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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Apr 04. 2024

03. 자세한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거절과 부탁'의 법칙

 

누군가 너희에게 당황스러운 제안을 한다면, 너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앞서 우리는 경계선을 세우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너희를 지키는 경계선을 잘 두었다면, 이제부터 연습해야 할 일은 너희의 가치에 따라 잘 거절하는 일이다.


SNS 속의 '좋아요'와 '최고예요'에 익숙한 우리는 거절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왜 우리에게 거절이 불편할까? 즉각적인 만족감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짧고 자극적인 영상을 보며 만족하는 것처럼 상대방의 의견에 거절하지 않고 곧바로 YES라고 답하는 것이 순간적인 만족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순간적인 만족감을 얻거나, 또는 주지 못했을 때에는 괜스레 불편한 마음을 느낀다. 때로는 상대방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 무시당한 느낌은 SNS에서 '좋아요'를 받지 못한 느낌과 비슷한 종류의 것이다.


누구나 거절을 할 때에는 어느 정도의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아무도 ‘아, 정말 좋다!’하는 마음으로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내 가치에 반하는 일과 불필요한 일, 나를 조금이라도 공격하는 일 등에 있어서는 단호하게 거절하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에게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것보다는 나의 가치에 따라 살며 느끼는 장기적인 만족감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거절을 잘 못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글을 쓰는 순간에 문득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얼마 전에 나는 너희와 함께 동네 놀이터로 나갔다가 우연히 주변 아이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그들의 대화가 이 주제와 잘 맞는 데다가 꽤 인상적이어서 잠깐 소개해본다.


상황은 이렇다. 아이들로 가득한 놀이터에 한 아이가 젤리 봉지를 들고 나타났다. 아이들은 그 아이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젤리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이미 서로 아는 사이인 듯 익숙해 보였다. 젤리를 가지고 있던 아이는 봉지를 뒤적거리더니 곧 난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젤리가 하나밖에 안 남았는데.." 그렇게 우물쭈물하는 아이 앞으로 한 아이가 나서며 말했다. "그럼 여기서 제일 친한 사람한테 남은 젤리를 주면 되겠네. “


젤리를 들고 있던 아이는 당황해서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앞으로 나섰던 아이가 다시 말했다. “야, 그냥 너 먹어.” 아이들은 마지막 젤리를 들고 있는 아이를 남겨둔 채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스 신화 이야기 중에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황금 사과의 이야기를 너희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에리스는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하자 화가 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쪽지가 붙은 황금 사과를 하객들 사이로 던져 넣었다. 헤라와 아테네, 아프로디테는 각자 자신이 그 사과를 가져야 한다고 여겼다. 이 일을 계기로 결국엔 트로이 전쟁이 벌어졌다.


이 유명한 그리스 신화가 떠오른 것은 "제일 친한 사람에게 젤리를 줘."라는 아이의 말이 에리스의 황금 사과를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다. 그들 중 단 한 명에게만 젤리를 주게 된다면, 젤리를 받지 못한 나머지 아이들은 기분이 상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도 주지 않으려니, 이미 주변에 모여든 아이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젤리를 들고 있던 아이의 선택지는 많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실 아이에게는 거절이라는 아주 좋은 옵션이 남아있었다.




우리 개인에게는 여러 가지 기본적인 권리들이 있다. 자유롭게 생각할 권리, 생각을 바꿀 권리, 생각을 표현할 권리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각을 바꿀 권리다. 너희는 너희의 뜻대로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그에 따라 부탁을 수락했다가 갑자기 거절할 수도 있다. 그것은 너희의 권리이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미안해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는 일이다.


자신감 있게 살기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본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리는 생각을 바꿀 권리, 뭔가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권리, 양심의 가책 없이 부탁을 거절할 권리 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 생각대로 행동할 때, 미안해할 필요 없다.

- <감정사용설명서>, 롤프 메르클레, 도리스 볼프


인생의 초점을 타인에게 두는 사람들은 흔히 이 같은 권리들을 잊어버린다. 나의 권리보다도 상대방의 기분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내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은 나의 당연한 권리다. 나의 권리는 내 스스로가 보장해야 하므로, 내 생각대로 행동할 때에 남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만약 너희가 친구의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먼저 말했다고 하자.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잘 생각해 보니, 친구의 부탁은 너희의 가치에 반하는 일이고, 친구의 부탁보다도 더 중요한 너희의 일들이 있다고 해보자. 너희는 이 부탁을 거절하고 싶어졌다. 이때, 너희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생각해봤는데, 너의 부탁을 들어주기는 어렵겠어." 이렇게 다시 정정하면  된다. 특별한 이유는 제시할 필요가 없다.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너희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너희의 가치에 반대되는 난처하고 어려운 부탁을 받았다면, "그건 좀 힘들어."하고 거절하는 연습을 많이 해보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물론, 그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너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는 일이다. 시간을 정말 많이 들여서 너희가 앞으로 어떤 가치에 따라서 인생을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나의 경우에는 '가정을 최우선으로 두고, 다른 사람을 돕는' 가치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 가치에 반하는 일에는 시간을 많이 쓰지 않으려고 한다. 불평만 잔뜩 늘어놓는 사람이나 남 이야기를 자주 하는 사람과의 약속은 부드럽게 거절한다. 같은 시간에 나를 보다 행복하게 하는, 나의 가치에 맞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너희도 너희의 가치를 잘 정의해 보고, 가치에 맞지 않는 일은 잘 거절한다면 좋겠다.


