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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영 Oct 24. 2021

골프는 왜 '더 낮은 점수'를 받아야 승리하는 것일까?

골프는 왜 낮은 점수를 받는 사람이 이기는 거예요~?


언젠가 클럽하우스에서 마주친,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클럽하우스는 골프 클럽하우스(로커룸, 프로 숍, 레스토랑 등의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골프 클럽 등의 회원용 건물)가 아닌 음성 기반 SNS 클럽하우스(2020년 3월 출시된 음성 소셜미디어로, 오직 음성으로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특징)다. 클럽하우스에서 나눈 대화 속에서, 내가 처음 골프를 배우던 20대 시절이 떠 올랐다.


당시 나는 익숙하지 않은 골프 용어와 점수 계산법 때문에 적잖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레슨 하는 프로님이 프린트물을 나눠주셨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아서 남몰래 좌절하곤 했다.


골프는 타 스포츠와 다르게 점수를 높이 쌓아 올라가는 방식이 아닌, 낮은 점수를 향해 나아갈 때 승리한다. 하늘에 대적이라도 하듯 높아지려는 교만을 버리고, 낮은 땅으로 돌아갈 인간 본연의 겸손한 태도를 익히라는 가르침처럼 말이다.


골프를 처음 시작했을 때 그런 이유와 더불어 스코어 계산하지 말라는 프로님의 조언으로 한동안 점수 기록을 하지 않았다. 물론 한국에서 아마추어 골퍼가 필드에 나가면 대부분 캐디가 스코어 기록을 하기 때문에 당장 모른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초보 골퍼였던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골프 용어와 점수 계산 법은 낯설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낯섦을 넘어 이상할 지경이었다.


▲ 골프는 타 스포츠와 다르게 점수를 높이 쌓아 올라가는 방식이 아닌, 낮은 점수를 향해 나아갈 때 승리한다.


대부분의 운동은 1점 2점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 올라가는 방식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사람이 우승한다(수영이나 마라톤처럼 초 다툼을 하는 운동은 예외로 하자). 이러한 규칙은 운동 경기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50점 받은 학생보다 100점 받은 학생이 칭찬받고, 수능 200점 받은 학생보다 400점 받은 학생이 지원할 수 있는 학교의 폭이 넓다. 아이큐도 두 자릿수보다 세 자릿수를 받은 아이를 지능이 높은 영재로 분류한다.   

게다가 사회에 나와서는 높은 연봉이 그 사람의 능력을 대변하고, 통장에 찍힌 높은 숫자는 마음의 여유와 함께 삶의 수준까지도 바꿔놓는다. 이제는 신용 등급마저도 1000점 만점이라는 점수제로 바뀌어, 높은 점수를 받은 고객일수록 제1 금융권에서 낮은 이율로 대출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높은 숫자는 쓸모에서 더 나아가 가치를 나타내는 바로미터라는 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정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더 높은 점수를 향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삶의 태도를 당연하게 여긴다. 하여, 높은 점수를 향해가는 방식이 익숙하고, 낮은 점수는 불명예로 여겨질 뿐이다.


그러나 이처럼 당연한 상식을 골프는 모조리 뒤엎어 놓는다.


'낮은 점수'를 받아야 우승하는 골프 계산법


골프는 총 전반(아웃코스 : 클럽하우스에서 멀어지는 방향) 9홀 후반(인코스 : 클럽하우스로 돌아오는 방향) 9홀 총 18개의 홀을 돌면서 경기를 치른다. 모든 홀에는 몇 번 만에 공을 홀에 넣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 타수'가 존재하는데 이를 '파(PAR)'라고 한다.


18홀은 총 72번의 공을 쳐서 넣게 되어 있는데, 정확하게 72타로 경기를 마무리하면 이븐파(even par)라고 한다. 그래서 규정 타수에서 점수를 줄이면 언더파(Under Par), 점수가 늘어나면 오버파(Over Par)가 되는 것이다.

이때 보기, 파, 버디 등등 골프 점수 용어 역시 해당 홀의 '기준 타수'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1번 홀이 PAR 4라고 하자. 그렇다면 공을 4번 쳐서 홀컵에 넣으면 PAR (+-0점) 가 된다.

이번엔 PAR 3라고 적힌 곳으로 이동하자. 그러면 공을 3번 쳐서 홀컵에 넣으면 PAR이다.

다시 이동한 홀에 PAR 5라고 적혀있다면, 당연히 5번 만에 홀컵에 공을 쳐서 넣으면 PAR인 식이다.


만약 각 홀에서 기준 타수만큼 쳐서 공을 홀컵에 넣었다면 '나이스 파'라고 말하고, 스코어 카드에는 0이라고 표시한다.

