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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영 Oct 30. 2022

당신의 인생 이야기는 ‘어느 때’를 지나고 있나요?

 7살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학원에 왔다. 그 옆에는 학원생인 U가 서 있었다. 7살 아이가 엄마 손을 놓지 않고 있을 때, U는 저벅저벅 교실로 걸어들어와서 자연스럽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어서 탁. 탁. 탁. 소리를 내며 독수리 타자를 하더니, 귀에 헤드폰을 끼고 구연동화를 듣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7살 아이의 엄마가 원장님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U랑 동갑내기 사촌인데 레벨 테스트 예약하고 왔어요.

-네~ 혹시 아이가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나요?

-조금 하는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럼 제가 간단한 테스트부터 하고 말씀드릴게요.


7살 아이는 레벨 테스트를 받기 위해 엄마의 손을 놓고 혼자 책상에 앉았다. 나는 우선 한글과 그림이 인쇄된 종이를 가져와 아이 앞에 놓았다.


-한글 읽을 줄 알아~?

-네

-그럼 이제부터 선생님이 가리키는 글자를 소리 내서 읽어볼까?

-구! 규...ㄹ! 누! 늡!


받침 없는 글자는 거침없이 읽어나갔지만, 그에 비해 받침 있는 특정 글자는 읽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림을 보며 그것이 무엇인지 한글 쓰기를 시켜보았다.


-한글 쓸 줄 알아~?

-네!


자신만만했던 처음의 대답과 달리 7살 아이는 한글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책꽂이에서 기초 레벨 책을 한 권 꺼내서 아이 앞에 펼쳐 보였다.


-지금부터 선생님이 그림 동화책을 읽어줄 거야. 듣고 이해가 되는지 편하게 말해주면 돼.

-네~

-세상 모든 일에는 ‘시작하는 때’와 ‘마무리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네~


나는 혹시 아이가 “아니오”라는 대답을 할 줄 모르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며 계속해서 7살 아이에게 읽어주었다.


-무서운 전쟁을 할 때도 있지만, 서로 아끼며 평화롭게 살 때도 있지요. 이 말도 무슨 뜻인지 이해돼~?

-아니요~


드디어 아이는 "네"가 아닌 "아니오"라는 대답을 했다. 그래서 읽던 것을 멈추고 물었다.


-어떤 부분을 모르겠어~?

-전쟁요~

-전쟁이라는 뜻을 모르겠어?

-네. 아~! 전쟁 알아요. 그건 나쁜 거예요.


7살 아이는 대화 중에 갑자기 '전쟁'의 뜻이 생각 난 듯했다. 부모님과 함께 TV '지구촌 뉴스'에서 봤든, '사랑과 전쟁'에서 봤든 어쨌든 전쟁은 나쁜 거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문득 7살 아이도 아는 것을, 그보다 10배는 더 오래 산 70대 러시아 노인이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동화책은 동심의 세계를 잃어버린 어른이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해가 되느냐고 반복해서 물어보았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는 그 순간, 한 문장 앞에서 내 시선이 멈췄다.


서로 함께하며 꼬옥 안을 때가 있고
안녕! 하며 헤어져야 할 때가 있어요.

쥬드 데일리, <우리 서로 사랑할 때에>, 산하, 2019


독서 / 글쓰기 학원의 아이들을 만나기 한 달 전쯤, 영원한 사랑을 고백하던 사람과 하루아침에 헤어졌다. 언제나 이별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며 사랑은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자기 삶을 결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라는 철학자 에리히 프롬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의 말을 또 한 번 삶으로 체득했다.


사랑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자기 자신과 삶을 올바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타인을 욕망하고 통제하고 집착할 수는 있지만 진정으로 사랑하지는 못한다.


내가 읽어준 문장을 아이는 이해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나도 아이를 보며 방긋 웃었다.


7살 아이와 함께 읽은 쥬드 데일리 작가의 <우리 서로 사랑할 때에>는, 사실 구약성서의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작가는 복잡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인생의 깊이를,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그림 동화로 만들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우리 서로 사랑할 때에>의 초석이 된, 성서의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가톨릭 성경 코헬렛 3장 1~11)라는 구절의 원문을 읽고 또 읽었다.


사회심리학자인 닐 클락 워렌 박사가 말하기를 "현명한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인생관이 충분히 정립되었을 때 결혼한다.”라고 했다.


이는 다르게 표현하면, 현명한 사람은 주변 시선이나 특정 환경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중요한 선택을 한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작은 사람을 큰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인생관이 양육자에게 먼저 정립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인생관을 이야기해보자면,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의 어느 때'를 지나가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종교에서 가르치는 '알아차림' 또는 '깨어있음'은 '긍정한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긍정은 자기 안의 나쁜 생각과 감정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억지로 좋은 생각과 감정으로 치환하고자 애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긍정이 아닌 현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어리석음이다.


긍정의 태도는 슬퍼할 때 마음껏 슬퍼하고, 이별의 순간에는 눈물을 흘리며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는 것. 또한 기뻐할 때는 마음껏 기뻐하고, 만남의 순간에는 사랑하며 충분히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렇기에 '긍정'이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인정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삶의 태도다. 이때 비로소 혜안이 열리고, 삶의 통찰력이 생긴다.


흔히 인간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비유하곤 한다. 그래서 '신이 쉼표를 찍은 자리에 인간이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다시 말하면, 인생 이야기의 다음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신의 선한 계획을 믿고 실천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다시 꿈꾸고 희망할 수 있다.

진정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때’에는, 세상 모든 이야기가 삶의 자양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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