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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몰래 3000만 원을 대출받다

휴직을 위한 비상금 준비

by 보나

막상 휴직을 결심하고 나니,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돈’이었다. 아직 휴직에 들어가기 전인데도, 혹시 마이너스 통장을 미리 늘려둬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훅 밀려왔다.


무작정 은행에 전화를 걸어, 현재 보유 중인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를 늘릴 수 있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결국 서류를 챙겨 직접 방문해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일단 회사에서 출력 가능한 것들을 재빨리 출력해서 가방 속에 고이 넣어두었다. 두근두근 내일을 기다리며.



‘그래도 작년보다 연봉이 올랐으니 대출 증액이 가능하겠지?’

‘얼마나 증액이 가능할까?’

‘그래도 숨 쉴 구멍은 있어야 휴직을 해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을까?’


회사 동료들은 이번 기회에 남은 육아휴직도 다 쓰고 더 쉬라고 이야기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는 생계형이라 그럴 수 없어. 다 쉬고 복직해야지.”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동료들은,

“그래도 책임님은 남편분이 버시잖아요. 걱정할 게 뭐가 있어요.” 라며 웃는다.


요즘 같은 맞벌이 시대에도,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마도 남편이 엄청나게 많이 버는 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우리 부부의 수입이 많아 보여도, 원리금 상환에 각종 사교육비, 외식 등으로 나가는 고정비를 제하면 숨만 쉬어도 월급의 절반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외식도 자주 하고 하다 보면 그 지출은 더 커져서 몸집이 큰 고정비가 되어 버린다.


여러 가지 이유야 있지만 돈을 안 벌게 되면 당장 아쉬운 건 나이니 어쩔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갑자기 휴직을 한다는 건 남편에게도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거다.

그 부담스러운 일을 용기 있게(?) 받아내 준 남편에게 매우 고맙다. 그러니 너무 기댈 생각일랑 말고 내가 어떻게든 비상금이라도 구비해 놓아야 그 부담감이 좀 덜하지 않을까.




물론 남편에게 비밀이다. 단지 '돈 좀 줘'라는 말을 덜 하고 싶은 바람으로 은행으로 향했다.


은행에 가서

"말씀하신 서류들을 가지고 왔는데 마이너스 통장 증액이 얼마나 가능할까요?"

라고 말하고는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결론은 정확하게 알려면 다른 서류가 더 필요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실망했지만 혹시 다른 방법은 없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행히도 원하는 금액에 대해 추가로 마이너스 통장 개설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내가 원하는 금액이 은행창구의 직원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적었던 듯하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은 대출받기 어려운 쫄보였다.


남편 몰래 받는 신용대출인데 더 큰 금액을 받았다가는 감당이 안될 것 같아 일단 최소라고 생각하는 정도로 마이너스 통장을 늘렸다. 이걸 하면서도 마음은 두근두근, 내가 과연 이게 잘하는 걸까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하지만 결론은, 나의 원만한 휴직 생활을 위한 비상자금은 있어야 하고 갚는 건 미래의 나에게 맡기자로 결론이 났다.



빚이 늘어났지만, 이 빚을 담보 삼아 1년간 내 인생의 작은 모험을 시작해보려 한다.


1. 제대로 쉬기

2. 회사가 아니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험해 보기

3. 아이의 교육에 집중해서 사교육 없이 공부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4. 아이들에게 좀 더 건강한 음식을 해주기.


이렇게 4가지에 집중하여 휴직기간을 보내보고자 한다.


이 도전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도전을 위한 든든한 비상자금도 마련해 놓았으니 미래의 나를 믿고 소중한 시간을 켜켜이 쌓아 나갈 것이다.




오늘은 업무를 마무리하고 휴직을 시작한 역사적인 날이다.


휴직 준비하는 한 달 동안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든 나날들이었지만 운이 좋게도, 능력 있는 인수인계자를 만나 업무에 대해 짧은 시간이지만 잘 인수인계 하고 올 수 있었고 단시간에 마무리 인사도 잘하고 휴직을 들어오게 되었다.


조직장 들은 급하게 처리된 휴직에 대해 섭섭하다 토로했지만 언제나 내 결정의 중심은 '내가 원하는가' 이므로 이번 결정을 통해 인생의 방향도 '내가 원하는 것'으로 변화해 나갈 예정이다.


그동안 인생에서 못해온 것들을 하나씩 해 나가는 휴직 기간, 이 기회를 통해 나를 성장시키며 도전하는 사람이 되려 한다. 1년간의 여정이 어떤 일상으로 채워질지 기대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나날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변화시킬 지도 궁금하다. 아이들 또한 어떻게 변화될지도 궁금하다.


그리고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다.


남들이 다할 때 안 하고 나중에 하는 휴직은 보다 더 나 자신에 집중된 기간이므로 나를 돌아보고 알아가는 시간을 통해 내 인생을 알아가려 한다.


인생 2막 준비를 위해 대출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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