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저는 어렸을 때 일기를 참 많이 썼습니다.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일기장 말고도 저만의 일기장이 따로 있을 정도였죠. 제 '진짜' 일기장은 빨간색 커버가 씌워져 있고, 작은 자물쇠가 달려있어서 열쇠 없이는 열어볼 수 없었습니다. 그 일기장 안에 저의 모든 비밀과 고민, 잡다한 생각들을 쏟아냈습니다.
저는 감수성이 매우 예민한 아이였고, 여러 사람들과 있으면 촉각이 곤두서서 피곤했습니다. 하루종일 지쳐있다가 저녁에 혼자 앉아서 글을 쓰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뭔가가 다시 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했어요. 그 느낌이 좋아서 글 쓰는 시간을 사랑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제 장래희망은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습니다. 저는 스물 네 살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작가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습니다. 그냥 회사원이 되었죠. 회사원으로서의 제 삶은 마치 거대한 톱니바퀴의 아주 작은 톱니 하나가 된 것 같았습니다.
회사원이던 저는 틈날 때마다 글을 썼습니다. 출퇴근 시간에는 단편 소설을 쓰고는 했어요. 마무리까지 잘 끝내지는 못 했지만 저의 모든 걸 글에 쏟아붓고 나면 하루를 버틸 힘이 다시 생기고는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제가 글을 썼던 이유는 버티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저는 글을 쓰는 시간 동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충만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록 세상에 제 글을 탄생시키지는 못 했지만 저는 버티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위해 버티는가 하면 존재하려고 버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글을 써서 존재하려는 그런 사람의 종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땅바닥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닌, 자칫하다가는 날아가버릴 수도 있을 만큼 가벼워서 이토록 가벼운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어떻게든 글로서 세상과 연결되려고 하는 그런 사람 말이죠.
대부분의 작가에게는 어느 정도의 자기 과시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드러내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있기 때문이죠.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마음입니다. 누군가 나의 존재를 알아봐주었을 때 우리는 진정한 기쁨을 느끼니까요. 진화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나를 드러내야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에 과시하려고 하는 것일 테죠. 나의 존재가 집단 안에 알려져야 누군가 나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결혼해서 자식도 낳을 수 있게 되니까요.
책의 첫머리에서 저는 글을 쓰는 이유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잊히고 싶지 않기 위해서,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서 등으로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는 제 삶을 버텨내기 위해서, 존재하기 위해서, 드러내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이 즈음에서 조지 오웰의 글을 한 번 들여다보겠습니다. <동물 농장>과 <1984>를 쓴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짧은 에세이에서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네 가지로 명확하게 정리했습니다. 그 네 가지 이유는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입니다. 각각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볼까요.
먼저, 글을 쓰는 첫 번째 이유는 순전한 이기심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똑똑해 보이고 싶거나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이기적인 욕구에 의해 글을 쓴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기적인 욕구를 계속 추구하여 서른이 넘어서까지 고집을 부리는 사람을 작가라고 표현했는데, 이 부분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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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뿐이다. 그런가 하면 소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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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고 하는 사람이 곧 작가라는 말이지요. 물론 여기에는 재능도 있어야겠지만요. 여기서 생각나는 작가가 고골입니다. 러시아 문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작가인 고골도 순전한 이기심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거든요. 고골이 1827년 18살 때 친구한테 보낸 편지를 한 번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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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일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 그래서 내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티끌로 사라질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면 얼굴에 식은땀이 난다. 세상에 태어났음에도 내 존재를 알리지 못하다니 나는 그것이 끔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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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 역시 세상에 자신을 기억시키고 싶은 이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에 그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글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되었죠. 저는 감히 조지 오웰과 고골에 비교될 수 없는 사람이지만, 제가 글 쓰는 이유 또한 여기에 속할 것 같습니다. 저는 버티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지만 보다 깊은 내면에서는 제 부족한 글을 세상에 내놓고 싶기 때문이지요. 이 또한 순전한 이기심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미학적 열정입니다. 이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글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욕구입니다.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려는 욕구, 또는 낱말과 낱말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를 추구하는 욕구 등입니다. 아마 이러한 욕구에 해당하는 것이 시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특히 한국어의 경우에는 모든 문장이 '다'로 끝나기 때문에 매우 딱딱한 느낌을 주는데요. 시는 종결 어미를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유포니(귀에 듣기 좋은 소리)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역사적 충동입니다. 이 이유에 대한 조지 오웰의 설명은 매우 짧고 간단합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 두려는 욕구를 얘기합니다.
네 번째 이유가 조지 오웰에게 가장 중요해 보이는데, 바로 정치적 목적입니다. 이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합니다. 조지 오웰의 경우는 정치적 글쓰기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얘기한 바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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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 나는 7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또 하나의 소설을 쓰고 싶다. 그것은 실패작이 될 게 뻔하고, 사실 모든 책은 실패작이다. 단,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어 하는지 꽤 분명히 알고 있다.
-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나로서는 그런 시스템에 맞서 싸운다는 게, 주로 독서 대중에게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 책들을 쓰는 것이었다.
- 조지 오웰,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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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네 번째 이유인 이 정치적 목적을 가장 따라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적 목적이 없이 글을 썼을 때에 그는 늘 지나치게 현란하거나 장식적인 문장을 썼기 때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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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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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글쓰기 방법에 대해 얘기할 때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글을 쓸 때에는 현란하거나 현혹적인 문장을 써서는 안 됩니다. 좋은 글은 명확해야 하고, 쉬워야 하죠.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혼동되지 않아야 합니다. 작가에게 정치적 목적이 있으면 글이 좀 더 직관적이 되므로 명확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지 오웰처럼 정치적 목적을 토대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요. 그 전에는 정치적 목적이 없더라도 '목적' 자체가 있는 글을 쓰는 연습을 하면 됩니다.
위 네 가지 이유가 조지 오웰이 말한 우리가 글 쓰는 이유입니다.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그리고 정치적 목적이죠. 그의 말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많은 작가들이 그가 말한 이 네 가지 중 하나의 이유로 인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정말 여러 가지입니다. 혹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또는 돈을 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써야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어떠한 이유에 의해 글을 쓰더라도, 여러분의 글은 여러분의 삶을 버티게 해주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세상에 나를 알리고 싶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든다고 해도 숨길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부터가 글쓰기의 시작일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