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
며칠 전에 집에서 아이들과 영화를 봤습니다. 재미있는 부분이 많아서 다 함께 깔깔거리며 즐겁게 웃었지요. 그러던 중 유난히 웃긴 장면 하나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잠깐만. 우리 다시 뒤로 돌려보자. “
그랬더니 아이들이 물었습니다.
“뒤요? 앞으로 돌리는 거 아니고요? “
아이들의 물음에 저는 의아해하며 대답했죠.
“응? 뒤 아니야? “
우리는 셋 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몇 초 전의 장면으로 영화를 되돌렸습니다. 문득 궁금했습니다. 영상을 돌려보는 것은 뒤일까요, 앞일까요? 왜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는 걸까요?
저에게 지나간 것은 ‘뒤’에 있습니다. 과거는 뒤로 지나가 버리고, 미래는 앞에서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저와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직선형의 시간 속에서 과거가 ‘앞’에 있다고 느끼는 거죠. 영화의 앞부분이 과거이고, 뒷부분이 미래이기 때문일까요?
흔히 한국어나 영어에서는 미래를 앞에 있는 것으로, 과거를 뒤에 지나간 것으로 이해합니다. 영어 표현 중에 ‘look forward to tomorrow.'나 ‘leave the past behind.'만 봐도 미래가 앞, 과거가 뒤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어떤 실험에서는 우리가 미래를 생각하면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고, 과거를 생각하면 살짝 뒤로 기울어진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고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다른 언어에서는 과거를 앞으로 보고, 미래를 뒤로 본다는 사실입니다. 남미 안데스 지역에서 쓰는 아이마라어가 그렇습니다. 앞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고, 뒤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저희 아이들이 생각했던 것처럼요.
언어마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릅니다. 권력이나 지위에 대한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언어에서는 위, 아래의 높이로 권력을 표현하지만, 일부 아프리카 언어에서는 앞, 뒤의 수평적 비유로 표현합니다. 앞의 사람이 지도자이고, 뒤의 사람이 추종자입니다. 선임자와 후임자의 느낌이지요.
위치에 대한 표현도 다릅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사물을 가리킬 때 왼쪽, 오른쪽, 위, 아래 같은 표현을 쓰는데요. 호주 원주민 언어 중 구구유미디르어의 경우에는 동서남북 방향을 사용합니다. ‘책이 네 왼쪽에 있어.‘가 아니라 ’책이 남서쪽 방향에 있어.‘ 하는 것이죠.
우리는 모두 같은 세상을 바라보는데 왜 이렇게 표현이 다른 걸까요? 그 이유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언어가 세상을 인식하는 틀을 제공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언어로 사고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세상을 정의합니다. 언어에 따라, 사람에 따라 표현이 달라지는 것은 사고하는 범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세상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쓰는 언어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우리의 사고를 기반으로 세상을 보니까요.
과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과학은 객관성을 지향하지만,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 안에서 작동됩니다. 우리가 ‘진리’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리된 진리'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간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인 세계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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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광대한 우주 공간 속의 작은 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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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광대한 우주 속의 먼지 한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는 여전히 인간 중심적이죠.
예를 들어, 우리는 지구의 자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중심으로 해가 돌고 있다는 듯이 얘기합니다. 칼 세이건이 말한 것처럼 '지구가 돌아서 태양이 지평선 아래에 가려진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실제의 세상에 더 가까운 표현인데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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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의 자전을 말하는 대신에 해가 뜨고 진다고 말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언어를 써서 말하면, <빌리, 지구가 돌아서 태양이 지평선 아래에 가리워 때까지는 집에 돌아와야 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아마 빌리는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가버렸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태양중심의 사고방식을 정확하게 알려줄 우아한 화술을 찾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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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천문학은 겸손과 인격수양의 학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과 우주를 설명하는 우리의 언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지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정복하고 표현하려는 언어가 아니라 좀 더 겸손한 언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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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의 지구 사진은 천문학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즉 행성들의 크기 - 별이나 은하들은 말할 나위도 없이 - 에 비하면 인간들이란 하찮은 존재이며 암석이나 금속으로 이루어진 보잘것없는 하나의 고체덩어리에 붙어사는 생물의 얇은 막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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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과학을 통해 그 이해를 확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언어마다 세상을 다르게 이해하듯이, 세상을 정의하는 방식이 단 하나일 수 없기 때문이죠.
영상을 몇 초 전으로 돌려보는 것은 그래서 앞도 뒤고, 뒤도 되는 것입니다. 책의 위치는 왼쪽도 되지만 남서쪽도 되고요. 세상을 이해하는 여러 방식을 존중하고, 언어의 한계를 받아들이며, 더 나은 표현이 없을지 고민하는 것. 그것이 우리 인간이 인간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으로 이해하게 되었듯이, 우리의 언어도 창백한 푸른 상태임을 인지해보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