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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영 Oct 24. 2021

프라이빗 초고가 회원제 골프장에는 드레스코드가 존재한다

무슨 골프장에 가는데 정장을 입고 가? 뭐가 있는 게 분명해!


남편이 새벽에 골프장에 가는데 정장을 입어서 싸웠다는 여성을 본 적이 있다. 아는 사람들과 운동하러 간다는 사람이 새벽부터 골프복 대신 슈트를 쫙 빼입고 나가니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살면서 주변 골퍼들에게도 그런 경우는 들어 본 적 없다며 열을 올렸고, 남편은 골프 에티켓을 알지도 못하면서 생사람 잡는다고 열을 올렸단다.


대중 골프장(퍼블릭)이 흔해진 요즘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인해 대중제로 전환한 회원제 골프장만 해도 67곳에 이른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대부분의 MZ세대 골퍼들은 집에서부터 골프복을 입고 출발한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인해 샤워까지 제한돼 골프복을 그대로 입은 채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골프장에 드레스 코드(Dress Code : 특정 행사나 모임에서 요구되는 복장)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아마추어 골퍼가 의외로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퍼블릭 클럽하우스에서는 골프복이나 청바지, 샌들 차림으로 입장해도 누구 하나 제지하거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을 중시하는 초고가 회원제 골프장에서는 반드시 드레스 코드를 준수해야만 한다.


명문 회원제 골프장에는 드레스코드가 존재한다

▲ 전통을 중시하는 초고가 회원제 골프장에서는 반드시 드레스 코드를 준수해야만 한다.


골퍼조차 잘 모르는 골프장 드레스코드를 골알못(골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줄임말)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인지 특히 골프 드레스 코드에 관해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많다.


"청바지, 샌들, 슬리퍼는 뭐라고 해서요~ 그날 2층 클럽하우스에서 뵐게요."


며칠 전 명문 골프장으로 알려진 휘슬링락 CC에 초대받아 다녀왔다. 이곳은 여전히 엄격한 회원제로 운영되는 곳이기에, 회원은 예약 문자와 함께 드레스 코드에 관해 당부의 말을 전해왔다.

메시지 안에는 클럽 이용 안내 링크가 친절하게 들어 있었는데, 클릭해서 들어가 보니 무려 13가지의 에티켓 안내 문구가 나열돼 있었다. 역시나 클럽 이용 시 드레스코드를 준수해 달라는 문구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제외하면 최상단에 위치했다.


[클럽 이용 안내]
*품격 있는 클럽 문화 정착을 위해 내장 시 드레스 코드를(재킷이나 정장 차림) 준수하여 주시고 청바지, 반바지, 샌들이나 슬리퍼, 블로퍼는 입장이 제한되오니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중략)
*동반하시는 고객님께도 사전 안내 부탁드립니다.

<내장 시 에티켓 안내>

○ 내장 시 재킷이나 정장 등 깔끔한 복장 착용으로 드레스코드를 준수하여 주십시오. 민소매, 청바지, 반바지, 핸들, 슬리퍼 착용 시 입장이 제한됩니다.
○ 라운드 시 반바지 착용은 가능하나, 니삭스(무릎까지 오는 양말)를 반드시 착용해 주십시오.
○ 사우나 이용 시 문신이 있는 경우에는 내장 고객분들께 불쾌감을 조성할 수 있으니 사우나 시설 이용을 자제하여 주십시오.


우리나라를 포함해 여전히 영국과 미국의 전통 있는 회원제, 초고가 명문 골프장은 드레스코드를 고수한다. 넥타이까지 맨 완벽한 정장 차림까지는 아니어도 재킷 등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춘 복장으로 입장하는 것이 예의다.


청바지나 민소매 차림으로는 클럽하우스 입장이 거부된다. 니삭스를 신지 않은 채 반바지만 입고는 라운드를 할 수 없다. 심지어 과거에는 클럽에서 재킷을 대여해주기도 했으니, 골프에서 드레스코드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남자 골퍼가 반바지 골프웨어를 입고 갔다가 클럽하우스에서 제지당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결국 그는 프로샵에 가서 니삭스를 구입해 신고 나서야 꾸러기 패션으로 라운딩을 즐길 수 있었다.  


