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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영 Oct 24. 2021

MZ세대 골퍼가 두려워하는 '골프 괴담' 들어봤어?

 90년대 대한민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벌벌 떨며 들어봤을 괴담이 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전국 초등학생 아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을 강타한 바로 '홍콩 할매 귀신 괴담'이다.


이야기인즉슨, 한 할머니가 홍콩에 가야 하는데 키우던 고양이를 집에 혼자 두고 갈 수 없어서 가방에 몰래 넣어 데리고 갔다. 그런데 하필이면 할머니와 고양이가 탄 비행기가 추락했고, 그때 두 영혼이 합쳐져서 반인반묘(半人半猫) 모습을 한 홍콩 할매 귀신이 탄생했단다.

억울한 홍콩할매귀신은 밤이 되면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을 본 아이들을 습격하고 살해하는데, 눈에 띄지 않으려면 손톱과 발톱을 내놓지 말아야 한다.


어른이 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져 나오지만, 당시 전국 초등학생 아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탓에 괴담으로서는 이례적으로 MBC 뉴스데스크까지 등장해 전국 어린이들에게 괴소문에 동요되지 말 것을 호소하면서 사회적으로 파장이 컸던 기억이 난다.  


확실한 출처 없이 떠돌던 괴담은 순진한 아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기에 충분했고, 덕분에 어린이들의 빠른 귀가에 일등 공신이 되어 주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어린이 유괴사건과 인신매매 등 강력범죄가 많았던 90년 대 시절, 학생들의 이른 귀가를 종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어른들이 지어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나는 그런 흉흉한 소문 속에서도 낮에는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캠핑 버너에 밥을 해 먹다가, 밤이면 손전등을 들고 학교 교실과 화장실을 휘젓고 돌아다녔다.

▲ 홍콩 할매 귀신도 공포에 떨고 갈 우주를 지키는 청청 패션의 아람단 추억. (오른쪽)


왜냐하면, 홍콩 할매 귀신도 공포에 떨고 갈 위아래 청조끼에 청바지, 하늘색 폴로티셔츠를 입은 인간 스머프 수백 명을 통솔하며 담력 훈련을 해야 했던 추억의 '아람단 부단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런 홍콩 할매 귀신 괴담 따위는 청청 패션의 핫함(?)을 모르는 애송이들이나 믿는 거라며 자부했다.


모든 골퍼들이 두려워하는 '골프 괴담'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어른이 된 지금은, 골퍼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골프 괴담'을 체험하며 이따금씩 두려움에 쪼그라들곤 한다.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이라면 지금부터 들려주는 골프 괴담을 읽고 웃어넘기겠지만, 아마추어 골퍼라면 씁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여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은영아. 저기 보이는 워터 해저드 조심해. 날아가는 골프공을 물속으로 끌고 가는 물귀신이 살고 있으니까."

"은영아. 여기서는 안 보이겠지만 네가 친 골프공을 가져다 숨기는 두더지가 벙커에 살고 있어."


필드에 나가면 이런저런 골프 괴담은 끊이지 않았다. 페어웨이에는 내 볼을 러프로 튕겨내는 스프링 벌레가 살고, 나무에는 내 볼이 맞으면 홀컵의 핀과 멀어지게 만드는 백(back) 도사가 산단다. 나도 처음에는 이 모든 말이 우스개 소리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샷을 날리면 러프에 떨어지거나, 러프에서 다시 공을 치면 나무에 맞았다. 페어웨이에서 치더라도 어김없이 물귀신과 두더지가 나타나 내 공을 물과 모래 속으로 가져가 버렸다.


아마추어 골퍼에게 티부터 그린까지 이어지는 페어웨이란, 무명 배우들이 바라보는 오스카 시상식의 레드 카펫과 같다. 눈앞에 있어도 밟을 수 없다.

드넓은 페어웨이를 놔두고 러프로만 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나를 갤러리로 착각했다는 말이 떠돌고, '사랑은 다시 돌아오는 거야!'라는 드라마 속 주인공 고백처럼 공은 나무를 맞고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한두 번도 아니고, 갈 때마다 데자뷔처럼 반복되는 현실에 '골프 괴담'을 나 또한 믿을 수밖에.


