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총사 멤버 중 한 명인 초등 2학년 K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당분간 쉬어야 할 것 같다며 속삭이듯 말했다.
-쌤~ 그래서 저 2주 동안 못 올 거예요.
-그럼 K는 내가 2주 동안 보고 싶겠네?
나의 대답에 K가 조금 당황한 듯 "네?"라고 되묻더니 바로 웃으며 "네~"라고 수긍한다.
-그렇담 쫌 참아 봐.
-네? 네~ 히히히~
K는 나의 대답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치킨을 먹고 싶게 연신 '네네'를 외쳐댔다. 그날 이후 K는 내게 귀띔 한 대로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그 후 사총사가 삼총사가 되어 매일같이 등원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몰려 앉아 독서하고 글쓰기를 반복했다.
-너희 떠들면 따로 앉힐 거야.
-쌤! 저희는 안 떠들어요~ 그동안 K 때문에 시끄러웠던 거예요~
-이 자리에 K가 없다고 K한테 다 떠넘기는 거 아냐?
-아니에요~ 저희는 진짜 조용한데 K가 떠들어서 그런 거예요.
삼총사는 한마음 한뜻으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나는 마스크 너머로 눈을 가늘게 뜬 채 흐음~하는 소리를 내며 삼총사를 바라봤다. 삼총사는 자신들의 말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평소와 다르게 조용히 하려고 서로가 애썼다. 그리고는 하원 할 때 "거 봐요~ K가 없으니까 진짜 조용하죠?"라는 말로 내게 확인 도장을 받아 가고 싶어 했다. "그러네~ 아무튼 오늘도 수고했어. 조심해서 잘 가!"라는 말로 삼총사에게 확인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 사이에 학원 주변의 단풍이 알록달록 옷을 갈아입었다. 비가 오고 난 후 제법 추워진 날씨 때문에 아이들의 옷차림도 두꺼워졌다.
오랜만에 K가 삼총사와 함께 등원했다. 그들은 다시 사총사가 되어 있었다. K는 지퍼가 달리 후드 점퍼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서 내 앞에 들이밀었다.
-쌤~ 이게 뭐게요~?"
-그거 손난로 아니야?"
-아! 맞아요! 이거 엄청 따뜻해요. 쌤 수업하는 동안 가지고 계세요.
K는 제 손보다 큰 손난로를 두 손에 올린 채 내게 건넸다. 왠지 나보다 밖에서 있다가 온 K가 더 추울 것 같아서, 그냥 가지고 있으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K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에요. 쌤 드리려고 제가 따뜻하게 가져온 거예요.
-어머! 정말? 고마워~ 넘 감동이라서 눈물 날 것 같아.
정말이지 그 순간 K의 마음이 내 손위의 손난로보다 따뜻하게 느껴져서, 눈시울마저 뜨거워졌다. 그날 주머니 속에 있던 손난로를 만지작만지작하며, 문득 14살 정여민 학생이 쓴 글이 떠올랐다. 시골 마을 이웃들의 손길 속에서 '우리 마음속 온도는 과연 몇 도쯤 되는 것일까?'를 생각하며 아이는 이런 글을 썼다.
나는 이곳에서 '우리 마음속 온도는 과연 몇 도쯤 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너무 뜨거워서 다른 사람이 부담스러워하지도 않고 너무 차가워서 다른 사람이 상처받지도 않는 온도는 '따뜻함'이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고, 말없이 전해질 수 있는 따뜻함이기에 사람들은 마음을 나누는 것 같다.
-정여민,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주니어김영사, 2016
사람의 마음에 문이 있다면, 서로가 마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는 어쩌면 ‘따뜻함’이 아닐까. 나도 아이들처럼 누군가에게, 그리고 세상에 '따뜻함'을 선물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새삼 '따뜻하다'의 국어사전 뜻이 궁금해졌다. 너무나 익숙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단어도 사전을 찾아보면, 새롭게 느껴지거나 더 깊이 알게 된다. 그때의 깨달음이 기분 좋아 종종 사전을 찾아보곤 한다. 초록 창에 '따뜻하다' 네 글자를 입력하고 국어사전 뜻을 검색했다.
1. 덥지 않을 정도로 온도가 알맞게 높다.
2. 감정, 태도, 분위기 따위가 정답고 포근하다.
K가 다시 오니 전처럼 사총사가 왁자지껄하게 하원 했다. ‘조용한 삼총사’ 확인 도장 따위는 이젠 필요 없다는 듯한 태도로 말이다. 방금 하원 한 K가 다시 돌아오더니 급하게 나를 찾는다.
-쌤~ 제 손난로요!
-아~ 맞다! 여기. 고마웠어. 잘 가!
K는 한 시간에 전에 빌려준 손난로를 잊지 않고 도로 가져갔다. 그러나 손난로가 머물다간 내 주머니와 두 손에는, 여전히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