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 9일차.
드디어 나로 하여금 인도네시아로 떠나게 만들었던 토바호수로 간다. 아침 일찍 셰어택시를 타고 부킷라왕에서 파라팟으로 출발했다. 부킷라왕에서 차로 대여섯 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파라팟은 토바호수의 사모시르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는 선착장이 있는 아주 작은 도시다. 사모시르에서도 여행자들이 많고 숙소나 식당 등 여행자들을 위한 마을이 작게나마 형성되어 있는 곳이 툭툭마을인데, 파라팟에서 배를 타면 툭툭마을까지 한 시간쯤 걸려 도착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행자들에게 파라팟은 머물지 않고 잠시 스쳐가는 곳이다.
우리도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차가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둘째 아이가 멀미를 시작했다. 드라이버는 왜이렇게 운전을 험하게 하는지.(인도네시아 여행중에 수없이 많은 셰어택시를 타고 다녔는데 그것이 이 나라의 노멀이었다.) 아이도 걱정되거니와 같이 택시를 타고가는 외국인이 불쾌하겠다 싶어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어 내내 불편했다. 6시간 넘게 걸리는 길이었고 고속도로를 타자 조금 평온해졌다 싶었는데 토바에 거의 다다라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자 이번엔 유빈이가 멀미다. 유빈이도 어김없이 한번 게워내고 셋다 넉다운이 되어 파라팟에 도착했다. 그래, 우리는 이 작은 도시에 머물 운명이었나 보다 생각하고 하루 쉬어가기로 한다.
숙소에 들어서자 유빈이는 지쳐서 쓰러졌다. 갑자기 서치 해 잡은 조식포함 1박에 3만 원 남짓한 숙소는 그저 기본에 충실했다. 그나마 흔들리던 차에서 내려 땅을 밝았고 무거운 배낭 내려놓고 셋이 누울 침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다. 잠시 쉬고 나서 아이들이 토하느라 버린 옷들 세탁도 해야겠고 허기도 채워야겠기에 셋이서 슬렁슬렁 마을로 나가본다.
'어느 도시든 특별함이 없는 곳은 없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서칭을 할 때 네이버 잘란잘란 까페에서 사람들이 그랬다. "파라팟은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라고. 숙소를 추천해 달라는 글에 "파라팟은 숙소도 다 별로라 그냥 빨리 툭툭으로 들어가는 것이 방법"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데 여행을 해보면 항상 느끼지만 어느 도시든 다 다르고 그만의 특별함이 있다.
커다란 세탁물 봉지를 들고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던 파라팟 거리를 셋이서 터덜터덜 걸어 본다. 걷다 보면 그 흔한 런더리 하나쯤 있겠지 싶은 마음에. 토바 호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도 여행지로 유명한 곳이라고 하더니 그 기착지인 파라팟에는 관광버스가 도로에 참 많구나. 차가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도로 정비도 허술하던 인도네시아에선 늘 셋이 한 줄로 조심조심 걸었다. 길 가다 만난 과일가게에서 망고를 샀다. 봉지 한가득 담아 2천원 남짓인데 그 자리에서 바로 먹을 수 있게 깔끔하게 손질해 줬다. 망고 한봉지, 편의점에서 산 과자와 컵라면을 달랑달랑 손에 들고 숙소로 돌아오는길, 아마 이곳에 머물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파라팟의 노을을 만났다.
배낭여행 10일차 아침.
파라팟 호텔을 나서며 사모시르로 들어가는 선착장까지는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물었다. "앙꼿"을 타면 된단다. 정류장이 있냐고 물었더니 호텔 앞에 서있으면 된단다. 저 사람이 하는 말을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걸까 의심하며 배낭을 메고 아이들 손을 잡고 호텔 앞에 잠시 서있으니 벨보이가 지나가던 봉고차를 손짓해 불러세운다. 그리고는 타란다. 봉고차는 창문은 고사하고 문이 없다. 인도네시아의 대중교통인 "앙꼿" 이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를 거쳐 가는지 정해져 있긴 한 건지, 정찰제인듯 정찰제가 아닌 것도 같은 그 봉고를 여행 내내 얼마나 많이 타고 다녔는지 모른다. 창문이 없는 탓에 온갖 매연을 그대로 마시게 되고 쿠션 따위 사치라는 승차감 제로의 교통수단이지만 가장 만만하고, 가장 흔하고, 정해진 코스가 없기 때문에 대충 길에 보이는 봉고차를 아무 곳에서나 잡아타고 목적지만 말하면 되는 시스템이 나중엔 아주 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선착장에 도착해 배를 탔다. 배는 하루에 네다섯 대쯤 오가는 것 같았다. 여행자뿐만 아니라 섬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이 페리를 이용하기 때문에 꽤 늦은 시간까지 배가 다닌다. 3명이 15만 루피아, 만원 조금 넘는 돈을 내고 페리를 탔다. 페리를 타고 한 시간쯤 달리면 걸려 사모시르 섬에 도착하는데 내가 묵는 숙소 이름을 대면 숙소 앞에 바로 배를 대주는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택시 같은 개념이란다.
페리가 출발했다.
토바 호수가 얼마나 큰지 실감이 간다. 이게 호수라고? 바다가 아니라고?! 나를 인도네시아로 이끌었던 그 한장의 사진 속 풍경을 지금 내가 직접 보고 있구나 하는 감격이 밀려온다. 이제 정말 이 여행의 시작이자 이 여행의 유일한 목적지였던 토바 호수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