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쓰는가] 01. 기록하는 사회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

by Keepbook


SNS에 친구의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활짝 웃고 있는 사진과 함께입니다.


“친구랑 오랜만에. @이태원로 191.“


이 짧은 글을 통해 저는 그가 이태원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는 않지만 같은 시간 속에 있는 것이죠. 이 당연한 사실을 저는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곧이어 다른 누군가의 글이 올라오면서 그의 글은 밑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새로운 삶의 모습들이 핸드폰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자신의 삶을 기록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신의 모습이나 생각을 곳곳에 글로 남깁니다. 우리가 이렇게 글을 남기는 이유는 다양하겠지요. 연결되고 싶어서, 과시하고 싶어서, 즐거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등입니다. 어떠한 이유이든 간에 현대인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기록을 합니다.


우리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기록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언제부터 기록을 시작했던 것일까요? 사실 인간이 기록을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전의 일이 아닙니다.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것이 30만 년 전인데, 기록을 시작한 시점은 5천 년 전부터 거든요. 그러니 사실상 기록의 역사는 인류 역사 전체의 1/60밖에 되지 않는 셈입니다.


기록되지 않은 과거는 역사 이전의 시대, 즉 선사 시대입니다. 선사 시대의 사람들이 벽화를 그렸기는 하지만, 기록을 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의 기록은 문자 기록으로 한정해서 생각합시다. 당시의 사람들이 기록 대신 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억입니다. 그들은 몸짓을 기억했고, 이야기를 기억했습니다. 삶의 중요한 가치를 후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긴 서사시도 기억했지요. 구조언어학자인 밀먼 패리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같은 구전 서사시가 수 세대에 걸쳐서 기록 없이 지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구전 서사시에는 리듬과 운율이 있어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쉽게 외울 수 있었습니다. 각 나라마다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나 구전 노래, 속담, 전래 동화는 모두 세대를 거치며 기억되고, 이어져 온 것들이죠.


그렇게 입에서 입으로 떠돌던 여러 이야기들은 나중에 되어서야 글로 남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의 과거가 기록을 통해서 비로소 진짜 과거로 남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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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역사의 첫새벽에 등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는 기록과 함께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거는 기록을 통해 비로소 과거로 남는다.

- 월터 J.옹(Walter J.Ong, 문화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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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 5천 년 동안 인류가 기록한 전체 데이터 양보다 현대의 디지털 사회가 1년 동안 기록한 데이터 양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5천 년 동안의 데이터를 도서관 하나 라고 한다면, 지난 1년 동안의 데이터는 도서관 수 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입니다.


그만큼 현대 사회는 기록이 쏟아지는 사회입니다. 많은 기록들이 우리의 기억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기록이 단순히 과거를 남기는 흔적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록은 무조건 좋기만 할까요? 의외로 기록에 반대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플라톤이죠. 그는 자기 것이 아닌 외부의 글자로 만들어진 기억은 진실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또한 그는 기록은 사람에게 지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워 보이는 의견을 주는 것일 뿐이라고도 얘기했지요. 플라톤은 자신의 글을 쓸 때에 대화체 형식을 고집했는데 그것은 이 같은 글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플라톤의 이 같은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면 우리 사회의 모습은 달라졌을까요? 지금의 사회가 기록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기록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글쓰기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어쩌면 그러한 사회에서는 기록 대신 기억에 초점을 두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잘 쓰는 방법'이 아니라 '잘 기억하는 방법'을 훈련해야 했을지도 모르는 것이죠.


기억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로이스 로리가 쓴 <기억 전달자>라는 소설이 기억납니다. 해당 소설은 더 이상 글로 기록되지 않는 사회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 사회에서는 오직 단 한 사람만 과거를 기억하는데, 그가 바로 '기억 전달자', 영어로는 The Giver 죠. 이 기억 전달자의 역할은 이전 세대의 모든 기억을 보존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플라톤의 의견대로, 기록 없이 진실한 기억으로만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유토피아가 아닐까요?


기록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아마도 문어체는 사라지고, 구어체만 남게 될 것입니다. 구어체는 문어체보다 좀 더 감정적이고, 즉흥적이죠. 그리고 구어체는 문어체보다 좀 더 잉여적입니다. 여기서 잉여적이라는 말은, 문장이나 단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철자나 어법이 좀 맞지 않아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얘기죠. 실제 영어는 50% 이상 잉여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누군가가 문법이 틀리거나 잘못된 단어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의견을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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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어는 문어보다 감정적으로 충만합니다.

- 매클루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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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기록하지 않는 사회는 보다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며, 잉여적인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존재를 순간적으로 드러내고 서로를 감각적으로 느끼기 시작하겠지요. 완벽하게 말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대신 상대방과의 경험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요.


기록과 기억. 어떠한 것이 더 좋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기록은 영속적이고, 기억은 사라질 수 있죠. 기록은 불변하지만, 기억은 변할 수도 있고요. 어쨌든 현대인들은 기억하기보다는 기록하는 것이 더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후 세대들을 위해 무언가를 기억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 하겠지요. 기록을 하면 되니까요. 글이 공간을 초월하고, 동시에 시간도 초월한다는 것을 현대인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온갖 기록이 쏟아지는 사회가 과연 좋을지는 의문입니다. 우리가 SNS의 피드에 피곤함을 느끼고, 범람하는 정보에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많은 부분을 기록에 의존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록을 적당히, 기억도 적당히 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한 번 생각해보고 싶은 그런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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