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모순에 관한 시가 있다.
쉘 실버스타인의 [일찍 일어나는 새]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긴 힘들어, 내가 느낀 감상평만 짤게 적어 본다.
-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그렇다면 벌레의 입장에서는 늦잠을 자는 것이 유리하겠지 -
우리는 이 세상을 처음 살아간다. 사랑도 우정도, 학교도, 직장도,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우리는 모두 처음이다. 그래서 인간은 오래된 명언에 기대어 앞날을 커닝하려고 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우리 스스로가 새의 입장인지 벌레의 입장인지 고민도 하지 않은 채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는 오래된 격언을 맹신한다.
왜 우리는 오래된 명언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일까?
익숙해서? 진리라서? 아니다. 사실은 우리는 ‘카리스마’에 눌려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쫄았다.
옛날, 임제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라고 했다. 부처, 부모, 조사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거역하기 힘든 존재들이다. 대상을 바꿔도 된다. 존경하는 스승님, 동경하는 선배님,
위대한 위인들. 우리는 그들의 카리스마에 눌려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순응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사회화가 진행되지만 한편으로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가게 된다.
참고로 불교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종교가 아니다. ‘성불하세요’ (부처님이 되세요) 라는 인사가 있듯
불교는 스스로 메시아 되라고 가르친다. 그 첫 번째 관문이자 마지막 관문이 바로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임제스님 역시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껏 존경했던 권위조차 깨부술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앞선 시인도 임제스님처럼 “벌레라면 늦잠을 자야 하지 않나요?” 라고 오래된 격언에 반기를 든다.
그 누구도 덤비지 못했던 격언의 카리스마에 균열이 생겨 무너지기 시작한다.
시인은 주장한다. 명언에 나를 맞추지 말고, 내 상황에 맞는 명언을 찾으라.
아무리 귀한 약재도 내 체질에 맞지 않으면 독이다.
하지만, 늦잠자는 벌레에게는 더 큰 고난이 기다린다.
'이슬아'라는 작가가 있다. 그는 평생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할 자신이 없었다.
누구나 받아들이는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 그에겐 끔찍한 감옥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큰 힘듦’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이 세상에 없던 구독 서비스, [월간 이슬아]의 탄생 배경이다.
독자들이 만원의 구독료를 내면 작가는 매달 20여 편의 글을 써서 메일로 보낸다. 독자들은 돈을 낸 만큼
냉정하게 평가 한다. 때론 악플러 보다 더 혹독하게 피드백을 남긴다. 하지만 이슬아 작가님은 꿋꿋이
자신의 선택을 밀고 나갔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스스로 출판사를 설립하고 지금까지도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옛 성현들의 말씀이나 부모님의 조언은 무시하는 것이 맞을까?
모순을 공부하는 내 입장에서는 '아니다'라고 답하고 싶다.
왜냐하면 어느 한 쪽으로만 치우치는 삶이 가장 위험한 삶이다.
남과 다른 성공을 위해서는 수입이 되지 않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슬아 작가 역시 성공하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전전 했고, 만화가, 누드모델로도 꽤 오랜 시간 일을 했다.
그 선택이 쉬웠을까? 아무리 화가 지망생들 앞이라고 해도 옷을 벗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출퇴근하지 않고 늦잠 자는 벌레가 되기 위해, 작가는 더 큰 고난을 감수 했다.
다행히 그는 번데기 시절을 거쳐 아름다운 나비로 거듭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남과 다른 삶을 살려면, 남과 다른 행복이 아니라, 남과 다른 고난을 개척해
나가야한다. 그리고 세상에는 우리가 옳다 믿은 독립심을 이용하는 악당들도 있다.
피라미드 다단계 업자들은 교묘한 심리 게임을 한다. 그 게임을 통해 순진한 청춘들을 빚에 허덕이게 만든다. 그때 꼭 빠지지 않는 마지막 대사가 있다. 이 대사 한 방이면 마법처럼 다단계에 빠진다. 들어보라.
“ 자기의 인생을 언제까지 부모님께 물어 볼 거예요? 본인은 이제 성인이고
조금만 더 있으면 어른 될 텐 데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결정해야죠. 언제까지 얘처럼 굴건가요?”
다단계 업자들은 인간의 독립심과 자존심을 건드린다. 그리고 휴대폰을 잠시 맡아둔다는 명목으로
부모님과의 대화를 차단하다. 부모님이 답답하고 구식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분들은 오랜 세월 수많은 사기수법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 능력도 안 되는 자신에게 큰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것이 바로 사기다. -
부모님은 이 진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다단계 업자들은 철저하게 부모님과의
대화를 끊게 만든다.
그럼, 임제 스님의 독립심과 다단계 업자의 독립심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임제 스님이 말하는 독립은 세상의 모든 조언을 부정하고 스스로 고립되라는 뜻이 아니다.
부모님이나 부처님 같은 위대한 존재에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깨어나라는 조언이다.
반대로 다단계 업자들이 말하는 독립은 기존의 관계를 단절시켜, 결국 자신들에게 더 의존하도록 유도한다.
진정한 독립이란 세상과의 연결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주체적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스스로의 길을 찾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세상에 없는 창조적인 길을 개척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기 수준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순응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의존하지 않고 오롯이 섰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꿈을 이룬 것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다.
> 보너스 글
여러분이 디자이너가 되던, 마케터가 되던, 출판작가되던 가장 먼저 듣게 되는 조언이 있다.
“사람들이 좋아한 만한 것을 찾아 당신만의 색깔로 창조해보세요”
어느 도시 건축 디자인 회사의 대표님이 직원들에게 이런 요구를 했다.
“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려서 받을 수 있는 돈은 고작 500만원, 5000만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디자인해서 받을 수 있는 돈은 50억원, 500억원입니다.
이렇게 금액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예술가들은 자신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여러분은 고객을 위한 그림을 그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예술 하지 마세요. 디자인을 하세요."
도서 [기록의 쓸모]를 집필한 이승희 작가님은 마케팅 전문가이다. 그분은 마케터를 이렇게 정의했다.
“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우리만의 언어로 다듬어 알리는 것이야 말로
마케터로서 내가 할 일이다”
작가를 꿈꾸는 초심자들에게 베테랑 편집자들은 이런 요구를 한다.
“ 일기는 나를 위한 글이지만, 책은 타인을 위한 글입니다. 타인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좀 더 고민
해봐야 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겠다.
진정한 독립이란 세상과의 연결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주체적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스스로의 길을 찾는 것이다.