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영 Oct 22. 2022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이 행동’을 하고 있다면…

 단둘이 있을 때 혼자 관심받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던 초등 2학년 Y는 안타깝게도 그날 이후, 나와 단둘이 있을 시간이 없었다. 등원할 때마다 또래 사총사와 시간이 겹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전처럼 Y 한 명만을 오롯이 봐줄 수가 없었다.


그러자 Y는 전에는 하지 않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수업 시간에 콧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책상 아래에 숨어서 책을 읽었다. 때론 내 앞에서 책상과 책상 사이에 손을 올리고는 두 다리를 공중에서 앞뒤로 흔들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져서 다칠 뻔한 일도 있었다. 이따금 내 주위를 빙그르르 돌며 자기 자리에 가서 앉거나, 책상 위에 올라가 몸을 흔들어대기도 했다.


-Y야. 그러면 위험해. 다치니까 하면 안 되는 거야. Y야. 다른 친구들도 다 같이 공부하니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하자.


어느 순간 Y의 행동에 제재를 가하는 나의 언어가 교실 공기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Y의 행동을 보면서도 다른 아이들과 차별화된 반응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상대가 어떤 언행을 할 때, 언행에 집중하기보다 그렇게 하는 기저의 심리가 무엇인지 이해하면, 너그럽게 바라봐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특히 나에겐 그 상대가 어린아이라면, 자기감정을 어떤 방법으로 표출하는 게 좋은 건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의 여유를 내기가 한결 수월하다.


첫째 아이에게 동생이 생기면 첫째가 다시 아기처럼 말하거나, 젖병을 물거나, 옷을 입은 채 쉬를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다시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한 것인데, 이를 ‘퇴행 행동’이라고 한다. 즉, "나 좀 봐줘요!"라는 신호다.


성숙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는 Y가 공동체 안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단호하면서도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외동인 Y는 생각보다 영리했다. 그런 행동으로는 전처럼 나의 관심과 사랑을 오롯이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Y가 다른 묘수를 꺼내 들었다.


-선생님~! 황색 점액 균이 뭐예요?

-그거는 미생물이야.

-저도 알아요. 선생님이 자세하게 설명해 주세요.

-지금 Y가 읽고 있는 책에 자세하게 나와 있어.

-그래도 선생님이 설명해 주세요.

-책을 다 읽고 이해되지 않는 것만 선생님에게 물어보자.


Y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아서 콘버그 박사가 쓴 <노벨상 수상자가 들려주는 미생물 이야기>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을 하나씩 다 질문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내가 자기 곁에 붙어서 책을 대신 읽고 설명해 주기를 희망하며, 질문 귀신이 되어 나를 쫓아다녔다.


-선생님~ 그럼 이거는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파이로코커스 퓨리어서스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책에 안 나와 있어요.


드디어 Y는 책에 나오지 않은 무언가를 찾아낸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구분하는 질문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과거 기사를 살펴보면 식물 없이 파이로코커스 퓨리어서스라는 호열성 미생물을 중간 매개체로 삼아 대기 중에서 직접 이산화탄소를 뽑아내 연료로 변환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해. 말이 조금 어렵지만, 결론은 좋다고 말할 수 있어. 그런데 Y는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을 왜 좋은 거 나쁜 거로 구분하고 싶어 해?


Y는 예상치 못 한 나의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음~ 그건요. 제가 책을 읽고 좋고 나쁜 거를 구분해서 적고 있거든요.

-Y야.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을, 좋은 거 나쁜 거로 구분 짓는 건 어려운 일이야.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필요에 의해 존재하거든. 단지 인간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좋은 게 될 수도 있고 나쁜 게 될 수도 있어.

핵도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발명됐지만,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인간을 죽이는 용도로 사용됐거든.


Y는 내 말을 이해한 것 같았다. 왜냐하면,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뒤로 좋은 거 나쁜 거를 구분 짓는 이분법 놀이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한동안 심술 난 표정을 하고, 나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로 쌀쌀맞게 대했다. 하지만 나는 Y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래도 된다는 듯이 있는 그대로 두었다. 단지, 그런 Y에게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웃으며 인사하고 말을 걸었다.


흔들림 없는 편안함, 에이스 침대 같은 나의 태도에 Y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 듯했다. 왜냐하면, 더는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나의 신경을 자극하는 방법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종종 강산의 변화를 수없이 체험한 어른도 -질투심 유발 작전 같은- 불안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것을 목도하곤 한다. 그런데 작은 사람이 그러한 방법으로는 진정한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벌써 깨달은 걸까? 몹시 궁금했다.


최근에 S라는 아이가 신규 등록했다. Y는 S가 자신과 같은 반 친구라고 소개했다. 그리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S가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나와 S의 곁에서 도와주었다.


그동안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던 Y가, 타인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기 위해 마음을 쓰는 모습이 기특해서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Y가 배시시 웃었다.

Y가 학습지를 풀다가 내게 질문했다.


-선생님~ 미생물의 개수는 몇 개나 될까요~? 천개? 만개? 억개도 넘게 있죠?

-그럼~ 그것보다 훨씬 많지. 사실 지금 미생물 숫자가 몇 개라고 책에 나와 있어도 그건 지금까지 인간이 발견한 미생물의 개수에 불과해. 아직 발견하지 못한 미생물의 숫자는 훨씬 많을 거야.


Y는 나의 대답에 왠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는 방금 들은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 답을 적기 시작했다.


<노벨상 수상자가 들려주는 미생물 이야기> 책에서 나쁜 세균이라고 말하는 것도, 우리 몸에 살짝 넣으면 나쁜 세균에 저항할  있는 항체가 생긴다고 쓰여있다. 이것이 백신이라고 불리는 예방주사의 원리다. 그 덕분에 면역력이 생겨서 나쁜 세균을 이겨내고, 소중한 우리 건강을 지켜낼  있다.  


어쩌면 Y도 이번 경험을 통해 사랑의 예방주사를 맞은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와 너를 건강하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희망해 본다.




이전 06화 줄임표 안에는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담겨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