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생 11살, 그러니까 4학년 남자애가...
성탄절 전날 밤, 자는 사이 산타클로스가 머리 맡에 선물을 두고 간다는 환타지는…
정말 말 그대로 환상의 환타지다.
더구나 성탄절이 12월 말이니,
지난 일년 동안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는 지, 안 울었는 지,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냈는 지, 거짓말 하지 않았는 지,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했는 지…
에 따라 선물을 받을 수도, 못받을 수도 있다니.
이 얼마나 재미있고, 짜릿하고, 신이 나는 플롯인가?
우리 집에 사는 08년생 11살, 4학년 첫째 아이가 최근 부쩍 의젓해졌다.
글씨도 잘쓰고, 이도 잘 닦고, 숙제도 집중해서 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
작년 크리스마스 때는 지가 잃어버린 휴대폰을 대체할
중고 2G 폰을 깨끗하게 닦아서 머리 맡에 놓았고,
이 녀석이 ‘이게 뭐야! 산타가 어떻게 중고를 사?? 사기 아냐??’라고 할까봐 엄청 조마조마하며 아침을 맞았다.
다행히 아침에 눈 뜨자 마자 안방으로 달려오며 ‘엄마!!! 산타할아버지가 휴대폰 주셨어!!!!’ 라며 기뻐 날뛰었다.
그에 다행스러워하며 ‘아… 얘가 아직도 산타를 믿고 있구나’ 라고 100% 확신했었다. 높임말을 일일이 붙여쓴 그 상황은 연기로 볼 수가 없는 수준이었으니 당연했다. 훗. 순진한 녀석.
4학년이 되면서 친구들과 ‘야... 산타는 엄마 아빠야. 그걸 아직도 믿냐?’ 뭐 이런 대화를 엿들었을 때,
지가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받고 싶은 걸 자꾸만 내 앞에서 이야기 하며, 산타가 그런 비싼 걸 주기도 하냐고 물을 때,
‘아. 이 놈은 이제 산타를 믿지 않는구나.’라고 결론 짓고는 '나를 이런 식으로 압박하는구나. 무서운 놈.'이라는 생각도 했고, '5살이나 어린 여동생도 있는데 이제 어떻게 보안을 지켜야 하나...? 사실대로 털어놓고, '니 선물도 계속 챙겨줄테니 동생은 조금 더 지켜주자.'고 쇼부를 쳐야하나?? 고민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짜식이 엄마 아빠 앞에서 모른 척 예의는 지켜주네… 대견한 걸?’
'아는 척 하면 지 선물 못받을까봐 속는 척 하는 건가?’ 뭐 이런 생각들도, ‘알 때가 되긴 했지... 오히려 맘 편하네 뭐!’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24일이 다가오니,
산타 할아버지가 외국 사람이니 영어로 카드를 쓰는 게 더 나을 거라는 말을 하며 실제로 카드를 영어로 쓰더니,
'먼 거리를 다니시니 배고프실 거라'고 정확히 높임말을 쓰며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우유와 쿠키를 놓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이 놈.
‘엥? 얘 뭐야… 바본가?’
당일 저녁에 성당서 성탄전야 미사를 드리고 집에 와서 빠르게 씻고 잘 준비를 한 후에,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진짜로 영어로 ‘나는 누구다. 올해 잘 지냈다. 나 이거이거 갖고 싶다. 이거 드셔라.’라고 쓴 카드와 함께 우유, 쿠키를 놓는 거다.
그리고는,
동생과 함께 자야 산타 할아버지가 편하시다며 함께 자겠다고 하더니,
어딘가에 있던 산타 모자 두 개를 찾아 각자 하나씩 쓰고 이러고 자고 있다.
아내와 나는 곤히 잠든 아이들 머리 맡에 선물과 카드 가져다 놓기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기 위해 후다다닥 나가서 신나는 러브러브 타임을 가졌다. 므하하하.
이 녀석들도 나 어릴 적 설레던 만큼 설렐까?
이런 마음은 얼마나 더 누릴 수 있을까?
조이재군이 카드에 쓴 소원은... 이뤄질 것이나,
그의 환상 속의 산타는 올해로 마지막일 것. ㅜㅜ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우리 부부가 더 사이좋게 지내는 게 더 중요할게다.
즐거운 날, 축하할 날, 좋은 곳에 나가서 즐기는 것이 좋다.
집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것도 물론 좋은데,
그 이유가 귀찮다고, 춥다고, 이미 벗어서 넣은 옷을 다시 꺼내입어야 한다는 거라면 아직은 안된다. 그건 60살 쯤 된 후에 댈 핑계다.
산타고 선물이고 간에, 그 보다 사이좋은 부부가 되자는 이상한 흐름의 결론을 내며 마무리ㅋㅋㅋㅋ
당신도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