나답게,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MZ세대 골퍼

▲ 농구화 스타일의 하이 톱 골프화에 조거 팬츠 등 대회 때마다 개성 넘치는 파격 패션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MZ세대 골퍼 '리키 파울러'


나와 같이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중 밀레니얼에 속하는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학창 시절에 교복이라 불리는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똑같은 책상에 앉아, 똑같은 사상을 주입받으며 자랐다. 학생이 옷을 변형시키거나, 머리 색깔과 모양을 다르게 하고 나타나서 왜 남들과 똑같이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반항아, 문제아로 낙인찍은 후 말 그대로 본보기가 되어 맞았다. 그걸 본 아이들은 겁에 질려 절대 권력자들 앞에서 개성을 감춘 채 순종해야만 했다.


덕분에 나의 사춘기 중2병은 지독히도 알찼다. 그 말은 시범학교(어떤 교육목적을 모범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하여 설립된 혹은 지정된 학교)에서 흔히 문제아로 불리는 아이였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비행 청소년은 아니고 늘 "왜 그래야 하는 거예요?”라고 기존 규칙에 질문해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왜? 여학생은 머리카락을 귀밑 3cm로 유지해야 하는지에 의문을 품고 쇼트커트를 하고 등교한다든지, 왜 흰색 운동화만 신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고 컬러 운동화를 신고 등교한다든지, 왜 살이 비치는 스타킹은 신어서는 안 되는지, 왜 머리카락을 염색하면 안 되는지, 왜 머리에 핀을 꽂아서는 안 되는지, 왜 헤어 젤을 발라서는 안 되는지, 왜 색깔 있는 속옷은 입어서는 안 되는지 하는 것들에 의문을 품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속 시원히 대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다수 선생님은 그런 질문과 도전을 귀찮아했고 싫어했다. 너는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공부나 할 것이지 버릇없이 선생님에게 말대꾸하냐며 혼나기 일쑤였다. 학생과 대화나 토론이 아닌 언제나 일방적인 그들의 권위적 태도에 나는 분노했고, 반항했다.

이건 핵 주먹 마크 타이슨의 말이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그러나 세상 만물이 그러하듯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 패션과 교육, 사회 문화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변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되고 만다.


"내가 반드시 깨트리고 싶은 고정관념 중 하나는 바로 골프웨어다." 


골프 브랜드 풋조이와 함께 콜라보 한 디자이너 도트 스나이더가 한 말이다. 제 아무리 전통을 중시하는 골프라 할지라도 개성을 중시하는 MZ세대가 주도하는 세상에서는 변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유러피언투어 BMW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티럴 해턴은 후드티를 입고 경기를 한 후 그대로 시상식에 올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를 본 보수적인 골프 전문가들은 후드티가 골프 전통을 해쳤다며 비난을 쏟아냈지만, MZ세대 골퍼들은 '시대적 착오'라며 SNS에 목소리를 냈다.


그동안 프로대회에서 후드티 복장 논란은 여러 차례 있었다. 이번 PGA 투어 더 CJ컵 대회에서 우승한 북아일랜드의 로리 매킬로이와 미국의 토니 피나우, 저스틴 토머스 모두 여러 차례 후드티 복장으로 경기를 뛰었다.

골프 황제라 불리는 미국의 타이거 우즈도 PGA 투어 메이저대회 마스터스에서 처음 우승할 당시 카라 없는 라운드 티셔츠를 입었다. 리키 파울러 역시 농구화 스타일의 하이 톱 골프화에 조거 팬츠 등 대회 때마다 개성 넘치는 파격 패션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다.


실용성과 자기표현을 중시하는 MZ세대 골프 인구가 늘어나면서, 보수적이고 격식을 중시하는 골프 문화를 바꿔놓고 있다. 국내 6조 원의 골프웨어 시장은 앞으로 MZ세대에 의해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 예측하며, 그들의 취향에 맞는 차별화된 패셔너블한 콘셉트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골프 패션도 인간의 역사와 같이 반복된다. 골프가 시작된 날부터 혁명을 일으키는 스타일 아이콘은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다. 권력 앞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표현해 낼 줄 아는 사람은 어느 시대나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들에 의해 세상은 새로운 판으로 바뀐다.


"골프장에는 염색하고 가면 안 되나요?" 21세기에도 엄격한 골프장 드레스코드를 의식한 듯, 골린이가 던진 질문이다.

마치 총천연색으로 염색한 아이돌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걸려서 출연 정지를 받던 90년대를 연상케 하는 발언이었다. 물론 대답은 "Why not?"이었다.

참고로 LPGA에서 신인왕, 상금왕, 올해의 선수 왕까지 휩쓸었던 박성현 프로가 슬럼프를 극복한 것도, 타투와 더불어 3주에 한 번씩 염색하며 스트레스를 풀은 덕분이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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