거절하는 일은 처음에는 당연히 어렵다. 피아노를 배우듯이 또는 자전거를 배우듯이 차근차근 연습하자. 초반에는 거절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해도 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거절이 너무 어색하다면? 그럴 때는 너희를 둘러싼 경계선을 떠올려보자. 너희에겐 너희를 지키는 경계선이 있으니, 단지 무언가를 거절한다고 해서 너희에게 피해가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후에 거절에 좀 더 익숙해진다면,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여 '네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등의 말을 붙이는 것이 더 좋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기술들은 앞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이제 앞서 말했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마지막 남은 젤리 하나를 "여기서 제일 친한 사람에게 줘."라고 상대방이 제안했다. 그 제안이 너희에게 좋지 않은 것이라는 걸 너희는 안다. 너희라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만약 나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 또는 "그건 싫어."하고 말이다. 아이들이 실망하여 뿔뿔이 흩어져도 괜찮다. 나는 나의 가치에 따라 거절했고, 이를 통해 한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지킨 것이다.


또는 이런 방법도 있다. 나에게 제안했던 그 아이에게 젤리를 아예 건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 네가 결정해서 줘." 이렇게 책임을 전가시키면 난처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 상대방이 "내가 왜?" 하고 묻는다면 "그게 맞는 것 같아서."라고 말하자. 다시 말하지만, 거절과 표현은 너희의 권리이므로, 구구절절 이유를 붙일 필요는 없다.


인생의 초점을 너희 자신에게 두었으면 한다. 인간관계란, 너희부터 바로 세우고 나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임을 늘 기억하기를 바란다.




거절은 너희의 권리이므로 이유가 필요 없다는 내용에 덧붙여서 이번에는 반대로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앞서 너희의 가치에 반하는 부탁은 잘 거절하라고 했던 내용과는 다소 상반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때로는 누군가에게 부탁할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상대방에게 ‘잘’ 부탁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분명 너희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부탁할 일이 생겼다면, 먼저 상대방의 상황과 기분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무언가를 부탁한 그 시점에 하필이면 상대방의 가족 중에 한 명이 아프다거나, 또는 개인적인 안 좋은 일 때문에 속상한 상태라면 나의 부탁은 그에게 큰 짐이 될 뿐이다. 잘못된 타이밍에 부탁할 경우엔 관계에 금이 갈 수도 있다.


부탁하는 법을 배우라. (..) 적절한 때를 기다려야 하는데, 그들의 기분이 좋거나 몸과 마음이 배부를 때를 노려야 한다.

- <사람을 얻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려고 한다면,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는 정도의 수고는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탁을 할 때에도 '특별한' 이유가 필요 없다는 것을 너희는 알고 있을까? 재밌는 실험이 하나 있어서 가져와 보았다. 로버트 치알디니가 쓴 <설득의 심리학>에 나오는 사회심리학자 엘렌 랭어와 동료 연구진의 실험 내용이다.


랭어의 이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부탁에 이유를 붙이면 더 잘 승낙한다. 복사기 앞에 줄을 서 있는 학생들에게 "복사기를 먼저 써도 될까요? 왜냐하면 지금 제가 몹시 바빠서요."라는 이유를 붙여서 부탁을 했더니 94퍼센트가 순서를 양보했다. 이유 없이 "복사기를 먼저 써도 될까요?"라고 물어본 경우는 60퍼센트만 허락해 주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이 하나 있었다. 세 번째 실험으로 "복사기를 먼저 써도 될까요? 왜냐하면 제가 복사를 좀 해야 하거든요."라고 부탁을 했을 때에도 93퍼센트가 허락해 주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뒤에 실제적인 이유를 설명한 것이 아닌 앞에서 한 말을 반복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부탁할 때에 이유를 밝히면 더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그 이유 자체는 특별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부탁을 승낙하게끔 하는 힘이 이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왜냐하면'이라는 단어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희가 어떤 부탁을 하게 된다면, 특별한 이유를 생각하기보다는 너희의 진심을 전달하는 것이 더 낫겠다. '왜냐하면 제가 도움이 필요해서요.' 또는 '왜냐하면 그렇게 해주시면 제가 기쁠 것 같습니다.' 등의 말도 충분히 설득적인 것이다.


이처럼 거절과 부탁에는 생각보다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너희의 가치를 잘 정의하여 가치에 따라 살아나가는 것이다. 때로는 거절하기도 하고, 부탁하기도 하면서 너희의 권리를 제대로 수행해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너희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두 번째의 법칙, 거절과 부탁의 기술이다.




(사진 출처 : Priscilla Du Preez,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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