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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가 아닌 풀소유

육아휴직을 하면 (소비 편)

by 보나

이전 글에서는 육아휴직을 하면 왜 배가 고픈지에 대해서 써 보았다.


이번에는 육아휴직을 하면 왜 소비를 더 많이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일단,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것은 집 안을 돌아볼 여유가 많아진다는 것.


아침, 등원전쟁을 치르고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 먹다 그대로 놓아둔 그릇, 아침에 놀다 간다고 장난감을 만졌던 흔적 등 여러 가지 치워야 할 나의 일들이 보인다.


그것들을 치우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걸 치워서 소파 위에 올려놓는 동안 로봇청소기가 집을 청소해 주면 좋으련만. 그럼 내 손목도 보호할 수 있을 테고, 청소기를 돌리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돼서 일석이조일 텐데.


그러면서 우리 집에 없는 이모 3 대장 중에 아쉬운 한 가지가 계속 떠오른다.( 식세기와 건조기는 있다 ). 로보락이나 샤오미 로봇청소기를 검색하다가 괜찮은 스펙이지만 어마어마한 가격에 놀라 웹 사이트를 닫아 버린다.


비록 3000만 원을 대출받긴 했지만 육아휴직하고 급여가 없는 상태에 이렇게 소비를 해도 되는 것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검색하기를 멈춘다.

그리고 이제 잠시 식탁에 앉아 물을 한잔 마시며 쉰다.


모닝 SNS을 조금 하다 보면 갑자기 생활에 필요한 살림템들이 내 맘을 알았다는 듯 나에게 보인다. (이것도 일종의 끌어당김의 법칙인 걸까?)


갑자기, 우리 집을 조금 더 편리하게 정돈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이따 다이소에 가서 벽에 붙이는 고리를 몇 개 더 사야겠어, 현관문 앞에 고리를 걸고 작은 상자를 붙여두면 아침에 등원 전쟁할 때 차키나 립밤등을 빼먹지 않지 않을까?



(그토록 마음속에 품고 있던) 책 육아를 하려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작은 오픈 책장과 빈백도 사는 게 좋겠어, 독서대도 필요하지 않을까?


필요한 걸 생각하니 정말 끝도 없다. 우리 집에 조금 더 정돈되고 예뻤으면 좋겠다. 그런데 왜 비우지 않고, 사기만 하는 것인가?




결과적으로, 육아휴직 이후 우리 집에 들어온 아이템들을 소개해 본다^^


1. 아이방의 미케 책상

- 아이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여 원래부터 사려 계획했었지만, 내가 옆에 앉아 봐주는 시간이 늘자마자 바로 사버린 이케아 가성비 아이템.


2. 거실 카펫

- 기존에 회사 다닐 때는 옛날부터 쓰던 아이용 재질의 뽀득이는 오래된 매트(더럽고, 찢어져있고 등등)를 그냥 쓰고 있었는데 아이 책상 사러 이케아 간 김에 같이 질러버렸다. 맨날 집 안에 있으니 거실 카펫이 자꾸 눈에 들어와 살 수가 없었다. 역시 이케아.


3. 우리 집 최고 아이템, 까사미아 1인 리클라이너

- 이건 왜 사게 된 거지? 원래부터 남편이 계속 1인 리클라이너를 사자고 했었는데 내가 필요 없다고 말했던 아이템. 그런데 남편이 회사 복지몰 포인트로 살 수 있다고 한번 더 말했을 때 “응, 그래 당장 알아봐 봐.”라고 했던 아이템.

- 사고 난 이후 이곳에 앉아 책 보는 일상이 너무나 행복하다. 정말 잘 샀다고 생각하는 아이템.


그리고 마지막, 이건 말하지 않고 싶었지만(왜냐면 육아휴직 시작하기 전에 산 거니깐!!)


4. 전자 피아노

- 핑계는 아이들의 피아노 연습이었지만, 육아휴직 하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피아노를 쳐보고 싶었던 로망이 컸다. 그래서 가성비 템으로 샀는데 사고 나니 손목이 아파서, 그냥 좋은 브랜드의 제대로 된 피아노를 살걸 조금 후회되는 순간이 있긴 하다.


실제 몇 번 예전에 치던 곡들을 쳐보았는데 어찌나 설레고 좋던지.


이상, 육아휴직 3주 된 내가 우리 집에 들인 아이템 들이다.


육아휴직 전의 삶은 돈은 계속 벌지만 쓸 시간이 없는, 소유하지만 제한적 소유에 가까웠다. 휴직 이후에는 시간이 많으니 이것저것 사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여유로워지면 주변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걸 다시 느낀다. 매일 출퇴근하는 남편의 얼굴 표정, 아이들이 엄마를 바라볼 때의 표정, 눈 마주치는 순간,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이야기 등.


평소의 난 왜 매일 이걸 집중해서 바라보고 들어주지 못했나. 정말 단 30초, 1분만 집중하고 눈 마주쳤으면 되었을 건데 정신없이 살아가는 워킹맘에겐 그것조차 사치였다.


주어진 과제를 얼른 마치는 게 나의 최우선 과제였다. 다음날 입을 아이들의 옷을 챙기는 일, 다음날 이모님께서 챙겨줄 음식을 냉장고 앞쪽으로 꺼내놓는 일, 준비물을 챙기는 일 등. 거기에 나의 출근을 위한 준비까지. 그래야 나의 역할을 다한 것 같았고 후련했다.


‘학교 숙제 얼른 끝내고 빨리 씻기고 재워야지. 그래야 키가 크지.‘


'이걸 내가 다 챙겨놓고 자야 내일 제시간에 출근할 수 있을 텐데..'


계속되는 갈등 속에 내가 선택한 건 아이와의 대화나 눈 마주침이 아닌 기계적인 할 일들이었다. 마치 게임의 퀘스트를 깨 나가듯.


아이의 잠을 줄이고 숙제에 집중한 결과 아이에게는 스트레스가 왔고, 중간에 학원을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까지 했었다.




지금은 쫓기지 않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아이가 나에게 이야기를 하면 여유로운 마음으로 들어줄 수 있다. 자기 전 아이들과 오늘 하루 감사했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유롭다. 오늘 조금 늦게 자더라도 아침에 아이들은 조금 더 재우고 아침을 간단히 먹이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인생을 게임의 퀘스트를 깨듯 살아서는 안된다. 그러다 보면 더 소중한 걸 놓칠 수도 있다.


비록 물건은 풀소유가 되었지만 마음만은 비워진 상태로 무소유가 되어 가고 있다.


나는 어떤 마음이든 받아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높은 하늘과도 같은 관대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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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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