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찾은 내면의 변화
이상하다. 요즘 왜 이렇게 남편이랑 안 싸우지?
이상하다. 남편이 요즘도 여전히 늦게 오는 데 왜 나는 그게 별로 신경이 안 쓰일까?
참 이상하네. 예전 같으면 불만이 잔뜩 쌓였을 텐데.
단순히 내가 휴직을 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뭔가가 달라졌다. 분명히 무언가가 나를 바꾸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매일 아침 글을 쓰는 습관이 그 변화의 시작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작은 성취감, 내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여길 수 있는 시간.
이런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이니 자연스럽게 감정이 부드러워졌다.
남편이 늦더라도
"힘들게 일하고 있겠지. 회식도 업무의 연장인 걸."
하는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먼저 든다. 그러니 화낼 일도, 서운할 틈도 줄어드는 것 같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일까?
잔뜩 불만에 차서 살던 내가, 요즘은 남편과 대화할 때 자꾸 웃는다. 싸울 법한 일에도 유머를 곁들여 대화를 하고 있다니!
슬초브런치 강의 때 이은경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여러분 글을 쓰면 예뻐져요!
내가 예뻐져서 인가?
스스로가 (내적으로) 예뻐진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마음에 편안함과 자신감이 차오른 거 같다.
이게 바로 글쓰기의 효과가 아닐까.
글을 쓰면서 남편의 사랑스러운 점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만 생각하며 살아왔던 내가 요즘은 가끔, 나는 이렇게 행복함을 누리는데 내 남편은 무엇에 행복해하는 사람일까? 그냥 웹툰 보면서 누워 있을 때가 진정 행복한 게 맞을까? 그가 진정 행복을 느끼는 건 무얼까가 가끔 궁금해진다.
나 중심의 삶에서 조금씩 주변의 삶으로도 확장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면 맞을까.
나는 속이 무척 좁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글을 쓰면서도 나를 위한 글만 쓰기에 바빴다. 자기 위안의 글, 내가 힘들었던 내용에 관한 글을 주로 썼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역시 글쓰기를 삶의 1순위로 가져오길 잘했다. 아침의 시작을 글을 쓰며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
물론 매일 쓰지만 쓸 때마다 고민이 된다. 주제를 미리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스타벅스의 의자에 앉아 어떤 내용에 대해 쓸지 생각하며 휴대폰의 화면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공간이 주는 힘', 나의 사랑스러운 글감들(딸내미 둘)과의 에피소드, 가끔은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면 일단 손가락을 움직여 본다. 그렇게 글을 꾸준히 쓴 게 벌써 3주 차가 되었다. 육아휴직을 한 이후에 만든 습관 중 가장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쓰자, 막 쓰자.
그리고 써야 책을 읽을 수 있다. 나름의 배수의 진을 치며 글을 쓰기도 한다. 이걸 쓰지 않으면 나는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없다. 그러니 뭐라도 쓰자.
글을 쓰면서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남편에게 감사함도 가질 줄 알며, 아이들도 한결 더 사랑스럽게 볼 마음의 여유가 늘어났다. 비단, 나에게 주어진 시간적 여유도 한몫했음이 분명하지만 글쓰기 덕분에 내 시선이 달라졌다. 이건 확실한 변화다.
잘 살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글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하면 또 부담이 올라온다. 단지 글을 쓰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마음의 변화가 따라왔다. 아이들을 보는 마음 역시도 달라지고 있다. 이 이야긴 다음에 또 풀어볼 예정이다.
요즘 마음이 자꾸만 예민해진다면, 자녀들에게 화가 난다면, 남편에게 싸움을 거는 나를 발견했다면, 하루 한 줄이라도 써보면 좋겠다. 나를 달래는 글 한 편이, 생각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에게 울림을 주는 은유 작가님의 말.
언제부턴가 이렇게 생각해요. 글 한 편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잘 보내는 일이 중요하다고요. 글 한 편을 잘 쓰더라도 글 쓴답시고 하루가 엉망이 되면, 그게 또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무엇을 위한 글인가, 회의가 들고요.
잘 살려고 쓰는 건데 쓰다가 잘 살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안 되잖아요.
저한테 '잘 사는 일'은 하루를 잘 보내는 일입니다. '인생'을 잘 사는 건 어려운데 '하루'를 잘 보내는 건 해볼 만하죠.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