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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영 Oct 11. 2022

어른을 늙어버린 아이처럼 바라보면 생기는 일

 얼마 전 글쓰기 학원이 롯데 타워와 조금 더 가까운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이사 후 처음 등원한 아이들의 반응은 "와~! 좋다"로 매우 간단했다. 이따금 공간이 더 넓어졌다는 둥 전보다 조금 더 어둡다는 둥 그 정도의 표현만 덧붙여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글반 7세 J가 등원하더니 "우와~! 좋다"라고 말하고는 책상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더니 대뜸 나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묻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 여긴 얼마예요?

-응? 뭐가 얼마야?

-집값이요.

-여기 집값이 왜 궁금해~?

-왜냐고요~? 요즘 집값이 비싸니까요.

-요즘 집값이 비싸다고 누가 그랬어~?

-우리 엄마 가요.

-엄마가 요즘 집값이 비싸다고 J에게 직접 말씀하셨어?

-네. 어휴~ 요즘 집 값이 너무 비싸. 그러면서 만 원짜리 100장 있어도 살 수 없는 게 집이라고 그랬어요.


그 대답에 아이는 아이구나 싶어서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 와중에도 이곳은 얼마냐고 묻는 J의 끈질긴 질문에 나도 모른다고 답하고는 한글 수업을 시작했다.

나의 대답은 진실이었다. 집값이란 자고로 자가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 깔세인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학원 사정을 모르는 나 역시 집값을 알 수 없긴 매한가지였으니까.


처음 J와 만났을 때, 본인은 영어 유치원을 먼저 다녀서 한글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고 소개했다. 왜 그렇게 자기 소개했는지 알 것 같아서, 사람은 저마다 자기 페이스가 있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말해주었다.


두 번째 수업이었던 그날은 한글 수업 중에서도 숫자 공부 순서였다. 하나. 둘. 셋처럼 숫자에는 일. 이. 삼. 사 말고도 세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날이었다.


J는 첫날과 다르게 책을 펼치고 자신만만하다는 듯이 속사포 랩을 하듯 하나둘셋넷다여일곱여덟아홉열~을 외쳤다. 책에는 쓰여있지도 않은 열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말하고는 나를 바라봤다.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 증명하고 인정받고 싶은 눈빛을 하고서 말이다.


-잘했어. 그럼 이번에는 거꾸로 한 번 읽어볼까?

-거꾸로요?


J는 조금 전과는 달리 뒤에서부터 시작하는 아홉이라는 글자를 읽지 못했다. 이번에는 매우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연필로 여덟을 가리켰고, J는 역시 읽지 못했다.

선생님을 따라서 읽어보라고 말하고는 한 글자 한 글자 뒤에서부터, 때론 불규칙한 순서로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J는 곧잘 따라 했다.


다시 하나부터 순서대로 읽어보라고 하니 누구보다 빠르게 하나둘셋넷다여일곱여덟아홉열~을 외쳤다. 나는 또다시 뒤에서부터 읽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J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더듬거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책상에 왼팔을 뻗고 그 위에 작은 머리를 올리고 눕더니, 슬픈 고양이 눈을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어휴... 뒤로 읽는 거는 이상하게 어려워요.

-그건 당연한 거야. 그동안 J는 하나. 둘. 셋이라는 글자를 알고 말한 게 아니라, 그냥 듣고 외워버린 거를 말한 거니까. 그래서 외운 순서대로 숫자를 앞에서부터 말하는 건 쉽지만, 뒤에서부터 글자를 보고 읽는 건 어렵게 느껴지는 거야. 


나의 대답이 끝나자 J는 잠시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제부터 제대로 읽고 쓰는 방법을 배워야지."


J는 처음 시작과 달리 바르게 자세를 고쳐 앉고는 열심히 한 글자 한 글자 눈으로 모양을 익히며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나자 앞으로 읽든, 뒤로 읽든 비슷한 속도로 읽는 수준이 되었다. 또다시 30분이 지나자 놀랍게도 받아쓰기까지 가능해졌다. J도 그런 자신을 굉장히 뿌듯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듯 보였다.


J는 공손한 태도로 인사하고는 이모님이라고 부르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하원 했다. 나도 뒷정리를 끝내고, 하늘에 닿을 듯한 타워를 등지며 퇴근했다.

여느 때처럼 지하철 안에는 퇴근하는 큰 사람들로 빼곡했고, 나는 그 사이에서 포켓몬 카드가 꽂혀있는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책을 펼쳐 읽었다.


‘당신은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지 않고, 원하는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으며 나아가고 있는가?’


헤세는 퇴근하는 나에게 다정하게 묻고 있었다. 이 책은 세계 고전 문학 중에서도 고전으로 <데미안>과 같이 그의 자전적 소설이다. 청소년 필독서로 꼽히면서, 수레바퀴 아래에 있는 달팽이(문득, 집 있는 달팽이보다 못한 삶이라고 자조했던 벼락 거지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같은 현대인에게도 메시지를 던진다. 최악의 외로움과 불편함은 자기 자신에게 안락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나는 함께하는 아이들이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해, 작은 사람 모습을 하고 내게 왔다는 생각이 든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깔깔 웃는 107살, 사탕 한 개에도 행복한 표정을 짓는 283살, 포켓몬스터 카드를 세상 신나게 가지고 노는 379살로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나이 많은 사람을 늙어버린 아이처럼 바라보는 훈련을 한다. 불편한 자기감정을 다스릴 줄 모르는 흰머리와 주름 많은 7살. 상대방과 불편한 주제로 대화하는 기술을 터득하지 못한 4살. 자기 생각과 고집에 갇혀있는 6살을 바라본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단죄했던 마음이 누그러진다. 숫자에 불과한 나이를 거꾸로 생각하고 바라보면 ‘어른답지 못하게 나이 먹고 왜 저래?’라는 생각이 바뀐다. ‘세월의 바퀴에 떠밀려 어쩌다 어른이 됐구나. 자기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느라 참 수고하는구나.’처럼 말이다.


내가 늘 하원 하는 아이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오늘은 나를 포함해, 이 글을 읽는 어른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얘들아. 오늘도 수고했고 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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