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 중 하나입니다. 해당 책은 미국 캔자스 주의 홀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쓰인 것인데요. 실제 사건을 그대로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어서 '논픽션 소설'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혹시나 트루먼 카포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더라도 그가 쓴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제목은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입니다. <인 콜드 블러드>는 그의 마지막 장편 작품이고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전체적으로 감정이 매우 절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카포티가 의도적으로 감정에 거리를 두고 사건 및 인물을 묘사하는 데에만 초점을 둔 것이죠. 이러한 건조하고 냉정한 문장은 <인 콜드 블러드>의 핵심적인 문체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이 절제된 문장들이 독자에게 더욱 큰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문장들이 차갑고 냉정하다 보니 그것이 마치 하나의 ‘사실’인 것처럼 다가오는 것이죠 - 물론 사실을 바탕으로 쓴 것이 맞기도 하고요. 책을 읽다 보면 공포와 두려움, 연민과 좌절 같은 여러 감정들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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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은 페리가 그중 희귀한 자질, "타고난 살인자"로서의 자질을 갖췄다고 확신했다. 정신이 가주 멀쩡하게 박혀 있지만 양심이 없고, 동기가 있건 없건 죽음의 일격을 날릴 수 있는 파가운 피를 지닌 사람. 그런 재능은 감독해주기만 하면 이득이 있는 쪽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게 딕의 생각이었다.
페리는 자기가 "깊은 물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 <인 콜드 블러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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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포티가 이 책을 썼던 과정을 한 번 살펴볼까요. 카포티는 어느 날 우연히 홀컴 마을의 살인 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어떠한 연관도 없는 이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에 그는 큰 관심을 갖게 됩니다. 곧 카포티는 이 살인 사건을 토대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지요.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인 카퍼 리와 함께 홀컴 마을을 찾습니다. 당시 그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를 했는데 녹음기나 노트를 쓰지 않고 철저하게 그들의 말을 ‘기억’하여 증언을 재구성했습니다. 카포티가 이 사건을 취재한 시간이 6년이나 되는데요. 이 긴 기간 동안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관계를 쌓아갔습니다. 특히 살인범 두 명과는 사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면회를 자주 가서 대화를 나눴죠.
카포티는 종종 자신이 대화의 95%를 기억할 수 있다면서 자랑스럽게 말하고는 했습니다. <인 콜드 블러드>의 모든 문장도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했고요. 물론 카포티는 아주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녹음기와 노트 없이 기억만으로 소설을 썼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과연 사실을 쓴 글을 정말 사실일까요? 기억력 좋은 누군가가 사실을 그대로 옮겨와서 글로 적으면 그것은 하나의 사실이 되는 걸까요?
그전에 우선, 사실이란 무엇인지 정의해 봅시다. 사실의 사전적 정의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입니다. 단순하게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사실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러한 사실을 글로 쓴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 그대로 남을 수 있을까요?
관련해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도로에서 차 한 대가 불에 타고 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불길이 3m는 넘게 치솟고 있었지요. 다행히 차 안에 사람은 없었고, 경찰차와 소방차가 뒤쪽에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날, 차가 불에 탔던 일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니까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저와 같이 확인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두 아들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에 우리는 그 사건에 대해 얘기했지요.
“그때 불길이 3m는 넘지 않았어?”
“아닌데요, 한 5m는 되었을걸요?”
“아니에요, 더 컸어요. 10m는 됐을 거예요. “
우리는 분명 같은 사실을 보았는데도 서로 다른 얘기를 했습니다. 만약 우리 셋이서 각자 글을 썼다면, 서로 다른 세 개의 글이 탄생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글을 쓰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실을 보고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이 즈음에서 영국의 미술 평론가이자 소설가인 존 버거가 쓴 문장 하나를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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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image embodies a way of se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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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는 그 이미지를 보는 방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미지는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관점이 이미지에 반영되고, 그 누군가는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관점으로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보도록 설득한다는 거죠. 우리는 이러한 존 버거의 철학을 글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시 설명해 볼게요. 우리의 세상은 고정된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죠. 같은 사건을 놓고 누군가는 3m로, 누군가는 5m로, 다른 누군가는 10m로 이해하는 것처럼요. 결국 우리가 ‘본다’는 것은 세상을 정확히 보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방식’에 따라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모습을 담은 글은 세상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작가가 보는 방식에 따라 쓰이는 것이지요. 보는 행위 자체가 객관적인 행위가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카포티가 <인 콜드 블러드>를 아무리 객관적으로 썼다고 하더라도, 그가 사실을 글로 쓴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게 됩니다. 책 안에는 카포티가 살인 사건을 ‘보는 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죠. 실제로 그는 살인범에 대해 약간의 동정심과 연민을 가지고 있었고요. 아무리 그가 기억력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카포티가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배열하고, 인물을 그리고, 사건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관 및 감정이 반영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글로 쓰인 사실은 사실 그대로라고 볼 수 없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글을 써야 할까요? 사실을 사실 그대로 기록할 수 없는 데도요. 그것은 사실을 바라보는 수만 가지의 ‘보는 방식’이 모여야 진짜 사실을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모습과 현재를 잘 알아차릴 수 있고, 또 미래도 대비할 수 있으니까요.
덧.
트루먼 카포티는 <인 콜드 블러드>의 서문에 아래 시를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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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뒤를 이어 살아갈 형제 인류여,
우리에게 너무 모진 마음을 갖지는 말아 다오.
우리 불쌍한 인간에게 동정을 보여준다면,
신께서도 그대들에게 더 큰 자비를 베풀어주시리.
- <교수형을 당한 자의 발라드>, 프랑수아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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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포티는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 채 최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책을 쓰려고 했습니다. 논픽션처럼요. 하지만 위 서문에 드러나듯이 그는 자신만의 ‘보는 방식’으로 사건을 바라보았습니다. 실제로 살인범 중 한 명인 페리 스미스와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했고요.
그러니 우리가 어떠한 글을 읽을 때 그 글이 완벽한 사실은 아니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사실이라기보다 사실을 보는 방식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 둡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