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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영 Oct 09. 2022

100점 받지 못하면 풀이 죽던 아이를 살린 '이 말'

 초등학교 2학년 네 명이 가장 먼저 글쓰기 학원으로 우르르 몰려왔다가, 또다시 우르르 하원하곤 했다. 책 읽고 글 쓸 때조차 네 명은 몰려 앉았다. 그래서 내 맘대로 그 무리를 사총사라고 불렀다.

그날도 사총사는 다 같이 독서하고 진단 평가까지 받고 나더니, 나팔을 불듯 자기 점수를 외쳤다.


-쌤~ 저 60점 받았어요.

-응~ 60점이면 잘한 거야. 쉬었다가 재도전해보자.

-쌤~ 저는 40점 받았어요.

-응. 열심히 잘했어~ 다음엔 책을 펴놓고 답을 찾아서 풀어보자.

-쌤~ 전 70점 받았어요.

-응~ 70점도 정말 잘한 거야. 푸느라 수고했어.


아이들은 내 반응에 생소한 듯 일제히 반응했다.


-쌔앰~! 이건 잘한 게 아니에요~ 70점 이하는 통과하지 못한다고요. 우린 다시 풀어야 한다고요!!

-그래? 그럼 너희는 몇 점부터 잘했다고 생각해~?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이었는지, 아이들은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러더니 너무나 당연한 것을 선생님만 모른다는 듯이 합창했다.


"당연히 100점이죠~!"


나는 분명히  점이 만점이냐고 묻지 않고,  점부터 잘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한 아이들의 대답은 오직 결점 없는 100점이었다. 나는 사총사의 대답에 의아해하며 말했다.


-얘들아. 그건 완벽한 점수지~! 그렇지만 잘한 거는 100점만을 뜻하지 않아.


나의 대답에 이번에는 사총사가 의아한 듯 일제히 물었다.


“그럼 뭐가 잘한 건데요~?”


한 사람의 생각과 언어는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있다. 비록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인생은 바꿔 놓을 수 있다.


-너희들이 하는 모든 것. 학교 끝나면 학원에 와서 알아서 책 읽고 진단 평가하고 학습지 풀고, 틀리면 수정하고, 탈락하면 또 도전하는 그 모든 게 잘한 거지! 가만히 보면 너희는 100점 이외에는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나는 분명히 엄근진(엄격하다’, ‘근엄하다’, ‘진지하다’의 앞 글자만 가져와 만든 신조어)으로 말했는데, 아이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책상을 두드리며, 자기들끼리 바라보고 까르륵 소리 내며 웃었다.


주말이 지나고 어김없이 사총사가 가장 먼저 등원했다. 그리고 우르르 다 같이 내게 몰려오더니 일제히 짠 듯 외친다.


-쌤~ 쌤 핸드폰 번호 알려주세요!

-내 핸드폰 번호는 왜~?

-알려주세요오~~~


학원에서는 아이들과 개인 연락처를 공유하지 않는다. 학부모와 연락하는 학원 톡이 따로 있기 때문에 개인 연락처를 주고받을 필요가 없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원장님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선생님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앉아서 공부해~

-아~~ 알려주시지...


아이들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체념한 듯 핸드폰을 덮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책 읽기 시작했다. 


글쓰기 학원 독서 목록에는 작가 마키타 신지의 <틀려도 괜찮아>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틀린 답을 말하면 친구들이 웃지 않을까, 선생님에게 혼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아이들에게, 틀린 답을 통해서도 정답을 유추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학원 아이들은 이 책을 모두 읽고 진단 평가도 통과하고 학습지까지 풀었지만, 삶에 적용하는 방법은 각자의 현실 세계를 통해 배워가는 중이다.


나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단순히 시험에서 100점 받는 것을 목표로 책을 읽지 않길 바란다. 아이들이 좋은 책을 읽고 사색하는 인간으로 성장하여, 마침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길 바란다.


평범한 우리 아이들이 자기 모습을 그대로 긍정하면서 가치를 깨달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그와 같은 마음으로 타인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길 오늘도 기도한다.


언젠가 학부모가 학원에 찾아와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Y가 왜 학원에 가고 싶어 하는지 선생님을 뵈니까 알 것 같아요. 아이들은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빨리 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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