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m and Terri Nov 14. 2021

캐나다, COVID의 시작

평화로웠던 2020년 3월에 날벼락이 떨어지다

2020년의 시작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바빴던 2019년 가을보다는 학교 일정이 훨씬 여유로웠을 뿐만 아니라,

인턴십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제외하면 심적으로도 큰 부담이 없었다.


2학기부터는 내가 정할 세부전공에 맞게 수강 신청을 해서 들으면 된다.

보통 많은 학생들이 4과목(12학점)을 듣지만, 겨울부터 인턴을 시작하는 학생들은 보통 여유있게 2과목(6학점)만 듣고 나머지 학기들에 4과목씩 듣고 학점을 채운다.

나도 4과목을 신청했고, 덕분에 시간표도 아주 널널해져서

월요일 저녁 6시에 시작해서 목요일 오후 2시반이면 모든 일정이 끝났다.

물론 매일 학교를 가야 하긴 했지만, 사실 매일 가는 편이 어느 정도 루틴을 유지하기에 좋았다.


내가 들었던 과목들을 정리해 보자면,


1) Techniques and Tool for Analytics

- 아내가 도대체 이건 왜 신청했냐고 의문을 가졌던 과목이다. 왜냐하면 너무 배우는 게 없을 정도로 쉬운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엑셀과 BI 툴들 (Tableau, PowerBI) 등을 배우는 과목으로 사실은 세부전공 필수라서 어쩔 수 없이 수강을 해야 했던 과목이다.

- 수업의 1/3 정도는 엑셀 기본 함수(sum, vlookup, if문)들을 커버해서 전혀 배울 게 없었고 중반부터 엑셀 매크로와 태블로를 배울 때 그래도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 한국 모 사이트에서 태블로 수업을 1~2월에 들었는데 그거에 비하면 수박 겉핥기 수준이라 학점은 큰 문제없이 A를 받았다.


2) Customer Insights

- 소비자 행동론에 가까운 과목으로, 유쾌하고 젊은 캐내디언 교수가 강의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들었던 과목이다. 그리고 '쇼핑의 과학'이라는 책이 교재였는데 예전에 한국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어서 리딩 과제 또한 수월하게 한국어 책으로 진행할 수 있어서 편했다. (비싼 거금을 들여 알라딘에서 해외 배송했지만 시간 대비 효율은 이길 수 없다) 그러나 막상 한편으로는 나중에 딱히 남는 게 없다는 생각이 좀 들긴 헸다. 그래서인지 딱히 코멘트를 남길 게 없다...

- 인상 깊었던 팀 과제는 3인 1조로 몬트리올 시내 쇼핑몰을 하나 정해서 탐방한 후, 상점들 분석 및 제안서를 제출하는 내용인데 이것 때문에 집 앞에 쇼핑몰을 매일매일 드나들어야 했다. 아무튼 이것 또한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수업이 기다려지는 과목 중 하나였다.



3) Digital Business Analytics

- 원래 2학년 과목인데, 이번에 특별히 1학년들에게 열려서 수강할 수 있었다. 아주 좋았던 점은 한국인 교수님이 강의를 진행해서 영어로 잘 들렸고 중간중간 모르는 점들을 따로 한글로 물어볼 수 있어서 수월했다.

- 막상 코드가 다 제공이 되어서 실제로 코딩을 할 일은 많지 않은 과목이었고, Web Scraping을 직접 한 다음 Python으로 감정 분석까지 해서 실제로 분석 보고서를 내는 아주 고차원적인 수업이긴 했다. (중고차 웹사이트, 트위터, Yelp 등이 주 Source) 물론 왜 코드가 이렇게 되고, 바탕 이론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들었는데 매우 수학적인 내용이라 사실 기억이 뚜렷하게 나진 않는다...

