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세상의 소식을 살펴보다보면, 비인간적인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미국의 한 이민자 수용 시설에 대한 뉴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수용 시설은 Alligator Alcatraz라는 곳인데요. 2025년 7월에 늪지대 위에 급하게 세워진 시설로, 오픈 직후부터 비인간적인 환경 및 원주민 토지 위에 지어졌다는 점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 시설의 환경은 매우 비인간적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시설 내에 수용된 사람들은 좁은 철창 안에 갇히게 되었는데, 침대 옆에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시설 안에는 샤워 시설조차 없는 데다가 제공되는 음식은 상하고 구더기까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인권단체인 엠네스티는 이 수용 시설이 인간성을 결여하고 있다며 경고했습니다.
해당 시설이 향후에 폐쇄가 될 지 유지가 될 지는 지켜봐야할 문제겠지요. 폐쇄 여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으나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2025년인 오늘날에도 이러한 비인간적인 일들이 우리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지요.
사실 비인간적인 일은 인간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중세의 마녀 사냥이 그렇고, 제국주의 사대의 식민지 정책이 그렇습니다.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 그리고 현대의 전쟁과 테러 등도 그렇고요. 이러한 사례들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한 극단적인 폭력과 착취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러한 비인간성을 만들어내고, 때로는 정당화하거나 외면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비인간성이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사전적으로는 사람답지 않은 것, 사람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사람답지 않은 일이나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통하여 인간성을 훼손하는 모든 일이 비인간적인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악(Evil)'과 유사한 개념처럼 느껴집니다.
사전적으로 악(Evil)은 도덕적, 윤리적 기준에서 나쁘고 해를 끼치는 성질이나 행위로 정의됩니다. 인간과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행위, 상태, 혹은 힘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죠. 토마스 아퀴나스는 악을 '선의 결핍'으로 정의한 바 있는데요. 인간이 선을 충분히 실천하지 못하면 악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비인간성도 결핍의 문제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성이 결핍된 상태에서 비인간성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죠.
인간성이 극도로 결핍된 상태, 즉 비인간성이 극대화된 대표적 사례로는 홀로코스트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의 시스템화된 폭력과 공포는 '개별적인 인간들'을 '악(Evil)한 비인간들'로 만들었습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명령에 따라 행동만 했던 평범한 개인들은 끔찍한 악이 되어 무참하게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으로 설명하며, 악은 어떤 사악한 사람의 산물이 아니라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평범한 사람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강조한 바 있지요.
이러한 비인간성에 대해 생각하면서 오늘은 프리모 레비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화학자입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프리모 레비의 글이 빅터 프랭클과는 달리 냉정한 증언 형태의 기록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프리모 레비는 대중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심리적인 충격을 주는 쪽이거든요.
프리포 레비는 여러 책들을 남겼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것이 인간인가>입니다. 해당 책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책이고요. 이 책은 참혹하고, 불편하고, 답답하고, 화가 나지만 그래도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실제 그가 겪었던 경험이 글로 남은 것이니까요. 그는 기록자이기보다는 증언자에 가깝습니다.
프리모 레비가 경험한 세상은 사람들의 이름이 모두 사라지고 번호만 남은 세상,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진 극단적으로 비인간적인 세상입니다. 오늘 살아 있다는 것은 단지 오늘 죽지 않았다는 것일 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잔인하고 부조리하고 악한 세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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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처음으로 우리의 언어로는 이런 모욕, 이와 같은 인간의 몰락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우리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밑으로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었다. 이보다 더 비참한 인간의 조건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우리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옷, 신발,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빼앗아갔다. (..) 그들은 우리의 이름마다 빼앗아갈 것이다. 우리가 만일 그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면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할 터였다. 그 이름 뒤에 우리의 무엇인가가, 우리였던 존재의 무엇인가가 남아 있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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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따르면, 그곳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밑바닥의 세상입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조차 없는 공간, 삶의 의미나 도덕적 가치 등이 완전히 증발한 곳으로, 오로지 비인간만 남은 곳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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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최소한 문명의 골격, 골조, 틀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마지막 남은 것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한다.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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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서 저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비인간으로 둘러쌓인 곳. 그 끔찍한 곳에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겠다는 것은 비인간이 되지 않고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겠다는 강렬한 의지입니다.
프리모 레비는 비인간의 세상에서 살아남았고, 인간답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아닌 그들에게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이름을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증언했습니다. 침묵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걸 그는 알았을 겁니다. 어떤 침묵은 묵인과도 같습니다. 침묵으로 인정해버리는 것이죠. 살아남은 자는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살아남은 자는 계속하여 말하고, 글을 써야 합니다. 과거에 존재했던 사실에 대해 계속하여 증언하는 역할을 해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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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졸립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졸음이 긴장과 두려움에 가려져 있다. 나는 지금도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말을 하고 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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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를 문화적 콘텐츠로 재생산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지라도, 레비의 글은 역사적 증언으로서 분명한 가치를 가집니다. 때로는 이러한 증언이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할 지라도, 그것은 기록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이죠. 쉽게 잊히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우리가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입니다. 과거를 토대로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으니까요. 또한 우리는 비인간성에 대해 침묵하지 않음으로써 인간다움을 지켜내야 하죠. 인간으로 남는다는 건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닌, 비인간과 악에 동의하지 않고 대항하는 일이라는 걸 기억해야 하고요. 아무런 생각 없이 있다가는 비인간이 될 수도 있음을 늘 경계하면서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현재도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일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당장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비인간성에 동의하지 않는 일, 글을 쓰는 일, 그리하여 기록하여 남기는 일이겠지요.
그러므로 앞서 말한 비인간적인 환경의 수용자 시설에 대해서 저는 당분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겠습니다. 폐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낼 수도 있겠지요. 계속 글을 쓰는 것도 대항하는 일이니 좋을 것입니다. 어떤 경로로든 저 역시도 비인간이 되지 않고, 인간으로서 저의 인간성을 지켜내며 살아가기 위해 조금씩 노력해 나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