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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그거 그냥 쉬면 되는 거 아니었어?

우아한 생활을 위하여

by 보나

백.수.과.로.사


일을 안 하는 백수인데도 과로사했다는 뜻으로 보기에는 일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보이지 않는 노동(예: 구직 활동, 자책, 가족 눈치 보기 등)으로 극심한 피로를 겪는 상황을 풍자하는 표현
- 출처 : ChatGPT



공식적인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5일 차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너무 힘들다.


이상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들지?


분명 회사를 가지 않는데, 회사에서 정신적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는데, 대체 왜 이렇게 힘든 거지?


정말 이상하다.


아마 어젯밤에 잠을 자지 못해서 그런 걸까.

육아휴직을 했으니 쓸데없이 우아한 밤을 보낸다고 애들 재우고 나와서 켠 TV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서서모임의 독서인증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해서 그런 건가.

원랜 퇴근 후, 식탁에 앉아서 책을 읽고 인증했었는데 시간을 아침으로 당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하필 이번 주에 겹친 아이 학교의 방과 후 수업 참관일이 4일 내내 있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평소에 아이가 하교 후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고 했던 로망을 이뤄준 것 때문일까.


아니면 갑자기 아이 공부환경을 조성한답시고 괜히 이케아 책상을 들여서 조립한다고 집안에 있는 책정리를 시작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남편이!! 내가 육아휴직을 한 기념으로(?) 주 5일 회식을 했기 때문일까?


정말 이상하다. 왜 피곤하지?




육아휴직을 하면 아이 학교 다녀오기 전까지 우아하게 책도 읽고 글도 쓰며 커피와 함께 하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왜 인지 회사 다닐 때 보다 더 힘든 거 같은 느낌이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없지만 정해진 시간마다 알람을 맞춰놓고 나가야 하는 압박감과 계속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작년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후 3월 한 달간 친정엄마께 잠시 아이를 부탁드렸던 적이 있었다. 그때 엄마께서는 '너무 힘들다'라고 하셨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일정 시간이 되면 아이의 학원 가방을 가져다주고, 중간에 시간이 비면 데리고 집에 가서 간식을 챙겨주시라 요청했다. 그리고 다시 학교 앞으로 와서 학원 차를 태워주고, 학원 차가 도착하면 아이가 차에서 내리는 걸 받아 주시라 말씀드렸다.


그리고 속으로는, '잠깐씩 나가서 아이를 차를 태워 보내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힘들다고 하실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직접 해보니 너무너무 힘들다. 작년에 엄마의 노고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 나를 매우 반성한다. 역시 사람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일의 가치를 알기 어렵다.


겪어봐야 철이 들고, 겪어봐야 힘든 줄을 안다.


이렇게 불효녀는 아이를 키우며 점점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생각해 나가게 되나 보다.




stairs-5237432_1280.jpg 모든 지 한 단계씩, 차근차근, STEP BY STEP - Pixabay



사람이 안 하던 행동을 하면 죽을 때가 된 것이라는 말이 있다.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나서 내가 안 하던 행동을 너무 한꺼번에 많이 했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나도 힘들고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 조금씩 하나씩 바꿔 나가야겠다.


아이들에게 올인하겠다는 것도 학원을 갑자기 중단하고 집공부를 갑자기 시작하려 하지 말자. (원랜 이럴 생각이었다.) 하나씩 시험해 보며 바꿀지 말지를 결정해야겠다. 첫째와 둘째는 성향이 다르니 그녀들 각자에게 맞추어 변화를 줘야 한다.


운동도 매일 하겠다는 다짐보다는, 평소 주 2일 간신히 가던 것을 주 3일로 하루만 늘려보자.

그걸 꾸준히 한 달 정도 지킬 수 있게 되면, 그러고 나서 또 4일로 늘려보자. 나는 역시 급격한 변화에는 적응이 쉽지 않은 사람이 맞다. 차근히, 천천히, 스며들듯 변화를 주는 것이 자신에게 좋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육아휴직 시작하자마자 시스템을 만들고 그걸 지키겠다는 다짐도 일단 당분간은 뒤로 미뤄두자. 지내면서 나의 패턴을 파악하고 어떤 시스템이 나를 편하게 하는지, 가장 자연스러운 나를 유지하는지 자신을 파악해 보려 한다.


이렇게 하나씩, 조금씩 스며들듯 변화시키고 나면 휴직 생활이 루틴처럼 편안하게 흘러가게 될 거다. 그렇게 되면 나와 아이들의 행복을 모두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휴직을 했는데도 적응이 필요할 줄은 정말 몰랐다. 내 몸이 이렇게 힘들 줄은 더더욱 몰랐다.


그만큼 내 몸이 회사원 루틴에 완벽히 적응하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둘째 낳고 복직했을 때도 워킹맘의 루틴을 만드는 데 3개월 정도 걸렸다. 그러고 나서는 내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자동화가 되었다. 운전을 하는 길도 내비게이션을 보지 않고 차선을 바꾸고 속도를 내어 회사에 도착했었다.


휴직도 마찬가지 일거다. 적응하고 나면 자동화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가겠지.

그러니까 더욱 소중한 나의 1년. 벌써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다. 후회하지 않도록 적응해 나가 보자.



모든 일이 언제나 다 뜻대로 이루어진다면 그는 아마도 사람이 아니라 신일 것이다.

- 김주환, '회복 탄력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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