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중심지가 우리 동네라고 믿고 사는 집순이가, 동네를 탈출하여 출퇴근하는 일은 얼마 만인가. 그동안 프리랜서 작가를 선언하며 집에서 쉬고, 운동한 덕분에 충전된 체력도 한몫했다.
8월의 처서가 지나고, 내 마음 안에도 뜨거웠던 여름을 몰아내는 가을바람이 불었다. 고독한 시기는 감정이 차분해져 사색하기에 그만이다. 그래서 가을을 마음의 양식을 쌓기 좋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 양식이 가득한 곳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낯선 여인의 등장에 학생들은 호기심을 담아 곁눈질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눈웃음을 지으며 손 인사를 보냈다.
이런. 아무도 책에서 손을 떼어 같이 흔들지 않는다. 내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면 빛나는 미모에 작은 사람들도 손을 흔들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역시 난 마해자다. (웃음)
아이들은 면접자를 향해 같이 손 인사도 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다시 공부에 몰두하지도 않는다. 계속해서 시선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지만 어딘가 경직되어 보였다. 궁예의 관심법을 써서 속마음을 헤아려 보니, 경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요즘 아이들은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높다. 가정과 학교에서 낯선 사람은 조심하라는 교육을 받기 때문일 거라는, 결코 내가 못 생기거나 너무 예뻐서는 아닐 거라는 합리적 추론을 해본다.
서류 면접에 합격하고 드디어 첫 출근을 했다. 선생님의 자리에 앉으니 그제야 아이들은 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잠시 후 아이들이 스멀스멀 책과 학습지를 들고 나에게 다가온다. 책을 읽고 주관식 답을 써야 하는데 모르겠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아이는 진짜 모르는 것이 아니라, 혼자 하기 싫거나 어려워하는 것뿐이다.
어떤 어른은 아이가 모른다고 하면 쉽게 답을 알려준다. 아이가 묻기도 전에 자기가 알고 있는 답을 제시하는 어른도 있다. 결국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며, 틀리고 수정하는 소중한 기회를 빼앗는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인 T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같이 읽고 답을 찾아봐야 알 것 같아. T가 먼저 읽어봤으니까 혹시 질문의 답이 있는 페이지를 선생님에게 알려줄 수 있을까?
-음~ 여기였던 것 같아요.
T는 정확하게 답이 있는 페이지를 펼쳐 보인다. 나는 그런 아이의 태도를 칭찬하며 말을 이어갔다.
-오~! 읽어보니 맞네. T가 펼쳐 보여준 페이지 안에 답이 있네. 너무 잘했어! 그럼 질문에 대한 답을 틀려도 괜찮으니까 먼저 편하게 입으로 말해볼까?
T는 생각을 글로 쓰기 전, 눈알을 요리조리 굴려 가며 자기 생각을 입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조잘조잘 말하면서 자기 생각이 또 한 번 정리됐다. 표정을 보니 시무룩하던 조금 전과는 다르게 웃음을 띠고 의기양양하다. 귀여운 녀석.
-그래. 그거야~! 잘했어. 틀리면 지우개로 지우면 되니까, 이제 선생님에게 말한 그대로 정리해서 글로 써볼까~?
코로나 팬데믹을 겪기 전, 나는 직장인을 상대로 유료 독서 모임 장으로 활동했다. 그때 문득 아이들과도 함께 글쓰기가 하고 싶어졌다. 잊고 살았던 순수함과 엉뚱할 정도로 창의적인 생각은 대부분 작은 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영감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022년 8월 29일 월요일. 유. 초. 중 글쓰기 / 독서지도 선생님이 되어 잠실로 첫 출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