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와 먹는 것의 상관관계
자발적 임시 백수가 된 후, 마음이 참 편안해졌다.
시간에 쫓겨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었고 자유롭게 내 입속에 들어가는 메뉴를 내가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워킹맘 시절에는 분주한 아침을 보내고 회사에 도착하면 항상 배가 고팠다. 그렇지만 이미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9시 30분에서 10시가 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아침을 먹기에도 애매하고, 점심을 먹기에도 이른 시간. 언제나 나의 선택은 회사 카페에서 파는 아이스 라테였다.
'라테에는 우유도 들어있으니 영양가도 있고 괜찮을 거야.'
아침으로 아이스 라테를 간단히 먹고 꼬르륵 소리 내는 배를 간신히 움켜 잡으며 곧 다가올 12시 점심시간을 기다렸었다. 일에 집중을 하면 그마저도 빠르게 지나가므로 아침은 나에게 먹으나 마나 한 끼니였다. 그마저도 정말 바쁠 땐 아이스 라테도 거르는 경우도 많았다.
백수 2주 차,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되니 고삐가 풀렸다.
평소엔 먹지 않던 아침을 아이들과 함께 먹었고 그 후엔 카페에 간답시고 샌드위치를 먹고 커피를 또 마셨다.
집에 혼자 있고 시간이 많으니 점심도 거하게 먹었다. 마음이 여유로워지니 그렇게 배가 자주 고팠다.
하루에 몇 번이나 아이를 픽업하러 가야 한다는 핑계로, 아이 등하원 및 픽업을 포함하여 하루 평균 7000보는 걷는다는 핑계로, 더운 날씨에 왔다 갔다 하는 에너지 소비가 크다는 핑계로 더 자주 먹었다.
어느 날은 갑자기 날씨가 더워져서 냉면이 먹고 싶었다. 한살림에 가서 냉면육수와 면을 사고 집에 와서 시어머님이 보내주신 동치미를 꺼냈다. 그리고 계란을 삶았다. 냉면육수는 잠시 면과 계란을 삶을 동안 냉동실에 넣어놓았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냉동실의 물만두까지 꺼냈다. 면을 다 삶고 나서 찬물 샤워를 한 후 다시 물만두를 삶기 시작했다.
‘역시 냉면은 만두와 함께 먹어야 제맛이지.’
잘 삶아진 면을 그릇에 담고 살얼음이 언 육수를 담았다. 그리고 시어머니표 동치미 건더기와 국물, 오이김치를 추가했다. 그 위에 삶은 달걀을 얹으니 식당에서 파는 화려한 비주얼은 아니지만 이보다 맛있어 보이는 냉면이 없었다.(시장이 반찬이다.) 그것만으로 끝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잘 삶아진 물만두는 포기가 어려웠다.
만두와 냉면을 같이 먹는 조합은 정말 대단했다. 그 시간만큼은 유명한 냉면집이 부럽지 않았다.
만족스럽게 점심을 먹고 배를 두드리는데 평소보다 과식을 한 게 틀림없었다. 배가 너무너무 불렀다.
2시쯤 거하게 먹은 점심은 둘째를 픽업하러 간 시간까지 꺼지지 않았나 보다.
나도 모르게 둘째에게 배가 부르다는 말을 했다.
"둘째야, 엄마가 배가 너무 불러서 힘드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곰곰이 생각하던 6세가 말한다.
"엄마, 그러길래 적당히 먹었어야지!"
아 맞다. 내가 적당히를 모르고, 과식을 해 버렸구나.
쪼꼬만 6세 딸내미의 말에 '띵' 충격을 받았다. 너도 아는 걸 왜 나는 몰랐던 것일까.
근데 그런 말을 하기엔 너도 단 걸 너무 많이 먹고 있잖니?
매번 둘째에게 말한다. 오늘 간식은 이거 먹고 끝이야!
"응 엄마 알겠어...(시무룩)."
하고 나서 바로 또 다른 간식을 찾는 아이. 그 아이에게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단 거는 하루에 한 개만 먹는 거야."
갑자기 어제 보았던 개그우먼 이수지의 영상이 떠올랐다.
키즈카페에서 간식을 고르는 아이에게, 하나만 고르라고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제이미 맘.
아이에게는 하루에 한 개만 먹으라고 해놓고 본인은 깐풍기, 짬뽕 차돌, 볶음밥, 난자완스에 오향제육까지 시키는 그녀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졌다.
아이는 엄마의 등을 보며 자란다. 나부터 모범을 보여야겠다.
육아휴직 중 철저한 식단 관리는 필수이다. 그렇지 않으면......
1년 뒤 지금보다 두 배는 불어난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먹고 싶은 것'을 바꿔라.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어라.
당신의 에너지를 조절하는 것은 마법이 아니라 화학물질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 '스콧 애덤스'의 THE SYSTEM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