그러므로 골프에서 PAR인 0보다 낮은 -1,-2,-3와 같은 숫자는 감점이 아닌 승리에 가까워지는 점수다. 예컨대, 만약 공을 3번 쳐서 들어가야 하는 PAR 3홀에서 한 번에 쳐서 들어가면 ‘홀인원’이 된다. 이때 -2라는 점수를 스코어 카드에 적는다.


따라서 +2, +3, +4 같은 점수는 득점이 아닌 승리에서 멀어지는 점수다. 이때는 보기, 더블 보기, 트리플 보기, 쿼드러플 보기 같은 '숫자 표현'을 쓰며 정규 타수에서 오버됐음을 알린다.

반면, 골프에서 득점인 언더 점수는 특이하게도 '새 이름'으로 부르곤 하는데, 골프 스코어에 새 이름이 붙은 영화 같은 사연은 '난이도 상. 싱글 플레이어를 위한 hole'로 이동하면 알게 된다.


아무튼 골프는 100점 받으면 다음부터는 90점 받아야지 하고, 90점 받으면 80점, 70점, 60점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운동이다. 이 말을 다시 풀어쓰면, 골프에서는 만점이 없다.


그렇기에 골퍼는 홀마다 힘을 빼고 잘 치려는 욕심을 하나둘 내려놓으면서, 이븐파(even par : ‘대등한, 균형 잡힌’의 뜻으로 더도 덜도 아닌 규정 타수를 치는 것) 또는 언더파(under par : 규정된 파보다 적은 타수로 홀인 시키는 것을 말한다)라는 무소유 또는 나눔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자의 모습과도 닮았다.


불필요한 타수를 줄여나가는 법을 배우는 게임

▲ 인생의 축소판인 골프는 남과 경쟁하며 서로 밟고 올라가는 것이 아닌, 자신을 다스리며 불필요한 타수를 줄여 나아가는 게임이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기에 아는 것이 곧 경쟁력이고 힘이다. 그래서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왔을 것이고(다행히도 우리 부모님은 배움은 강조하셨지만 학교 공부는 강요하지 않으셨다) 자신이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에게 그 말을 되풀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높은 점수를 목표로 하는 공부는 대부분 시험에 의해 점수와 등수가 매겨지고, 모두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공부일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공부'란 본질적으로 앎에 대한 욕구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모르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거나 잘 못 알고 있던 것을 바로 잡는 일이다. 그것은 어떤 지식이나 학문을 배우고 알아가는 것을 포함하여, 나와 다른 시각으로 보는 사람 또는 나보다 먼저 경험한 이에게 귀를 기울이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스스로 연구하고 사색을 통해 이치를 터득하여 마침내 통찰력을 얻는 것까지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공부야 말로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내면의 성장을 가져다주며, 배움에 대한 진정한 기쁨을 선사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골프 스코어 용어와 계산법을 공부하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하나다. 그동안 내가 안다고 확신했던 것들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다는 당연한 사실이다. (웃음)


인간은 수많은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고정관념에 휩싸여 있으며, 새로운 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편견에서 또 다른 편견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많이 아는 것이 지식이라면,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나에겐 20대의 마지막 해가 그러했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내가 아홉수와 삼재이기 때문에 나쁜 날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 시간만 어떻게든 참고 견디면, 총량의 법칙에 의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재앙을 겪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당시에는 하늘을 원망하며 억장이 무너져 내리긴 했지만, 지나고 보니 생의 롤러코스터에서  내려가는 법을 배울  있는  또한 좋은 날이었다. 왜냐하면, 철저한 고독 속에서 온전히 나를 마주하며 내면의 소리에  기울일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 덕분에 나에게 진실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됐다.

마치 평생을 낮은 골프 스코어를 향해가야 우승하는 골퍼처럼, 덕분에 언젠가 낮은 땅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다.


인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을 것 같은 시련을 통해, 바벨탑을 쌓던 교만한 자신의 영혼을 돌보며 하늘을 향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배움이란, 용기 내어 변화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얻는 일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골프 스코어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훈련을 하듯,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타는 인생 그래프에도 자기 마음을 지키는 내공을 체득해 나가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골프와 인생에서 진정한 승리자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는지.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는 경구처럼 말이다.


결국 인생의 축소판인 골프는 남과 경쟁하며 서로 밟고 올라가는 것이 아닌, 자신을 다스리며 불필요한 타수를 줄여 나아가는 게임이다. 그때야 말로 진정한 자기 사랑과 겸손이 무엇인지 배우는 가운데 승리를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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