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
몇 달 전, 미국의 한 테마파크에서 범고래 쇼를 본 적이 있습니다. 돌고래도 아닌 범고래가 쇼를 한다니 처음에는 꽤나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연이 시작되고, 거대한 범고래 세 마리가 인간의 신호에 맞춰 묘기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나중에는 결국 눈물까지 났습니다.
쇼를 보러 온 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박수를 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의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이 아팠거든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게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냐고요.
범고래는 높은 인지 능력과 사회성을 갖춘 동물입니다. 넓은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동물이죠. 그러나 제가 만난 범고래는 좁은 수족관 안에서 정해진 시간마다 쇼를 해야 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오로지 인간의 이익을 위해 동물을 수단으로 써서는 안 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쇼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이런 제 생각을 말로 전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당신 역시 돈 내고 쇼를 보러 온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 돌아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돌고래나 물개는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수많은 동물원은 그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날 선 질문을 받아야 할 지도 모르고요.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글입니다. 글은 자신의 생각을 세우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도 있지요. 감정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글로 일목요연하게 쓰는 것이 제 생각을 전달하고 타인을 설득하는 데에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생각을 아래처럼 글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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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고래를 훈련시키는 것은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야생의 범고래는 하루 100km 이상이동하고, 매우 복잡한 사회 집단인 포드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한 포드는 많게는 30마리까지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평생 함께 지내며 문화를 공유하죠. 그런 범고래들이 좁은 공간 속에서 먹이를 제한받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쇼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그들에게 좋은 삶이 아닙니다. 해당 테마 파크의 전 트레이너인 존 하그로브는 미국 라디오 방송에서 범고래들의 먹이 배급 방식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범고래가 열심히 일하도록 너무 배부르지도 않고, 너무 굶주리지도 않은 경계선에 머물게 해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죠. 동물들의 생존 본능을 장악하여 묘기를 부리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존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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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다면 몇 명의 사람들이 제 글을 읽어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정말로 잘 쓴 글이라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글을 읽고 난 후에 어떠한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고요.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다 같이 시작하게 된다면, 하나의 글이 세상을 바꾸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현대 철학자인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이라는 책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해당 책은 현대 동물권 운동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며, 특히 동물 실험과 공장식 축산의 잔혹함을 자세하게 폭로하여 동물 복지 기준을 강화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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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아무런 이유 없이 아기에게 일정량의 고통을 주는 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이 말에게 동일한 양의 고통을 주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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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아기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잔인한 행동처럼 느껴지죠. 그런데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기에게 고통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되었다니, 정말 그런 것일까요? 이는 지나친 생각은 아닐까요? 여러 의문이 들면서 저자가 하려는 얘기는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싱어는 동물 역시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째, 그들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물이 움츠리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고통을 피하려고 하는 등의 모습으로 그들이 고통을 느낀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죠. 둘째로는 우리의 신경계와 동물의 신경계가 매우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고통을 느끼는 강도가 인간보다 약할 수는 있으나 그들 역시 우리처럼 고통을 느낀다는 주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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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화 단계를 거슬러 내려감에 따라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있다는 증거의 강도가 약해짐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어류, 파충류, 포유류, 조류 등은 모두 고통을 느꼈을 때 나타내는 행동을 대부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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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해방>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1980년대부터 현 사회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는 동물 실험과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2장과 3장에 관련 내용이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는데, 정말 충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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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아리는 아무런 상업적 가치가 없기 때문에 버려진다. (..) 이러만 병아리들을 가스로 죽이기도 하지만, 대개 살아 있는 병아리들은 플라스틱 부재에 버려지고, 그들 위에 버려진 다른 병아리들의 무게로 인해 질식사한다. 다른 병아리들은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가루로 만들어져 남매들의 모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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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곳곳에 읽기 불편할 정도로 잔혹한 내용이 많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했던 현실의 모습들이죠. 싱어는 책의 초반부에서 아래와 같이 얘기한 바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많은 잔인한 행위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문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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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충분한 논의를 위해 검토 대상을 오직 두 가지만으로 한정했다. (..) 모피를 얻기 위해서건 스포츠를 즐기는 방편으로서건 사냥을 한다는 것, 모피를 얻기 위해 밍크, 여우, 그리고 다른 동물들을 사육한다는 것, 야생 동물을 사로잡아서 사람들이 구경하도록 좁은 우리에 가두어 놓는 것, 서커스에서의 묘기를 습득하게 하고자 동물들을 고문하는 것, 로데오에 관중을 동원하기 위해 동물들을 고문하는 것, 터지는 작살을 쏘아 고래를 도살하는 것, 참치 어선이 그물을 쳐 놓아 해마다 10만 마리 이상의 돌고래를 익사시키는 것,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에서 매년 300만 마리의 캥거루를 살해하여 가죽을 얻고 사료로 사용하는 것, 그리고 콘크리트로 된 인간의 제국과 오염을 온 세상으로 확산시키면서 야생 옹물의 이익을 전반적으로 무시하는 덧 등을 말한다. 나는 위 사례들에 대해 전혀, 또는 거의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 대신 나는 실제 벌어지고 있는 종차별주의에 관한 중요한 사례 두 가지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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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해방>은 사람들이 그동안 외면하던 현실을 철저하게 드러내어 사람들이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운 책입니다. 단순히 정보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윤리적 의식을 자극하여 사회적 변화를 모색한 것이죠. 사람들은 싱어의 글을 통해 논리적으로 설득되었을 뿐 아니라 고통받는 동물들을 감정적으로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누군가는 채식을 선택하고, 동물 복지 상품을 구매하며, 동물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의 구체적인 행동을 시작했고요. 결국, 책 한 권이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게 된 것입니다.
글은 세상을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글이 세상을 바꾸는 건 아니지만요. 하지만 어떠한 글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지점을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줍니다.
역사적으로는,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1543)와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1687),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1859),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1859), 마르크스의 <자본론>(1867),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1949),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1962) 등이 있겠지요. 그 외에도 세상을 바꾼 글들은 아주 많습니다.
누군가의 글은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방식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글을 쓴다면, 그것은 세상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