- 수업 들을 때는 회사에서 이런 걸 하면 참 좋겠구나 했는데 막상 일을 하니 활용할 일이 없긴 해서 좀 아쉽긴 하다. ㅎㅎ


4) People Analytics

- HR data를 분석하는 법을 배우는 과목으로 거의 학기 로드 중 반을 차지했던 힘든 과목이었다. 조별 과제가 대부분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사 쪽 내용보다는 거의 데이터 분석에 가까운 과목이라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중에 코딩이 익숙해졌을 때 들었으면 참 도움이 많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NodeXL 부분)

- Case Competition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조별 과제였는데, 조원 3명 중 그 누구도 코딩에 익숙하지 않아 매일 뻑나는 엑셀을 붙잡고 새벽까지 고생을 했었다. ㅠㅠ 그리고 결과는 물론 실패. Case Competition 또한 정말 특이한 '국경 없는 의사회' 조직 데이터를 이용해 Visualization을 만들고 문제점을 도출하는 게 목표였는데, 엑셀이 뻑나는데 어떻게 그걸 Tableau나 PowerBI에 올려서 리포트를 만들겠는가. 결국 만족스럽지 못한 차트 몇 개를 만들어서 제출했으나 나중에 수상작들을 보고 나니 '아 이건 내가 어차피 해도 안 됐겠구나 ㅋㅋㅋ'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 물론 교수가 우리의 삽질을 가상히 여겨 학점은 잘 받았지만, 정말 2학년이 되어 마지막 학기에 들었으면 얻을 수 있는 게 많았다고 생각되는 과목 중 하나이다.




아무튼 서론이 길었는데, 우리 가족은 추운 겨울 내내 아주 열심히 살고 있었다.

아침에 아내가 아이를 아침 8시에 등원을 시키고 불어 수업을 들으러 갔고,

나는 아침에 집안 청소 및 정리를 약간 해 놓고 집에서 과제를 하다 학교에 가곤 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눈이 이렇게 왔고, 이런 날도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

물론 중간중간 인턴십도 지원을 하고 말이다. (사실 네트워킹은 열심히 하지 않았다. 한 차례 네트워킹 행사에 참석한 게 전부였던 듯)

그리고 1월 말에는 당시 MBA를 하고 있던 회사 동기 형을 만나러 애틀랜타에, 3월 초에는 아내 친척이 살고 있는 필라델피아에 3박 4일 일정으로 여행도 다녀오는 듯 아주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 3월 12일에 갑자기 봄방학 때 (원래 3월 첫 주는 봄방학) 외국에 다녀온 사람들은 학교에 한동안 나오지 말라는 메일이 왔다. 그리고 3월 13일에 갑자기 휴교령이 내렸고, 그 날 우리도 마트로 달려가 미친듯이 장을 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린 미국에서 혹시나 해서 마스크를 사온 덕분에 마스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었다.

우리 집 앞 마트도 이랬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빨랐나 싶을 정도로...

13일 금요일 저녁, French Speaking Club 친구들과 예정대로 맥주 한 잔을 하면서 '우리 앞으로 만날 수 있을까'란 얘기를 했었는데 이게 현실이 되었고, 그 날이 마지막 만남이 된 친구도 있다.

그리고 14일 토요일 아침, 퀘벡 주가 비상 사태를 선포했고 15일에는 데이케어 포함 모든 학교를 닫는다는 뉴스가 나왔고 우리는 속절 없이 집에만 있는 생활을 몇 달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도 2주 간 잠정적으로 휴교를 한다는 뉴스가 나와 우린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게 되었다.


처음 학교가 닫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든 생각은 정말 '아, x됐다.'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이와 24시간 함께 보내면서 인턴십도 찾아야 되고 학기도 마무리해야 하고...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해서 밤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주변에 한두명씩 본국으로 탈출하듯 돌아가는 친구들도 생겨서 내가 여기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2주 동안 학교에서 구체적인 계획이 나올 때까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그냥 밤에 과제들을 미리미리 좀 하면서 채용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인턴십 공고들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COVID와 함께하게 된 겨울 학기 이야기는 다음 편에...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은 해피엔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