대부분의 아마추어 골퍼들은 해저드를 마주하는 순간, 골프 괴담이 떠올라 온 몸이 잔뜩 굳어버린다. '해저드에 빠지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에 힘이 들어가고, 두려운 감정에 생각이 많아지면 인터벌(골프에서 준비하고 샷을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렇게 리듬이 하나둘 깨지면서 괴담은 또다시 현실이 되고야 만다. 이러한 골프 괴담은 아마추어 골퍼뿐만 아니라 프로 골퍼의 멘털까지 흔들어 놓는다.


최악의 해저드는 '두려움' 그 자체다

▲ 이곳은 벙커인가 워터 해저드인가? 골프에서 프로는 계획한 곳으로 공을 보내지만, 아마추어는 걱정한 곳으로 공을 보낸다.


2015년 마스터스 우승자였던 조던 스피스는 2016년 마스터스 대회에서도 3라운드 내내 1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 4라운드에서는 2위와 무려 5타까지 차이가 벌어지면서 그의 우승은 확실시됐다.

스피스는 우승까지 단 6개의 홀을 남겨두고 있는 12번 홀에서 첫 번째 티샷을 날린다. 그러나 150야드의 짧은 파3에서 첫 티샷이 짧아 해저드에 빠지게 된다.


그는 곧바로 두 번째 샷을 시도했는데 어이없게도 또 같은 지점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파3에서 두 번의 해저드 벌타를 받고 5타째 샷을 치게 되자 그는 멘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워터 해저드보다 길게 쳐야 한다는 생각에 그의 샷은 그린 뒤쪽 벙커로 길게 넘어가 버렸다. 다행히 벙커에서 탈출한 후 한 번의 퍼팅으로 홀을 마무리했지만 파3에서 무려 7타라는 스코어를 기록한다.


그동안 5타 차로 단독 선두로 달리던 스피스는 12번 홀 때문에 2등인 대니 윌렛 선수에게 마스터즈 우승컵을 내어주게 됐다. 골프 세계 랭킹 1위였던 MZ세대 조던 스피스조차 골프 괴담을 체험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골프 괴담에 발목 잡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다. 그가 영리하며 지혜로운 선수로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스피스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그날 12번 홀에서 귀신에 씐 듯 해저드로 공이 빨려 들어갔다. 훗날 12번 홀 연습 라운딩에서 두 번의 버디를 기록하고 나서야 저주가 풀렸다."


마스터즈의 악몽이 지난 한 달 후 그는 딘엔 델리카 인비테이셔널에서 지난날의 설욕을 떨치며 우승을 거머쥔다. 스피스는 그날의 경험을 토대로 스스로 심리적 부담을 다스리며 좋은 흐름을 이어가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이제 그는 압박감 속에서도 최고의 샷을 보여주는 믿고 보는 선수가 됐다.  


조던 스피스는 골프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라운드 첫 홀이나 최종 라운드 마지막 홀이나 제 마음가짐은 언제나 똑같아요. 해내야겠단 생각이 없으면 해낼 기회도 없어요. 정확히 준비된 샷은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많은 사람이 벙커샷을 칠 때 일단 벙커 밖으로 떠내라고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엔 다른 어프로치샷처럼 공 바로 뒤에 클럽을 대고 최대한 정확한 샷을 때려서 한 번에 핀을 공략해요. 이때 스핀과 그린 파악이 가장 중요하죠. 우선 공중으로 띄어서 그린 위에 부드럽게 앉히는 거죠. 어쨌든 중요한 건 언제나 핀이 타깃이 돼야 한다는 거죠."


훌륭한 골퍼의 탁월함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아마추어는 '물이나 벙커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처럼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에 집중한다. 하지만 훌륭한 골퍼는 오직 깃대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전략을 짜고 집중하며 샷을 날린다. 더불어 자신이 잡은 클럽과 부단히 연습해 온 자기만의 스윙을 믿는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두려워하는 삶에 집중하는 자는 아마추어이고, 원하는 삶에 집중하는 자는 프로다.

자신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 모르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평생 자기 인생을 남들이 하는 말에 휘둘리면서 불안과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결국 골프도 인생도 아마추어는 걱정한 곳으로 공과 자신을 보내고, 프로는 계획한 곳으로 공과 자신을 보낸다.

그러므로 훌륭한 플레이어로 자기 인생을 사는 비결은 원하는 삶을 꿈꾸고, '나는 할 수 있다'는 내면의 소리를 따라 묵묵히 도전하며 나아가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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