두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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