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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영 Oct 24. 2021

과거와 미래가 아닌 오직 현재의 샷에 집중해야 한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 조금만 더 세게 칠걸. 그랬으면 들어가서 버디였는데... 


카트를 타고 다음 홀로 이동하면서도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정말이지 생각할수록 아쉬웠다. 왜냐하면, PAR 3홀(109야드)에서 깃대 좌측 3m 위치에 공을 붙이며 절호의 버디 찬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 휘슬링락 CC PAR 3홀(109야드)에서 깃대 좌측 3m 위치에 공을 붙이며 절호의 버디 찬스를 만들었다.


'오예! 버디 찬스~ 이번에 넣으면 오랜만에 스코어에 버디를 그릴 수 있어.' 그러나 거짓말처럼 홀컵 바로 앞에서 공이 딱 멈추는 바람에 par로 마무리했다. 


"지나간 홀은 빨리 잊어!"


나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동반자가 웃으며 가위질을 했다. 덕분에 잘려 나간 생각들은 카트에서 떨어진 채 전 홀 PAR 3에서 나뒹굴었고, 나는 다음 PAR 4홀을 향해 경쾌한 마음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샷을 하는 시간보다 이동 시간이 긴 이유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구기 종목은 살아 움직이는 공을 시간차로 상대한다. 그래서 경기 중에는 생각할 여유가 거의 없고, 대부분 연습에 의해 익힌 신체 근육을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골프는 다른 구기 종목과 다르게 바닥에 죽어 있는 공을 쳐서 살려내야 한다. 짧게는 몇 초에서 길게는 몇 분씩 자기만의 루틴과 생각을 거쳐 타구를 한다. 그렇게 신중하게 한 샷을 치고 나면 다음 샷을 위해 끊임없이 걸음을 옮긴다. 한 홀에서 게임이 끝나면 카트를 타고 또 다음 홀로 이동해야만 한다. 


전반전이라 불리는 9홀이 끝나면 그늘집에서 먹고 마시며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18홀을 돌며 4~5시간 경기하는 동안 실제 클럽으로 공을 치는 시간은 다 합쳐도 3분 이내다. 결국 샷을 하는 시간보다 이동과 휴식 시간이 훨씬 긴 운동이 골프다. 

그렇다면 도대체 골프라는 게임은 왜, 샷을 하는 시간보다 이동 시간을 길게 설정한 것일까?


휴식과 이동을 통해 릴랙스하고 다음 샷을 위한 행보를 즐기는 스포츠가 바로 골프이기 때문이다. 골퍼에게 주어진 수많은 시간은 곧 긴장을 풀 수 있는 기회다. 지나간 홀의 영광과 좌절은 이동 중에 훌훌 털어 버리고 현재의 샷을 준비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골프라는 게임이다.  


골프도 인생과 같아서 과거의 미스샷이나 미래의 불안에 멘털이 흔들리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는 집중력을 키워야 하는 운동이다. 구력이 오래된 골퍼일수록 육체적 기술은 물론 마음을 다루는 기술까지 훈련하는 이유다.

 

그래서 골프는 90% 이상이 멘털 게임이다. 나머지 10%는 정신 게임이다. (웃음) 체력을 단련하고 필요한 기술을 익히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골프는 병을 얻는다. 그것은 바로 모든 골퍼가 말하는 '마음의 병'이다. 이건 초보든 프로든 차별 없이 누구나 겪으며 극복해야 하는 단계다. 


지나간 미스샷에 아쉬워하고, 미리 우승을 점치면서 설레발치고, 전 홀의 나이스 샷에 여전히 흥분해있는 모든 것이 우리의 집중력을 흩트려 놓는다. 지나간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생각과 걱정이 현재를 살지 못하게 하면서 정신을 도망 다니게 만든다.


골프를 몸소 접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중력이 관건인 운동, 즉 골프는 멘털 게임이라는 말에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신체 활동과 동시에 정신력 싸움인 골프는 그래서 한 번 맛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대단히 매력적인 운동이다.


스포츠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수한 선수들의 체력과 실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단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선수들은 경기 중 느끼는 중압감을 스스로 컨트롤할 줄 알며, 결정적인 순간에 정신을 집중하여 경기에 완전히 몰두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현재 깨어 있어야 한다


2001년 애니카 소렌스탐은 스탠더드 핑 레지스터 2라운드에서 LPGA 역사상 최초로 59타(13언더)를 기록한다. 종전에 박세리와 카리 웹이 보유한 LPGA 투어 한 라운드 최저타(61타)보다 무려 2타나 줄인 것이다. 여자 골퍼로서는 처음으로 60타의 벽을 깨며, 자신의 목표인 18홀 올 버디인 54타에 한 발짝 다가가게 된다.


애니카 소렌스탐은 인터뷰를 통해 그날의 멘털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떤 홀에서도 그다음 퍼팅을 미리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미스샷을 쳤을 때 어떻게 처리할까 와 같은 결과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이 생각은 풀 스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나간 과거는 지우거나 바꿀 수 없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점치거나 통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골프나 인생에서도 '그때 이랬더라면...' '만약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와 같은 가정법을 쓰며 자신을 괴롭히는데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한다.


영어로 'present'는 '지금, 현재'라는 뜻과 동시에 '선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지금이라는 삶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매여있거나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만이 과거와 미래를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현재에 충실하면 지나간 과거의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 수 있다. 다시 말해 오늘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집중하면 과거의 실수에서도 교훈을 얻는다.

그러므로 현재에 충실하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게 되고, 그것은 결국 상상하는 미래의 모습을 만들기 위한 밑 작업이 된다. 미래란 결국 오늘 내가 선택한 순간들의 총합일 테니까.

그렇게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진정한 오늘'을 선물 받는다.


▲ PAR 3홀에서 놓친 버디 펏에 미련을 두고 아쉬워하는 에너지를, 현재 임하는 PAR 4홀에 쏟아 집중한 결과 버디를 기록했다.


골퍼라면 누구나 좋은 기록을 원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멘털을 바로 잡는 일이다.


과거의 기억에 발목 잡히지 말고, 미래의 두려움에 움츠려 들어서도 안 된다. 과거의 영광에 얽매이지도 말고, 미래의 상상에 미리 샴페인을 터뜨리지도 말자. 그래야 지만 현재에 집중할 수 있고, 평소처럼 자기 리듬에 맞게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굿 샷을 날릴 수 있다. 


내가 애정 하는 대문호 톨스토이도 이렇게 말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현재이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다."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골퍼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현재의 홀이고, 골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치려는 샷이며, 골퍼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곁에 있는 동반자다."


스윙 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상황에 대한 걱정이나, 지나간 과거의 미스샷에 붙들리면 집중력이 흐려져 원하는 샷이 나오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명심하자. 진정으로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므로 오직 현재에 집중하자.

오늘이라는 날과 지금 치려는 샷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참고로 그날 PAR 3홀에서 놓친 버디 펏에 미련을 두고 아쉬워하며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 다음 PAR 4홀(227야드)에 에너지를 집중한 결과 버디를 기록했다. 무야호! 

2온으로 그린에 올려놓고 또다시 3m 버디 펏을 성공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 기분에 도취되어 바로 다음 홀에서는 연달아 더블 보기를 기록했다. 이것이 골프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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